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공업회(大韓工業會)
새로운 생계 방도를 찾아야 했다. 서울 거주 군인들 중에는 퇴직금조로 받은 소액의 자금을 밑천 삼아 장사를 시작하거나 몇 사람이 모여 회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한공업회는 대규모 자본을 모아 대(大) 공업회사를 설립하자는 취지로 결성되었다. 회장은 토포사 윤영렬(尹英烈)의 아들로 육군 기병 부장(副將)이던 윤치성(尹致晟)이었고, 발기인은 임재덕(林在德), 김선호(金善浩), 이숙원(李淑元), 장석조(張錫祚), 신규식(申圭植), 조철희(趙轍熙), 상호(尙灝), 정진홍(鄭鎭弘), 정인환(鄭寅煥), 박문병(朴文秉) 등이었다. 대한공업회는 9월 5일의 창립총회 직전에 발표한 취지서에서 “본인 등은 일찍이 군무(軍務)에 종사하던 자라 공업 발명의 경험이 없으나 그것이 민국(民國)에 긴급한 관계됨을 잘 알 뿐 아니라 국가의 배양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