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총회"
검색결과 총 32건
1991년 남한과 북한이 각각 유엔 회원국이 된 사건.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南北韓 同時 UN 加入)
1991년 남한과 북한이 각각 유엔 회원국이 된 사건.
‘제2차 유엔(UN) 총회’(1947.11.14) 결정에 따라 5·10 총선거의 공정한 감시 및 관리를 위해 입국한 유엔 산하의 임시기구로서 영문 약칭은 UNTCOK(UN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UN 韓國臨時委員團)
‘제2차 유엔(UN) 총회’(1947.11.14) 결정에 따라 5·10 총선거의 공정한 감시 및 관리를 위해 입국한 유엔 산하의 임시기구로서 영문 약칭은 UNTCOK(UN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장면 (張勉)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원세훈 (元世勳)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해방 이후 올림픽대책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역임한 체육인.
전경무 (田耕武)
해방 이후 올림픽대책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역임한 체육인.
일제강점기 때, 신한청년당 대표,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목사·독립운동가.
송병조 (宋秉祚)
일제강점기 때, 신한청년당 대표,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목사·독립운동가.
한반도 통일 문제 해결을 위한 잠정적 방법의 하나로 남ㆍ북한 정권을 상호인정하는 방안을 가리키는 정치용어.
남북교차승인 (南北交叉承認)
한반도 통일 문제 해결을 위한 잠정적 방법의 하나로 남ㆍ북한 정권을 상호인정하는 방안을 가리키는 정치용어.
혈성단(血誠團)은 1920년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추풍(秋風)에서 조직된 항일무장단체이다. 강국모(姜國模), 김종화(金鍾和) 등이 서간도(西間島)에서 이동해 온 독립단(獨立團) 부대원들을 기반으로 설립하였다. 채영(蔡英)을 사령관으로 추대하여 1920년 6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20년 10월 아누치노로 이동해 수청(水淸) 군대, 신민단(新民團) 부대와 통합하였으나, 1921년 가을 다시 추풍으로 돌아갔다.
혈성단 (血誠團)
혈성단(血誠團)은 1920년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추풍(秋風)에서 조직된 항일무장단체이다. 강국모(姜國模), 김종화(金鍾和) 등이 서간도(西間島)에서 이동해 온 독립단(獨立團) 부대원들을 기반으로 설립하였다. 채영(蔡英)을 사령관으로 추대하여 1920년 6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20년 10월 아누치노로 이동해 수청(水淸) 군대, 신민단(新民團) 부대와 통합하였으나, 1921년 가을 다시 추풍으로 돌아갔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학촌로에 있는 사립 신학대학교.
총신대학교 (總神大學校)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학촌로에 있는 사립 신학대학교.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흥사단을 조직하고,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 독립신문사 하와이 지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강영소 (姜永韶)
일제강점기 때, 미국으로 노동 이민하여 흥사단을 조직하고,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 독립신문사 하와이 지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선천 남교회 목사, 중화기독교전국총회 창립요원 등을 역임한 목사. 선교사.
방효원 (方孝元)
일제강점기 선천 남교회 목사, 중화기독교전국총회 창립요원 등을 역임한 목사. 선교사.
1929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농민을 대상으로 창간한 월간 잡지.
농민생활 (農民生活)
1929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농민을 대상으로 창간한 월간 잡지.
1909년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한인합성신보』를 계승하여 창간한 한국어 신문.
신한국보 (新韓國報)
1909년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한인합성신보』를 계승하여 창간한 한국어 신문.
일제강점기 오산교회, 평양 서문밖교회, 대타령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부흥사.
임종순 (林鍾純)
일제강점기 오산교회, 평양 서문밖교회, 대타령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부흥사.
일제강점기 중국 산둥 선교사로 임명되어 활약한 목사. 선교사.
홍승한 (洪承漢)
일제강점기 중국 산둥 선교사로 임명되어 활약한 목사. 선교사.
1914년 6월 오클랜드지역 한인들이 설립한 한인감리교회.
오클랜드한인감리교회 (Auckland韓人監理敎會)
1914년 6월 오클랜드지역 한인들이 설립한 한인감리교회.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 있는 해방 이후 재미한인과 대한인국민회와 한국독립운동 등의 자료 관련 기념관. 역사기념관. 해외사적.
국민회기념관 (國民會紀念館)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 있는 해방 이후 재미한인과 대한인국민회와 한국독립운동 등의 자료 관련 기념관. 역사기념관. 해외사적.
주영한은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나성지방회 재무, 구미위원부 사무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 대한 선전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1916년 미국 유학을 떠나 로스앤젤레스공립중학교를 다녔다. 클리블랜드와 애크론에 살면서 3·1절 경축식을 거행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공개편지』를 창간해 한국 독립을 위한 선전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샌프란시스코 초대 총영사로 활동하였다. 이승만의 정치 선전 활동을 전개하다가 한인들로부터 총영사 소환 요구를 받고 1960년 사임하였다.
주영한 (朱榮翰)
주영한은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나성지방회 재무, 구미위원부 사무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 대한 선전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1916년 미국 유학을 떠나 로스앤젤레스공립중학교를 다녔다. 클리블랜드와 애크론에 살면서 3·1절 경축식을 거행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공개편지』를 창간해 한국 독립을 위한 선전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샌프란시스코 초대 총영사로 활동하였다. 이승만의 정치 선전 활동을 전개하다가 한인들로부터 총영사 소환 요구를 받고 1960년 사임하였다.
1911년 미주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군인양성운동을 확산할 목적으로 편찬한 학술서. 정치서.
국민개병설 (國民皆兵說)
1911년 미주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군인양성운동을 확산할 목적으로 편찬한 학술서. 정치서.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는 미주 한인들에 의해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민족혁명당을 후원하고 미주 내 선전 및 외교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민족혁명당의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에 합류된다는 사실을 접하고 1942년에 결성했다. 결성 초기 회장은 변준호, 총무는 김강 등 대부분 미국 내 진보적인 한인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민족혁명당에 대한 자금원조 및 군사 운동을 위한 군사금 모금 활동에 주력했다. 기관지 『독립』을 발행했는데 1955년까지 지속했다. 이 단체는 미주한인사회에 새로운 정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 (朝鮮民族革命黨 美州總支部)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는 미주 한인들에 의해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민족혁명당을 후원하고 미주 내 선전 및 외교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민족혁명당의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에 합류된다는 사실을 접하고 1942년에 결성했다. 결성 초기 회장은 변준호, 총무는 김강 등 대부분 미국 내 진보적인 한인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민족혁명당에 대한 자금원조 및 군사 운동을 위한 군사금 모금 활동에 주력했다. 기관지 『독립』을 발행했는데 1955년까지 지속했다. 이 단체는 미주한인사회에 새로운 정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