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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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7대 임금 효종(孝宗)이 세자 때인 17세기 중엽경 칠언시를 지어 행초로 쓴 필적.
효종 어필 칠언시 (孝宗 御筆 七言詩)
조선 제17대 임금 효종(孝宗)이 세자 때인 17세기 중엽경 칠언시를 지어 행초로 쓴 필적.
여주 효종 영릉재실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인 영릉에 제사하기 위해 세운 재실이다. 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재실은 능의 관리를 담당하는 참봉이 상주하는 곳이며, 제관들이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영릉 재실은 안향청, 집사청, 전사청, 참봉청, 행랑, 침가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안향청, 집사청(현 제기고), 참봉청(현 재실), 제기고(현 행랑채부속동), 행랑만 남아 있다. 영릉 재실은 기본 형태가 잘 남아있고, 간결하고 소박하면서 짜임새 있어 조선시대 재실 건축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주 효종 영릉재실 (驪州 孝宗 寧陵齋室)
여주 효종 영릉재실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인 영릉에 제사하기 위해 세운 재실이다. 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재실은 능의 관리를 담당하는 참봉이 상주하는 곳이며, 제관들이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영릉 재실은 안향청, 집사청, 전사청, 참봉청, 행랑, 침가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안향청, 집사청(현 제기고), 참봉청(현 재실), 제기고(현 행랑채부속동), 행랑만 남아 있다. 영릉 재실은 기본 형태가 잘 남아있고, 간결하고 소박하면서 짜임새 있어 조선시대 재실 건축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이조판서,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김집 (金集)
조선시대 이조판서,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후기 문신·학자 송시열이 1659년 효종과 독대한 내용을 기록한 역사서.
독대설화 (獨對說話)
조선후기 문신·학자 송시열이 1659년 효종과 독대한 내용을 기록한 역사서.
조선 후기에, 사은사, 주청사, 영릉도위 등을 역임한 문신.
박필성 (朴弼成)
조선 후기에, 사은사, 주청사, 영릉도위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효행으로 정려를 하사 받은 효자.
문계달 (文繼疸)
조선시대 효행으로 정려를 하사 받은 효자.
신라의 제56대 왕, 경순왕의 어머니로, 경순왕 즉위 후에 왕태후로 추존된 왕족.
계아태후 (桂娥太后)
신라의 제56대 왕, 경순왕의 어머니로, 경순왕 즉위 후에 왕태후로 추존된 왕족.
북벌론(北伐論)은 중원을 차지한 청나라를 정벌함으로써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 중화 질서의 재건을 모색한 조선 후기의 정치 담론이다. 조선 지배층은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하자 큰 충격에 빠졌지만, 명나라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따라서 명나라의 회복에 적극 동참하자는 북벌론이 대두할 수 있었다. 특히 효종은 국가적 차원에서 북벌계획을 추진하였는데, 공세적 성격의 군비 확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벌론은 명나라 회복의 가능성이 사라진 17세기 말 이후로는 주로 재야 인물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다.
북벌론 (北伐論)
북벌론(北伐論)은 중원을 차지한 청나라를 정벌함으로써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 중화 질서의 재건을 모색한 조선 후기의 정치 담론이다. 조선 지배층은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하자 큰 충격에 빠졌지만, 명나라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따라서 명나라의 회복에 적극 동참하자는 북벌론이 대두할 수 있었다. 특히 효종은 국가적 차원에서 북벌계획을 추진하였는데, 공세적 성격의 군비 확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벌론은 명나라 회복의 가능성이 사라진 17세기 말 이후로는 주로 재야 인물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다.
여주영릉(驪州寧陵)은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덕수장씨의 능이다. 여주영릉은 1659년 구리 동구릉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여주영릉은 인종 효릉을 모방해 제작하여 16세기의 돌거리 도상(圖像)에 17세기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1674년 인선왕후의 능을 효종릉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현재 사적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주 영릉 (驪州 寧陵)
여주영릉(驪州寧陵)은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덕수장씨의 능이다. 여주영릉은 1659년 구리 동구릉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여주영릉은 인종 효릉을 모방해 제작하여 16세기의 돌거리 도상(圖像)에 17세기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1674년 인선왕후의 능을 효종릉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현재 사적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후기 내섬시제조,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심익현 (沈翼顯)
조선후기 내섬시제조,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조선후기 제16대 인조의 서자인 왕자.
숭선군 (崇善君)
조선후기 제16대 인조의 서자인 왕자.
어의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었던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잠저와 제17대 왕인 효종의 잠저를 일컫는 궁궐의 이름이다. 인조의 잠저는 한성부 경행방 향교동에 있었으며, 효종의 잠저는 숭교방 어의동에 자리했었다. 각각 당대에는 본궁이라 하였지만, 조선 말기에는 인조의 잠저를 상어의궁, 효종의 잠저를 하어의궁으로 구분하여 불렀다.
어의궁 (於義宮)
어의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었던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잠저와 제17대 왕인 효종의 잠저를 일컫는 궁궐의 이름이다. 인조의 잠저는 한성부 경행방 향교동에 있었으며, 효종의 잠저는 숭교방 어의동에 자리했었다. 각각 당대에는 본궁이라 하였지만, 조선 말기에는 인조의 잠저를 상어의궁, 효종의 잠저를 하어의궁으로 구분하여 불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태준이 창건한 암자.
삼각산 안양암 (三角山 安養庵)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태준이 창건한 암자.
효종 왕비 인선왕후의 한글 편지.
인선왕후 언간 (仁宣王后 諺簡)
효종 왕비 인선왕후의 한글 편지.
조선후기 제16대 인조의 왕비.
인열왕후 (仁烈王后)
조선후기 제16대 인조의 왕비.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생가.
정순왕후 생가 (貞順王后 生家)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생가.
조선시대 『소요당집』을 저술한 승려.
태능 (太能)
조선시대 『소요당집』을 저술한 승려.
북인도의 고승 불타다라가 번역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1380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1 (大方廣圓覺脩多羅了義經 卷一)
북인도의 고승 불타다라가 번역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1380년에 간행한 불교경전.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기해예송 (己亥禮訟)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효율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
세종전(세종대왕유적관리소) (世宗殿(世宗大王遺蹟管理所))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효율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