"키워드 : 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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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는 서기전 1000년 대 전반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 걸쳐 무문토기와 함께 청동기, 마제석기를 제작 사용한 시대이다. 마을은 장방형 혹은 원형의 수혈 주거지로 구성되고, 무덤은 지석묘, 적석묘, 석곽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벼를 비롯한 곡물 농사가 시작되었고, 무덤에 부장된 것으로는 청동기로 비파형동검 등의 무기와 다뉴기하학문경[다뉴세문경] 등의 의기가 있다. 이들 청동기의 중심지는 요서 지역에서부터 요동 지역을 거쳐 길림, 한반도 지역으로 이행된다.
청동기시대 (靑銅器時代)
청동기시대는 서기전 1000년 대 전반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 걸쳐 무문토기와 함께 청동기, 마제석기를 제작 사용한 시대이다. 마을은 장방형 혹은 원형의 수혈 주거지로 구성되고, 무덤은 지석묘, 적석묘, 석곽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벼를 비롯한 곡물 농사가 시작되었고, 무덤에 부장된 것으로는 청동기로 비파형동검 등의 무기와 다뉴기하학문경[다뉴세문경] 등의 의기가 있다. 이들 청동기의 중심지는 요서 지역에서부터 요동 지역을 거쳐 길림, 한반도 지역으로 이행된다.
고흥(高興) 운대리(雲袋里) 고인돌은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4기의 고인돌이 발굴되었지만,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고인돌 부근에서 돌널이 조사되었는데, 비파형동검 조각이 출토되었다. 1999년에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운대리 중대마을 입구에 있는 고인돌 24기를 발굴 조사하였는데, 13호 고인돌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고흥 운대리 고인돌 (高興 雲袋里 고인돌)
고흥(高興) 운대리(雲袋里) 고인돌은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4기의 고인돌이 발굴되었지만,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고인돌 부근에서 돌널이 조사되었는데, 비파형동검 조각이 출토되었다. 1999년에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운대리 중대마을 입구에 있는 고인돌 24기를 발굴 조사하였는데, 13호 고인돌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고흥중산리지석묘군(高興中山里支石墓群)은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고흥 중산리 일대에는 고인돌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그 중 고흥중산리지석묘군은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고흥 중산리 중산 지석묘Ⅰ과 고흥 중산리 운교 지석묘Ⅰ은 고흥-벌교 간 국도 확 · 포장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간돌검, 돌살촉, 돌도끼, 돌끌, 돌낫, 구슬옥, 붉은간토기, 검은간토기, 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고흥 중산리 지석묘군 (高興 中山里 支石墓群)
고흥중산리지석묘군(高興中山里支石墓群)은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고흥 중산리 일대에는 고인돌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그 중 고흥중산리지석묘군은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고흥 중산리 중산 지석묘Ⅰ과 고흥 중산리 운교 지석묘Ⅰ은 고흥-벌교 간 국도 확 · 포장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간돌검, 돌살촉, 돌도끼, 돌끌, 돌낫, 구슬옥, 붉은간토기, 검은간토기, 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북한 자강도 강계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석기류·토기류·화덕자리·토제품 등이 출토된 집터.
강계 공귀리 유적 (江界 公貴里 遺蹟)
북한 자강도 강계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석기류·토기류·화덕자리·토제품 등이 출토된 집터.
북한 평안북도 강계군 어뢰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단추형 장식·검은간토기 등이 출토된 돌널무덤. 석관묘.
강계 풍룡동 유적 (江界 豊龍洞 遺蹟)
북한 평안북도 강계군 어뢰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단추형 장식·검은간토기 등이 출토된 돌널무덤. 석관묘.
미송리형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 걸쳐 사용한 토기로, 표면에 가로줄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줄 무늬의 수가 적어지고 손잡이의 모양도 간략한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의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중심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8∼7세기에 해당한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동검과 더불어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미송리형토기 (美松里型土器)
미송리형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 걸쳐 사용한 토기로, 표면에 가로줄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줄 무늬의 수가 적어지고 손잡이의 모양도 간략한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의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중심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8∼7세기에 해당한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동검과 더불어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석기류·토기류·화덕자리 등이 출토된 집터.
강릉 방내리 유적 (江陵 坊內里 遺蹟)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석기류·토기류·화덕자리 등이 출토된 집터.
민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 비하여 문양이 없거나 적고, 장석, 석영, 운모 등의 비짐을 섞어 800℃ 이하의 온도에서 소성한 청동기시대 토기이다. 민무늬토기의 형태와 문양은 지역별로 다양하여 한반도 청동기시대 주민들의 시 · 공간적 분포 및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지역에 따라 팽이형 토기, 미송리형토기, 화분형 토기 등이 있으며, 빛깔은 주로 갈색을 띤다.
민무늬토기 (민무늬土器)
민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 비하여 문양이 없거나 적고, 장석, 석영, 운모 등의 비짐을 섞어 800℃ 이하의 온도에서 소성한 청동기시대 토기이다. 민무늬토기의 형태와 문양은 지역별로 다양하여 한반도 청동기시대 주민들의 시 · 공간적 분포 및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지역에 따라 팽이형 토기, 미송리형토기, 화분형 토기 등이 있으며, 빛깔은 주로 갈색을 띤다.
강진(康津) 지석리(支石里) 고인돌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1967년 국립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언덕 위에 10여 기의 고인돌들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동남쪽 끝에 있는 고인돌을 조사하였다. 이 고인돌의 돌널은 일부 파괴되었지만, 판돌로 짜서 만들었다. 고인돌의 구조와 형태로 보아 남방식의 일종인 뚜껑식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강진 지석리 고인돌 (康津 支石里 고인돌)
강진(康津) 지석리(支石里) 고인돌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1967년 국립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언덕 위에 10여 기의 고인돌들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동남쪽 끝에 있는 고인돌을 조사하였다. 이 고인돌의 돌널은 일부 파괴되었지만, 판돌로 짜서 만들었다. 고인돌의 구조와 형태로 보아 남방식의 일종인 뚜껑식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덧띠토기는 아가리 바깥 부분에 단면이 원형에 가까운 덧띠를 말아 붙여서 아가리를 이중으로 만든 청동기시대 후기~초기 철기시대의 일상용 토기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토기이며, 한국고고학에서는 점토대토기라고 한다. 크게 원형덧띠토기와 삼각형덧띠토기로 구분되는데, 이 순서는 시간성을 갖고 있으며, 함께 출토되는 금속기 유물도 청동기와 철기로 나뉘어진다.
덧띠토기 (덧띠土器)
덧띠토기는 아가리 바깥 부분에 단면이 원형에 가까운 덧띠를 말아 붙여서 아가리를 이중으로 만든 청동기시대 후기~초기 철기시대의 일상용 토기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토기이며, 한국고고학에서는 점토대토기라고 한다. 크게 원형덧띠토기와 삼각형덧띠토기로 구분되는데, 이 순서는 시간성을 갖고 있으며, 함께 출토되는 금속기 유물도 청동기와 철기로 나뉘어진다.
강화삼거리유적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집터 유적이다. 고인돌과 팽이형토기가 나온 집터는 서북한 지역 대동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주목된다. 팽이형토기 문화는 강화도의 삼거리, 오상리, 장정리 유적을 비롯하여 김포, 화천, 춘천 등 여러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으므로 서북한과 남한 지역 사이의 문화접변 및 문화변동의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강화 삼거리 유적 (江華 三巨里 遺蹟)
강화삼거리유적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집터 유적이다. 고인돌과 팽이형토기가 나온 집터는 서북한 지역 대동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주목된다. 팽이형토기 문화는 강화도의 삼거리, 오상리, 장정리 유적을 비롯하여 김포, 화천, 춘천 등 여러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으므로 서북한과 남한 지역 사이의 문화접변 및 문화변동의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북청토성리유적은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 일대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의 유적 · 유물들이 자주 확인되었다. 1982년에는 청동기시대 집터 2기가 발굴되었다. 특히 2호 집터에서는 청동부채도끼, 청동끌, 청동방울, 청동토시 등 청동기 20여 점과 돌단검, 돌살촉, 돌도끼, 돌대패날, 돌끌, 갈색간그릇, 검정간그릇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금야-토성리 문화 유형을 대표한다.
북청 토성리 유적 (北靑 土城里 遺蹟)
북청토성리유적은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 일대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의 유적 · 유물들이 자주 확인되었다. 1982년에는 청동기시대 집터 2기가 발굴되었다. 특히 2호 집터에서는 청동부채도끼, 청동끌, 청동방울, 청동토시 등 청동기 20여 점과 돌단검, 돌살촉, 돌도끼, 돌대패날, 돌끌, 갈색간그릇, 검정간그릇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금야-토성리 문화 유형을 대표한다.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살촉·패옥 등이 출토된 돌널무덤. 석관묘.
단양 안동리 석관묘 (丹陽 安東里 石棺墓)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살촉·패옥 등이 출토된 돌널무덤. 석관묘.
광주덕풍리유적은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및 제의 바위 유적이다. 광주덕풍리유적은 산 맨 꼭대기 부분의 바위를 제의 장소로 활용했다는 점과 언덕에 흩어져 퍼져 있는 가옥의 모양이나 상태를 확인한 점에서 당시 사람들의 신앙과 주거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광주 덕풍리 유적 (廣州 德豊里 遺蹟)
광주덕풍리유적은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및 제의 바위 유적이다. 광주덕풍리유적은 산 맨 꼭대기 부분의 바위를 제의 장소로 활용했다는 점과 언덕에 흩어져 퍼져 있는 가옥의 모양이나 상태를 확인한 점에서 당시 사람들의 신앙과 주거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돌검은 청동기시대에 돌을 갈아서 만든 단검(短劍) 형태의 석기이다. 간돌검, 마제석검이라고도 한다. 세형동검, 오르도스(Ordos)식 동검, 비파형동검, 중국식 동검[桃氏劍]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적인 집단이 단단하고 결이 발달해 있는 혼펠스(hornfels)을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목제 자루를 결합하여 사용하는 슴베달린 형식과 돌검 자체에 자루가 달린 형식으로 구분된다. 최근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독특한 형태로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개발된 석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돌검 (돌劍)
돌검은 청동기시대에 돌을 갈아서 만든 단검(短劍) 형태의 석기이다. 간돌검, 마제석검이라고도 한다. 세형동검, 오르도스(Ordos)식 동검, 비파형동검, 중국식 동검[桃氏劍]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적인 집단이 단단하고 결이 발달해 있는 혼펠스(hornfels)을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목제 자루를 결합하여 사용하는 슴베달린 형식과 돌검 자체에 자루가 달린 형식으로 구분된다. 최근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독특한 형태로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개발된 석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광주(光州) 충효동(忠孝洞)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다. ‘광주 충효동 성안 고인돌’이라고 하기도 한다. 7기의 고인돌이 동서 방향으로 분포하는데, 1977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그 중 6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덮개돌은 11~28톤 정도이며, 모두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이다. 민무늬토기 조각, 붉은간토기 조각, 돌살촉, 숫돌 등 3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광주 충효동 고인돌 (光州 忠孝洞 고인돌)
광주(光州) 충효동(忠孝洞)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다. ‘광주 충효동 성안 고인돌’이라고 하기도 한다. 7기의 고인돌이 동서 방향으로 분포하는데, 1977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그 중 6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덮개돌은 11~28톤 정도이며, 모두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이다. 민무늬토기 조각, 붉은간토기 조각, 돌살촉, 숫돌 등 3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고인돌, 석개토광묘, 독무덤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이다. 일반적인 형태는 지하에 묘광을 파고 판돌이나 깬돌로 장방형의 돌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1매 이상의 뚜껑돌을 덮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의 옛 터전인 중국 동북부 지방과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남한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발견되며, 금강 중하류 일대에서 밀집 분포를 보이고 있다.
돌널무덤
돌널무덤은 고인돌, 석개토광묘, 독무덤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이다. 일반적인 형태는 지하에 묘광을 파고 판돌이나 깬돌로 장방형의 돌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1매 이상의 뚜껑돌을 덮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의 옛 터전인 중국 동북부 지방과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남한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발견되며, 금강 중하류 일대에서 밀집 분포를 보이고 있다.
돌칼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식료 가공 및 곡물 수확용으로 제작된 칼 모양의 석기이다. 신석기시대의 돌칼과 돌칼모양석기, 청동기시대의 반달돌칼과 ‘ㄱ’자모양돌칼 등이 대표적인데, 이 중 신석기시대의 돌칼모양석기는 뗀석기이며, 나머지는 모두 간석기에 해당한다.
돌칼
돌칼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식료 가공 및 곡물 수확용으로 제작된 칼 모양의 석기이다. 신석기시대의 돌칼과 돌칼모양석기, 청동기시대의 반달돌칼과 ‘ㄱ’자모양돌칼 등이 대표적인데, 이 중 신석기시대의 돌칼모양석기는 뗀석기이며, 나머지는 모두 간석기에 해당한다.
길림 서단산자 유적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터 등이 출토된 복합 유적이다. 이 유적은 중국 동북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문화 가운데 하나인 ‘서단산 문화’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유적은 길림·장춘지역의 서단산 문화를 대표한다. 서단산 남서쪽 비탈에 자리하고 있으며 돌널무덤이 밀집해 있다. 유물로는 어린이의 뼈와 이빨, 토기, 석기,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고조선 또는 숙신족의 문화로 이해돼 한반도와의 문화적 동질성도 확인된다.
길림 서단산자 유적 (吉林 西團山子 遺蹟)
길림 서단산자 유적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터 등이 출토된 복합 유적이다. 이 유적은 중국 동북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문화 가운데 하나인 ‘서단산 문화’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유적은 길림·장춘지역의 서단산 문화를 대표한다. 서단산 남서쪽 비탈에 자리하고 있으며 돌널무덤이 밀집해 있다. 유물로는 어린이의 뼈와 이빨, 토기, 석기,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고조선 또는 숙신족의 문화로 이해돼 한반도와의 문화적 동질성도 확인된다.
길림 소달구 유적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 소달구촌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1941년부터 1953년까지 5차례에 걸쳐 모두 28기의 돌널무덤이 발굴조사되었다. 소달구 북쪽의 평정산 남쪽 기슭을 따라 동서로 길게 분포하고 있다. 평정산 동쪽 정상부에는 대형 돌널무덤이 따로 위치하고 있는데 돌널과 뚜껑돌의 길이가 2m가 넘는다. 이 유적의 돌널무덤들은 모두 괴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토기, 각종 석기가 있으며, 가락바퀴, 돼지뼈 등도 확인되었다. 무덤의 조성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7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길림 소달구 유적 (吉林 騷達溝 遺蹟)
길림 소달구 유적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 소달구촌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1941년부터 1953년까지 5차례에 걸쳐 모두 28기의 돌널무덤이 발굴조사되었다. 소달구 북쪽의 평정산 남쪽 기슭을 따라 동서로 길게 분포하고 있다. 평정산 동쪽 정상부에는 대형 돌널무덤이 따로 위치하고 있는데 돌널과 뚜껑돌의 길이가 2m가 넘는다. 이 유적의 돌널무덤들은 모두 괴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토기, 각종 석기가 있으며, 가락바퀴, 돼지뼈 등도 확인되었다. 무덤의 조성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7세기 정도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