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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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는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68년(고종 5)에 태어나 1943년에 사망했다. 1907년 의병을 일으켜 일본 수비대를 격파하였고 1910년 포수단(砲手團)을 조직하여 독립군 양성에 진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대한독립군을 창설하였다. 1920년 봉오동에서 일본군 대부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고,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되어 극장 수위 등으로 일하다가 사망하였다.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여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홍범도 (洪範圖)
홍범도는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68년(고종 5)에 태어나 1943년에 사망했다. 1907년 의병을 일으켜 일본 수비대를 격파하였고 1910년 포수단(砲手團)을 조직하여 독립군 양성에 진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대한독립군을 창설하였다. 1920년 봉오동에서 일본군 대부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고,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되어 극장 수위 등으로 일하다가 사망하였다.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여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일제강점기 때, 학교와 서북학회 등을 설립해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동휘 (李東輝)
일제강점기 때, 학교와 서북학회 등을 설립해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망명하여 서전서숙, 신흥강습소를 설립하고, 신민회 및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등을 조직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회영 (李會榮)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망명하여 서전서숙, 신흥강습소를 설립하고, 신민회 및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등을 조직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대한독립군 (大韓獨立軍)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군.
조선혁명군 (朝鮮革命軍)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군.
1919년 5월 3일 만주에 설립되었던 독립군 양성학교.
신흥무관학교 (新興武官學校)
1919년 5월 3일 만주에 설립되었던 독립군 양성학교.
1914년 6월 10일 하와이 오아후(Oahu)섬 코올아우(Koolau)지방 카할루우(Kahaluu)의 아후이마누(Ahuimanu)농장에서 독립군사관을 양성할 목적으로 만든 군사교육단체.
대조선국민군단 (大朝鮮國民軍團)
1914년 6월 10일 하와이 오아후(Oahu)섬 코올아우(Koolau)지방 카할루우(Kahaluu)의 아후이마누(Ahuimanu)농장에서 독립군사관을 양성할 목적으로 만든 군사교육단체.
김병로는 해방 이후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부장, 대법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64년에 사망했다. 1910년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형법과 소송법 강의를 하며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했다.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 변론하며 다방면의 사회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장, 초대 및 제2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 재임 동안 사법부 밖에서 오는 온갖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김병로 (金炳魯)
김병로는 해방 이후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부장, 대법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64년에 사망했다. 1910년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형법과 소송법 강의를 하며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했다.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 변론하며 다방면의 사회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장, 초대 및 제2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 재임 동안 사법부 밖에서 오는 온갖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서로군정서는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군정부이다. 서간도의 무장 항일 운동 단체가 결성한 군정부(軍政府)로 남만주 일대 독립 운동 총본영이었다. 신흥중학교를 무관학교로 개편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고 소속 독립군을 편성하였다. 일제 식민통치기관 파괴 및 민족반역자의 색출·처단, 친일 기관들을 소탕하였다. 한족 회원의 헌금으로 유지되었는데 국내에 재정 후원을 위한 조선독립 후원 의용단과 같은 비밀 결사가 조직되었다. 1922년 효과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로 통합되었다.
서로군정서 (西路軍政署)
서로군정서는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군정부이다. 서간도의 무장 항일 운동 단체가 결성한 군정부(軍政府)로 남만주 일대 독립 운동 총본영이었다. 신흥중학교를 무관학교로 개편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고 소속 독립군을 편성하였다. 일제 식민통치기관 파괴 및 민족반역자의 색출·처단, 친일 기관들을 소탕하였다. 한족 회원의 헌금으로 유지되었는데 국내에 재정 후원을 위한 조선독립 후원 의용단과 같은 비밀 결사가 조직되었다. 1922년 효과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로 통합되었다.
1942년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개편하여 결성된 사회주의 단체.
조선독립동맹 (朝鮮獨立同盟)
1942년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개편하여 결성된 사회주의 단체.
동북항일연군은 「동북항일연군통일군대건제선언」에 따라 1936년 3월 만주지방에서 항일무장운동을 통합해 항일연합전선을 형성하기 위하여 동북인민혁명군을 확대하여 만든 항일무장단체이다. 1936년에서 1937년까지 동만주, 남만주, 북만주 등에서 일본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중국인과 한인의 연합부대로 김일성, 김책, 최용건 등이 대거 참여하여 큰 활약을 하였다. 해방 후 북한 정권 수립과정에 참여한 다수가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1945년 해방 후 당과 군의 요직을 차지하며 북한 정권 창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동북항일연군 (東北抗日連軍)
동북항일연군은 「동북항일연군통일군대건제선언」에 따라 1936년 3월 만주지방에서 항일무장운동을 통합해 항일연합전선을 형성하기 위하여 동북인민혁명군을 확대하여 만든 항일무장단체이다. 1936년에서 1937년까지 동만주, 남만주, 북만주 등에서 일본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중국인과 한인의 연합부대로 김일성, 김책, 최용건 등이 대거 참여하여 큰 활약을 하였다. 해방 후 북한 정권 수립과정에 참여한 다수가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1945년 해방 후 당과 군의 요직을 차지하며 북한 정권 창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907년 경기도 양주에서 조직되었던 항일의병부대이다. 총병력은 1만명에 이르렀고 그 중에 해산군인 3,000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병장은 모두 양반 유생 신분으로서 천민 출신 돌석이나 평민 출신 홍범도(洪範圖) · 김수민(金秀民) 등의 의병장은 연합전선에 참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서울탈환작전을 수행했으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받아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13도창의군은 위정척사계열 의병장의 한계성을 보여준 단적인 예로 평가되고 있다.
십삼도창의군 (十三道倡義軍)
1907년 경기도 양주에서 조직되었던 항일의병부대이다. 총병력은 1만명에 이르렀고 그 중에 해산군인 3,000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병장은 모두 양반 유생 신분으로서 천민 출신 돌석이나 평민 출신 홍범도(洪範圖) · 김수민(金秀民) 등의 의병장은 연합전선에 참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서울탈환작전을 수행했으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받아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13도창의군은 위정척사계열 의병장의 한계성을 보여준 단적인 예로 평가되고 있다.
1937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조직된 항일민족연합전선단체.
조선민족전선연맹 (朝鮮民族戰線聯盟)
1937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조직된 항일민족연합전선단체.
항일유격대는 1931년에 만주 일대에 설립된 비정규 항일무장단체이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에 대한 대규모 무력 침공을 전개함에 따라 중국 전역에서 대규모의 반일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일제의 무력 침공을 규탄하면서 전민족적인 항일운동을 주창하였고, 이에 여러 항일유격대가 창설되어 항일유격 전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항일구국 선언인 8·1선언을 발표하였고, 3로군 11군에 달하는 동북인민항일연군을 조직하였다. 14년 동안 항일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던 항일유격대는 만주 일대 여러 항일무장세력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였다.
항일유격대 (抗日遊擊隊)
항일유격대는 1931년에 만주 일대에 설립된 비정규 항일무장단체이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에 대한 대규모 무력 침공을 전개함에 따라 중국 전역에서 대규모의 반일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일제의 무력 침공을 규탄하면서 전민족적인 항일운동을 주창하였고, 이에 여러 항일유격대가 창설되어 항일유격 전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항일구국 선언인 8·1선언을 발표하였고, 3로군 11군에 달하는 동북인민항일연군을 조직하였다. 14년 동안 항일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던 항일유격대는 만주 일대 여러 항일무장세력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였다.
『세기와 더불어』는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의 회고적 자료를 모아 엮은 전집이다.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후 1995년 6권이 간행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 7월까지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8권이 나왔다. 김일성이 출생한 때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항일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 전까지(1권~5권)의 기록은 김일성의 회고라고 볼 수 있으나, 6권은 그의 유고, 담화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자신이 책을 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세기와 더불어 (世紀와 더불어)
『세기와 더불어』는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의 회고적 자료를 모아 엮은 전집이다.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후 1995년 6권이 간행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 7월까지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8권이 나왔다. 김일성이 출생한 때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항일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 전까지(1권~5권)의 기록은 김일성의 회고라고 볼 수 있으나, 6권은 그의 유고, 담화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자신이 책을 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우리 현대사 전반의 반민주적·반인권적 사건 등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2005년 5월 31일 여·야 합의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됨에 따라 설립된 독립적인 국가기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眞實·和解를 爲한 過去事整理委員會)
우리 현대사 전반의 반민주적·반인권적 사건 등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2005년 5월 31일 여·야 합의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됨에 따라 설립된 독립적인 국가기관.
일제강점기 때, 흑색공포단, 상해해방연맹, 중한청년연합회 등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정화암 (鄭華巖)
일제강점기 때, 흑색공포단, 상해해방연맹, 중한청년연합회 등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설립에 참여하여 임시정부 외무부 외사국장, 국무위원, 주화대표단 단장 등을 역임한 대종교인·독립운동가.
박찬익 (朴贊翊)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설립에 참여하여 임시정부 외무부 외사국장, 국무위원, 주화대표단 단장 등을 역임한 대종교인·독립운동가.
조완구는 일제강점기 임시의정원 의원,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장, 내무부장, 재무총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1년(고종 18)에 태어나 1955년에 사망했다. 대종교에 입교하여 북간도 용정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의 재무총장과 내무부장 등 국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의정원회의에서 주선하여 대통령 중심제로 개헌하고 단일통합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출범하게 하였다. 김구와 함께 한국광복군을 결성하였으며 1945년 귀국하였다가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조완구 (趙琬九)
조완구는 일제강점기 임시의정원 의원,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장, 내무부장, 재무총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1년(고종 18)에 태어나 1955년에 사망했다. 대종교에 입교하여 북간도 용정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의 재무총장과 내무부장 등 국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의정원회의에서 주선하여 대통령 중심제로 개헌하고 단일통합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출범하게 하였다. 김구와 함께 한국광복군을 결성하였으며 1945년 귀국하였다가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한중항일동맹회는 1935년 11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부대가 중국의 왕펑거[王鳳閣] 부대와 연합하여 조직한 한중 합작 항일운동단체이다. 조선혁명군은 한중항일동맹회로부터 적지 않은 무기와 식량을 지원받아 항전 역량을 강화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국내 진입 작전을 벌이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한중항일동맹회 (韓中抗日同盟會)
한중항일동맹회는 1935년 11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부대가 중국의 왕펑거[王鳳閣] 부대와 연합하여 조직한 한중 합작 항일운동단체이다. 조선혁명군은 한중항일동맹회로부터 적지 않은 무기와 식량을 지원받아 항전 역량을 강화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국내 진입 작전을 벌이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