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풍물"
검색결과 총 11건
소고를 들고 추는 춤.
소고춤 (小鼓춤)
소고를 들고 추는 춤.
경기도 고양시 범개마을의 두레패를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풍물굿.
고양송포농악 (高陽松浦農樂)
경기도 고양시 범개마을의 두레패를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는 풍물굿.
경기도 지역의 풍물굿에서 쓰이는 장단.
경기도 풍물장단 (京畿道 風物長短)
경기도 지역의 풍물굿에서 쓰이는 장단.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전역에서 농사철에 두레를 조직하여 농사일의 능률과 농작물의 생육을 촉진시키기 위해 풍물을 치는 민속놀이.
세도 두레풍장 (世道 두레풍장)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전역에서 농사철에 두레를 조직하여 농사일의 능률과 농작물의 생육을 촉진시키기 위해 풍물을 치는 민속놀이.
유달산 노적놀이는 전라남도 목포시 측후동 유달산 노적봉에 얽힌 전승설화를 새롭게 재구성한 민속놀이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기세를 꺾기 위해 유달산 노적봉을 군량미처럼 위장하고, 강강술래를 군사훈련인 것처럼 속였다. 이후 이 지역에서 노적놀이가 성행한 것으로 전한다. 노적놀이는 가을 벼 베기가 끝난 후 풍물놀이, 강강술래, 노적쌓기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마을풍물패의 판굿과 함께 모든 일꾼들이 나와 춤을 추면서 행사를 마친다. 전승설화를 근거로 농촌의 전형적인 문화적 양식이 반영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유달산 노적놀이 (儒達山 露積놀이)
유달산 노적놀이는 전라남도 목포시 측후동 유달산 노적봉에 얽힌 전승설화를 새롭게 재구성한 민속놀이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기세를 꺾기 위해 유달산 노적봉을 군량미처럼 위장하고, 강강술래를 군사훈련인 것처럼 속였다. 이후 이 지역에서 노적놀이가 성행한 것으로 전한다. 노적놀이는 가을 벼 베기가 끝난 후 풍물놀이, 강강술래, 노적쌓기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마을풍물패의 판굿과 함께 모든 일꾼들이 나와 춤을 추면서 행사를 마친다. 전승설화를 근거로 농촌의 전형적인 문화적 양식이 반영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국가무형유산 「평택농악(상쇠)」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최은창 (崔殷昌)
해방 이후 국가무형유산 「평택농악(상쇠)」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음력 정월 14일 밤부터 다음날까지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동제(洞祭)의 하나이다. 동제는 산신제 · 서낭제 · 용왕제 · 탑신제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산신제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며, 서낭제는 주로 한강 이북에, 용왕제는 바닷가 주변에서, 탑신제는 한강 이남에서 주로 행해진다. 제천의 오티별신제는 한강 이북에 분포된 북방계의 서낭제로서, 그 제의(祭儀)는 별신제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2001년 2월 3일 충청북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 · 전승되고 있다.
제천오티별신제 (堤川吾峙別神祭)
음력 정월 14일 밤부터 다음날까지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동제(洞祭)의 하나이다. 동제는 산신제 · 서낭제 · 용왕제 · 탑신제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산신제는 전국적으로 행해지며, 서낭제는 주로 한강 이북에, 용왕제는 바닷가 주변에서, 탑신제는 한강 이남에서 주로 행해진다. 제천의 오티별신제는 한강 이북에 분포된 북방계의 서낭제로서, 그 제의(祭儀)는 별신제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2001년 2월 3일 충청북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 · 전승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서천리에서 전승되는 농악.
용인서천리풍물 (龍仁西川里風物)
경기도 용인시 서천리에서 전승되는 농악.
「배치기소리」는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만선이 되어 돌아오며 흥겹게 부르는 어업노동요이다. 정초에 풍어제에서 또는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 전에 풍어를 기원하면서도 불렀다. 서해안 전역에서 조기잡이와 관련하여 많이 불렸으며,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체로 유사한 노랫말과 선율 형태를 보인다. 선후창으로 부르며, 받는소리는 3소박 4박자 3장단에 부르고, 메기는소리는 3소박 4박자 2장단 길이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주로 수심가토리 및 반수심가토리를 사용한다.
배치기
「배치기소리」는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만선이 되어 돌아오며 흥겹게 부르는 어업노동요이다. 정초에 풍어제에서 또는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 전에 풍어를 기원하면서도 불렀다. 서해안 전역에서 조기잡이와 관련하여 많이 불렸으며,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체로 유사한 노랫말과 선율 형태를 보인다. 선후창으로 부르며, 받는소리는 3소박 4박자 3장단에 부르고, 메기는소리는 3소박 4박자 2장단 길이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주로 수심가토리 및 반수심가토리를 사용한다.
「대한즉경도」는 1901년 9월 19일 『그리스도신문』에 목판 인쇄 방식으로 게재된 한국의 모습을 담은 다섯 장의 사진 연작이다. 모두가 1900년 경 한국의 여러가지 풍물 즉 가마를 메고 가는 장면, 관복을 입고 고목나무 옆에 기대 있는 무관의 모습, 어린 소년 행상, 농가 풍경 등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대한즉경도 (大韓卽景圖)
「대한즉경도」는 1901년 9월 19일 『그리스도신문』에 목판 인쇄 방식으로 게재된 한국의 모습을 담은 다섯 장의 사진 연작이다. 모두가 1900년 경 한국의 여러가지 풍물 즉 가마를 메고 가는 장면, 관복을 입고 고목나무 옆에 기대 있는 무관의 모습, 어린 소년 행상, 농가 풍경 등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이해선은 1945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고, 예술 사진의 한 축을 이끈 사진가이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 귀국 후 서양화와 사진을 병행하다가, 점차 아마추어 사진가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직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예술 사진의 확장에 이바지하였다.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이 진정한 예술 사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해선 (李海善)
이해선은 1945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고, 예술 사진의 한 축을 이끈 사진가이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30년 귀국 후 서양화와 사진을 병행하다가, 점차 아마추어 사진가 활동에 역점을 두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직후 조선사진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예술 사진의 확장에 이바지하였다.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이 진정한 예술 사진이라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