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南楊州市)
『고려사』에 의하면, 935년(태조 18) 한양군이 양주 또는 남경(南京)으로 바뀌었는데, 양주라는 지명은 후삼국시대에도 사용되었으나 고려시대에 이르러 보편화되었다. 고려 태조 때 현 양주군 지역은 견주(見州)로 되었고, 동두천 지역은 사천(沙川), 남양주의 진건읍·진접읍 지역은 풍양현(豊壤縣)으로 불렸으며 양주의 속현이 되었다. 이때 평구도(平邱道, 남양주시 양정동)는 남경에, 조안면 지역은 광주에 속하였다. 983년(성종 2) 양주에 목사가 두어졌고, 995년(성종 14)에는 관내도에 속했으며, 양주는 좌신책군절도사(左神策軍節度使)의 부임지로서 광릉(廣陵)으로 별칭되기도 하였다. 1012년(현종 2) 양주에 절도사가 폐지되고 안렴사가 설치되었으며, 1018년 지양주사(知楊州事)로 강등되었다. 1067년(문종 21) 양주가 남경유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