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충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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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은 1225년(고종 12) 6월, 최우가 자기 집에 설치한 인사담당 기관이다. 정당·정사당·죽당이라고도 한다. 최충헌 때부터 자신의 집에서 문무백관의 인사행정을 마음대로 해 오던 것을 최우가 공식 인사기구로 정착시킨 것이 정방이다. 무신정권은 행정실무와 문서작성에 능한 관리가 필요했고 여기에 벼슬길 진출을 갈망하던 사인층의 요구가 서로 부응하면서 설치되었다. 정방은 관리의 임명과 해임, 승진과 좌천 등 모든 권한을 장악하여 인사행정을 다루었다. 무신정권 이후에도 국가기관으로 변해 폐지와 재설립을 반복하다가 1388년(우왕 14)에 폐지되었다.
정방 (政房)
정방은 1225년(고종 12) 6월, 최우가 자기 집에 설치한 인사담당 기관이다. 정당·정사당·죽당이라고도 한다. 최충헌 때부터 자신의 집에서 문무백관의 인사행정을 마음대로 해 오던 것을 최우가 공식 인사기구로 정착시킨 것이 정방이다. 무신정권은 행정실무와 문서작성에 능한 관리가 필요했고 여기에 벼슬길 진출을 갈망하던 사인층의 요구가 서로 부응하면서 설치되었다. 정방은 관리의 임명과 해임, 승진과 좌천 등 모든 권한을 장악하여 인사행정을 다루었다. 무신정권 이후에도 국가기관으로 변해 폐지와 재설립을 반복하다가 1388년(우왕 14)에 폐지되었다.
충선왕은 고려 제26대(재위: 1298, 1308~1313) 왕이다. 1298년(충렬왕 24) 충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했으나, 왕비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 및 관제 개편의 참월함 등이 문제가 되어 같은 해 폐위되었다. 충렬왕 사후 1308년(충렬왕 34)에 다시 왕위에 오른 후 개혁 교서를 반포하고 원에 가서 체재하였다. 1313년(충선왕 5)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준 후에도 고려 정치를 좌우하다가 1320년(충숙왕 7)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토번에 유배되면서 실각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원에서 사망하였다.
충선왕 (忠宣王)
충선왕은 고려 제26대(재위: 1298, 1308~1313) 왕이다. 1298년(충렬왕 24) 충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했으나, 왕비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 및 관제 개편의 참월함 등이 문제가 되어 같은 해 폐위되었다. 충렬왕 사후 1308년(충렬왕 34)에 다시 왕위에 오른 후 개혁 교서를 반포하고 원에 가서 체재하였다. 1313년(충선왕 5)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준 후에도 고려 정치를 좌우하다가 1320년(충숙왕 7)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토번에 유배되면서 실각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원에서 사망하였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고 (蒙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루가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제국에서 정복지의 총독, 감독관으로 두었다가 지방장관으로도 사용된 직명이다. 고려에는 1232년(고종 19)에 처음 설치되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한 후인 1270년부터 1278년까지 개경에 상주하였다.
다루가치 (達魯花赤)
다루가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제국에서 정복지의 총독, 감독관으로 두었다가 지방장관으로도 사용된 직명이다. 고려에는 1232년(고종 19)에 처음 설치되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한 후인 1270년부터 1278년까지 개경에 상주하였다.
여원연합군은 삼별초 항쟁을 진압한 뒤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동원된 고려와 원나라의 연합군이다. 여몽연합군이라고도 한다. 몽골과 강화를 체결하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도를 거점으로 대항하였다. 고려 조정은 삼별초를 진압하기 위해 원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삼별초를 진압하였다. 이후 고려는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원나라는 일본정벌을 위해 다시 여원연합군이 조직하여,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일본정벌을 시도하였다. 두 차례 정벌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어 실패하였고, 1294년 일본정벌 계획은 중단되었다.
여원연합군 (麗元聯合軍)
여원연합군은 삼별초 항쟁을 진압한 뒤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동원된 고려와 원나라의 연합군이다. 여몽연합군이라고도 한다. 몽골과 강화를 체결하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도를 거점으로 대항하였다. 고려 조정은 삼별초를 진압하기 위해 원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삼별초를 진압하였다. 이후 고려는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원나라는 일본정벌을 위해 다시 여원연합군이 조직하여,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일본정벌을 시도하였다. 두 차례 정벌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어 실패하였고, 1294년 일본정벌 계획은 중단되었다.
조인규는 고려 후기에 중찬, 사도, 시중, 참지광정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37년(고종 24)에 태어나 1308년(충렬왕 34)에 사망했다. 몽고어 통역관으로 충렬왕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입조하였다. 탁월한 몽고어 구사력으로 원나라 세조에게 신임을 받아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의 딸이 세자비로 간택되어 정치적 지위가 더욱 높아졌다. 충선왕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다가 조비무고사건에 연루되어 원나라에 끌려가 안서에 유배되었다. 원나라 무종을 옹립한 공으로 충선왕의 정치력이 복권되면서 선충익대보조공신이 되었다.
조인규 (趙仁規)
조인규는 고려 후기에 중찬, 사도, 시중, 참지광정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37년(고종 24)에 태어나 1308년(충렬왕 34)에 사망했다. 몽고어 통역관으로 충렬왕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입조하였다. 탁월한 몽고어 구사력으로 원나라 세조에게 신임을 받아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의 딸이 세자비로 간택되어 정치적 지위가 더욱 높아졌다. 충선왕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다가 조비무고사건에 연루되어 원나라에 끌려가 안서에 유배되었다. 원나라 무종을 옹립한 공으로 충선왕의 정치력이 복권되면서 선충익대보조공신이 되었다.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이 창건한 사찰.
개성 묘련사 (開城 妙蓮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이 창건한 사찰.
필도치는 1278년(충렬왕 4), 몽골의 영향으로 등장한 문서 담당 관직이다. 충렬왕은 즉위 이후 왕권을 구축, 강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 몽골의 겁설(怯薛) 제도를 수용하였으며, 필도치(비칙치)는 그중 하나였다.
필도치 (必闍赤)
필도치는 1278년(충렬왕 4), 몽골의 영향으로 등장한 문서 담당 관직이다. 충렬왕은 즉위 이후 왕권을 구축, 강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 몽골의 겁설(怯薛) 제도를 수용하였으며, 필도치(비칙치)는 그중 하나였다.
한희유는 고려 후기 동북면도지휘사(東北面都指揮使),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 첨의우중찬(僉議右中贊)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무신이다. 고려 충렬왕 대에 군졸 출신으로서 재상 자리까지 오른 관료이다. 몽골의 종왕(宗王)인 합단(哈丹, 카단)이 고려를 침입해 왔을 때 이를 물리치는 데에 공을 세웠다. 충렬왕 세력과 충선왕 세력의 갈등 속에서 충렬왕 측에 섰으며, 이 과정에서 무고사건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한희유 (韓希愈)
한희유는 고려 후기 동북면도지휘사(東北面都指揮使),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 첨의우중찬(僉議右中贊)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무신이다. 고려 충렬왕 대에 군졸 출신으로서 재상 자리까지 오른 관료이다. 몽골의 종왕(宗王)인 합단(哈丹, 카단)이 고려를 침입해 왔을 때 이를 물리치는 데에 공을 세웠다. 충렬왕 세력과 충선왕 세력의 갈등 속에서 충렬왕 측에 섰으며, 이 과정에서 무고사건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고려 후기에, 지공거, 벽상삼한삼중대광 수사공 등을 역임한 문신.
정가신 (鄭可臣)
고려 후기에, 지공거, 벽상삼한삼중대광 수사공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의 제25대 충렬왕의 손자로, 연안군에 봉해졌으며, 충선왕에게 심왕위를 이어받아 고려왕위를 빼앗으려 했지만 실패한 종실.
왕고 (王暠)
고려의 제25대 충렬왕의 손자로, 연안군에 봉해졌으며, 충선왕에게 심왕위를 이어받아 고려왕위를 빼앗으려 했지만 실패한 종실.
고려후기 장군, 충청도지휘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임비 (林庇)
고려후기 장군, 충청도지휘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개성 광명사 (開城 廣明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고려후기 법률·사송(詞訟)·상언(詳讞)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중앙 관서.
전법사 (典法司)
고려후기 법률·사송(詞訟)·상언(詳讞)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중앙 관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 있었던 고려후기 승려 일연이 주지로 임직한 사찰.
대구 인용사 (大邱 仁容寺)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 있었던 고려후기 승려 일연이 주지로 임직한 사찰.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의 왕비.
숙창원비 (淑昌院妃)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의 왕비.
고려 후기에, 북경동지, 동경총관, 찬성사 등을 역임한 역관.
강수형 (康守衡)
고려 후기에, 북경동지, 동경총관, 찬성사 등을 역임한 역관.
고려의 제25대 왕, 충렬왕의 첫째 왕자.
강양공 (江陽公)
고려의 제25대 왕, 충렬왕의 첫째 왕자.
고려 후기에 동지공거 · 좌승지 · 찬성사 · 중찬 등을 역임한 문신.
설공검 (薛公儉)
고려 후기에 동지공거 · 좌승지 · 찬성사 · 중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인은 고려 후기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자주 파견되어 활동한 무신이다. 그는 원종 대와 충렬왕 대에 걸쳐 모두 다섯 차례 원나라에 파견되었다. 그는 위득유와 노진의가 충렬왕을 무고하였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되는 등 고려와 원나라와의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별장, 낭장, 중랑장 등을 거쳐 장군 등을 지냈다.
이인 (李仁)
이인은 고려 후기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자주 파견되어 활동한 무신이다. 그는 원종 대와 충렬왕 대에 걸쳐 모두 다섯 차례 원나라에 파견되었다. 그는 위득유와 노진의가 충렬왕을 무고하였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되는 등 고려와 원나라와의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별장, 낭장, 중랑장 등을 거쳐 장군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