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향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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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향약서.
상주 증손향약 (尙州 增損鄕約)
1692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향약서.
전북특별자치도 태인현 고현동에서 시행한 향약 및 향약 관련 자료를 모은 향약서.
태인 고현동 향약 (泰仁 古縣洞 鄕約)
전북특별자치도 태인현 고현동에서 시행한 향약 및 향약 관련 자료를 모은 향약서.
향약단(鄕約團)은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망명 유림들이 조직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이다. 화서학파(華西學派) 출신의 유림들이 조직하였으며, 전통적인 향약(鄕約) 활동과 무장투쟁단체의 성격을 지녔다. 정치적으로는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주장하였으며, 이후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향약단 (鄕約團)
향약단(鄕約團)은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망명 유림들이 조직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이다. 화서학파(華西學派) 출신의 유림들이 조직하였으며, 전통적인 향약(鄕約) 활동과 무장투쟁단체의 성격을 지녔다. 정치적으로는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주장하였으며, 이후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조선후기 학자 홍중삼이 주희가 증손(增損)한 『여씨향약』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보완한 향약서.
향약통변 (鄕約通變)
조선후기 학자 홍중삼이 주희가 증손(增損)한 『여씨향약』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보완한 향약서.
『백불암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최흥원의 문집이다. 1816년경에 간행된 목판본 초간본, 초간본의 구성을 축소시킨 간행 연대 미상의 목판본 중간본이 있다. 최흥원은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재야 퇴계학파로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향약인 부인동동약을 결성, 운영한 바 있다. 『백불암문집』은 이러한 최흥원의 학문관과 사상, 향촌 운영 방식을 보여 주는 동시에, 대산 이상정, 소산 이광정을 비롯한 영남 남인들의 학문적 교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자료이다.
백불암문집 (百弗庵文集)
『백불암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최흥원의 문집이다. 1816년경에 간행된 목판본 초간본, 초간본의 구성을 축소시킨 간행 연대 미상의 목판본 중간본이 있다. 최흥원은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재야 퇴계학파로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향약인 부인동동약을 결성, 운영한 바 있다. 『백불암문집』은 이러한 최흥원의 학문관과 사상, 향촌 운영 방식을 보여 주는 동시에, 대산 이상정, 소산 이광정을 비롯한 영남 남인들의 학문적 교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자료이다.
조선 전기에, 대사헌, 형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향약제생집성방』, 『우마의방』 등의 의학서적을 저술한 의학자.
김희선 (金希善)
조선 전기에, 대사헌, 형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향약제생집성방』, 『우마의방』 등의 의학서적을 저술한 의학자.
사림파는 조선 전기 산림에 묻혀 유학 연구에 힘쓰던 문인들이 훈구파와 대립하면서 중앙 정치에 진출해 지배층이 됐다고 평가된 세력이다. 사림파는 조선 성종 때부터 중앙정부에 진출하여 종래의 관료들인 훈구파를 비판하여 사화에 희생되기도 하였으나, 선조 때에 이르러서 그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사림파 (士林派)
사림파는 조선 전기 산림에 묻혀 유학 연구에 힘쓰던 문인들이 훈구파와 대립하면서 중앙 정치에 진출해 지배층이 됐다고 평가된 세력이다. 사림파는 조선 성종 때부터 중앙정부에 진출하여 종래의 관료들인 훈구파를 비판하여 사화에 희생되기도 하였으나, 선조 때에 이르러서 그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조선시대 향약조직의 임원.
약정 (約正)
조선시대 향약조직의 임원.
조선 전기에, 판문하부사, 우의정,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의원.
권중화 (權仲和)
조선 전기에, 판문하부사, 우의정,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의원.
예학은 유학에서 예의 학술적 의미를 확정하고 실천적 내용을 규정하는 학문이다. 유학의 출현과 함께 예의 개념적 정의와 실천적 내용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시작된 학문이다. 특히 성리학에 이르러 예를 천리와 인사를 연결하는 철학적 차원에서 논의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표방하면서 이기론과 같은 이론철학도 발전하였지만 실천철학적 성격이 짙은 예학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학술적 업적을 성취하였다.
예학 (禮學)
예학은 유학에서 예의 학술적 의미를 확정하고 실천적 내용을 규정하는 학문이다. 유학의 출현과 함께 예의 개념적 정의와 실천적 내용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시작된 학문이다. 특히 성리학에 이르러 예를 천리와 인사를 연결하는 철학적 차원에서 논의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표방하면서 이기론과 같은 이론철학도 발전하였지만 실천철학적 성격이 짙은 예학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학술적 업적을 성취하였다.
『소산유고』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 개항기까지 생존한 소산 장인목의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세상 풍속이 점점 나빠지고 젊은이들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향약 등을 통해 극복해 보고자 노력한 근대 개항기의 전형적인 유학자의 면모와 함께 조선 말 격동기의 사회적 문제점을 살펴보기에 적당한 문집이다.
소산유고 (素山遺稿)
『소산유고』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 개항기까지 생존한 소산 장인목의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세상 풍속이 점점 나빠지고 젊은이들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향약 등을 통해 극복해 보고자 노력한 근대 개항기의 전형적인 유학자의 면모와 함께 조선 말 격동기의 사회적 문제점을 살펴보기에 적당한 문집이다.
조선시대 성균관·향약·계·향회·향교·서원 등에서 처해지던 벌칙 중 한 종목.
손도 (損徒)
조선시대 성균관·향약·계·향회·향교·서원 등에서 처해지던 벌칙 중 한 종목.
조선후기 호남지방의 장암 대동계에서 1668년에 동약(洞約)의 모임 장소로 건립한 누정이다. 1987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중수기(重修記)」나 『대동계책(大同契冊)』을 살펴볼 때 계가 크게 왕성해진 1760년(영조 36)에 현재와 같은 규모로 다시 중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 집이다. 구조는 단층 목가구조로서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내부에 「장암정기」 · 「장암정중수기」와 각종 시문(詩文) 등 약 24개의 현판(懸板)이 보관되어 있다.
장암정 (場岩亭)
조선후기 호남지방의 장암 대동계에서 1668년에 동약(洞約)의 모임 장소로 건립한 누정이다. 1987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중수기(重修記)」나 『대동계책(大同契冊)』을 살펴볼 때 계가 크게 왕성해진 1760년(영조 36)에 현재와 같은 규모로 다시 중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 집이다. 구조는 단층 목가구조로서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내부에 「장암정기」 · 「장암정중수기」와 각종 시문(詩文) 등 약 24개의 현판(懸板)이 보관되어 있다.
『정속언해』는 조선 전기 문신·학자 김안국이 중국의 『정속편』을 풀이하여 1518년에 간행한 언해서이다. 『정속편』은 원나라 일암왕의 저술로서 14세기 중엽 중국 왕지화가 서문을 붙여 간행하였다. 풍습을 바로잡기 위하여 효부모(孝父母)·우형제(友兄弟)·적음덕(積陰德) 등의 내용을 18조목에 걸쳐 설명하였다. 『정속언해』는 김안국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을 때 차자로 구결을 달고 번역 및 간행하였다. 1권 1책이다. 1518년본으로 추정되는 목판본은 계명대학교 이원주가 소장하고 있다. 근대국어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정속언해 (正俗諺解)
『정속언해』는 조선 전기 문신·학자 김안국이 중국의 『정속편』을 풀이하여 1518년에 간행한 언해서이다. 『정속편』은 원나라 일암왕의 저술로서 14세기 중엽 중국 왕지화가 서문을 붙여 간행하였다. 풍습을 바로잡기 위하여 효부모(孝父母)·우형제(友兄弟)·적음덕(積陰德) 등의 내용을 18조목에 걸쳐 설명하였다. 『정속언해』는 김안국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을 때 차자로 구결을 달고 번역 및 간행하였다. 1권 1책이다. 1518년본으로 추정되는 목판본은 계명대학교 이원주가 소장하고 있다. 근대국어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부(大丘府) 해북촌면(解北村面) 부인동에서 실시된 동약.
부인동동약 (夫仁洞洞約)
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부(大丘府) 해북촌면(解北村面) 부인동에서 실시된 동약.
대한제국기 관료 이용원이 1905년에 종래의 향약법을 가감하여 정한 규약을 기록한 향약서.
계약장정 (契約章程)
대한제국기 관료 이용원이 1905년에 종래의 향약법을 가감하여 정한 규약을 기록한 향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