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검색결과 총 10,863건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에 있는 조선전기 거제현 7진의 군영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된 관청. 객사.# 내용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나, 거제칠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등과 통합되어 2007년 7월 31일 사적 거제현 관아로 승격, 지정되었다. 2021년 12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9칸, 측면 3칸. 본래 1422년(세종 4) 기성(岐城, 거제의 옛지명) 7진(鎭)의 군영(軍營)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고현(古縣)에 건립되었다. 1663년(현종 4) 고현성을 폐쇄함에 따라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현재의 기성관은 1892년(고종 29)에 중건한 것을 1976년에 해체 복원한 것이다. 조선시대 거제현에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옥포(玉浦) · 조라(助羅) · 가배(加背) · 영등(永登) · 장목(長木) · 지세포(知世浦)...
거제 기성관 (巨濟 岐城館)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에 있는 조선전기 거제현 7진의 군영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된 관청. 객사.# 내용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나, 거제칠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등과 통합되어 2007년 7월 31일 사적 거제현 관아로 승격, 지정되었다. 2021년 12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9칸, 측면 3칸. 본래 1422년(세종 4) 기성(岐城, 거제의 옛지명) 7진(鎭)의 군영(軍營)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고현(古縣)에 건립되었다. 1663년(현종 4) 고현성을 폐쇄함에 따라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현재의 기성관은 1892년(고종 29)에 중건한 것을 1976년에 해체 복원한 것이다. 조선시대 거제현에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옥포(玉浦) · 조라(助羅) · 가배(加背) · 영등(永登) · 장목(長木) · 지세포(知世浦)...
조선시대 가곡과 기악곡의 반주곡을 수록한 악보. 거문고악보·양금악보. # 내용 인천의 거문고 풍류객이었던 김태영(金兌英)에 이어 이세환(李世煥, 2020년 별세)이 소장하였다. 한글로 표기된 거문고 육보(肉譜)이며, 일부 악곡에는 양금보가 병기되었다. 공책에 철필로 적은 것으로 보아 20세기 전반기의 악보로 추정되고, 표지 제명 그대로 가곡의 반주 음악을 주로 싣고 있다. 그러나 앞부분에는 기악곡인 「평조영산(平調靈山)」과 「여민락(與民樂)」을 거문고와 양금의 육보로 싣고 있는데, 거문고는 오른쪽, 양금은 왼쪽으로 나누어 병기하였다. 「평조영산」은 현행 「평조회상(平調會上)」의 「상령산(上靈山)」에 해당하며, 「여민락」은 초장을 제외하고 2장부터 7장까지만 싣고 있다. 기악곡 부분은 종서로 기보되었으나...
가곡금보 (歌曲琴譜)
조선시대 가곡과 기악곡의 반주곡을 수록한 악보. 거문고악보·양금악보. # 내용 인천의 거문고 풍류객이었던 김태영(金兌英)에 이어 이세환(李世煥, 2020년 별세)이 소장하였다. 한글로 표기된 거문고 육보(肉譜)이며, 일부 악곡에는 양금보가 병기되었다. 공책에 철필로 적은 것으로 보아 20세기 전반기의 악보로 추정되고, 표지 제명 그대로 가곡의 반주 음악을 주로 싣고 있다. 그러나 앞부분에는 기악곡인 「평조영산(平調靈山)」과 「여민락(與民樂)」을 거문고와 양금의 육보로 싣고 있는데, 거문고는 오른쪽, 양금은 왼쪽으로 나누어 병기하였다. 「평조영산」은 현행 「평조회상(平調會上)」의 「상령산(上靈山)」에 해당하며, 「여민락」은 초장을 제외하고 2장부터 7장까지만 싣고 있다. 기악곡 부분은 종서로 기보되었으나...
경상남도 거제시에 있는 조선전기 거제현령이 집무를 보던 관청.# 내용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거제현의 현령이 행정 · 군사의 업무를 보았던 건물이다. 1423년(세종 5)에 고현(古縣)에 건립되었는데,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고현성이 함락되고 주민들이 흩어져 관아만 남게 되자, 1598년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 다시 지었다. 그 뒤 1926년에는 부산지방법원 거제등기소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1984년에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관아 뒤에는 객사(客舍)인 기성관(岐城館)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홑처마를 두고 팔작지붕을 올린 단층의 민도리 건물이다. 평면이 ‘ㄷ’자형으로, 몸채는 앞면 7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그 좌우에 앞면 2칸, 옆면 3칸의 날개채가 각각 직각으로 연결되어 뻗어나와 있다. 낮은...
거제현 관아 (巨濟縣 官衙)
경상남도 거제시에 있는 조선전기 거제현령이 집무를 보던 관청.# 내용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거제현의 현령이 행정 · 군사의 업무를 보았던 건물이다. 1423년(세종 5)에 고현(古縣)에 건립되었는데,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고현성이 함락되고 주민들이 흩어져 관아만 남게 되자, 1598년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 다시 지었다. 그 뒤 1926년에는 부산지방법원 거제등기소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1984년에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관아 뒤에는 객사(客舍)인 기성관(岐城館)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홑처마를 두고 팔작지붕을 올린 단층의 민도리 건물이다. 평면이 ‘ㄷ’자형으로, 몸채는 앞면 7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그 좌우에 앞면 2칸, 옆면 3칸의 날개채가 각각 직각으로 연결되어 뻗어나와 있다. 낮은...
해방 이후 한국미술협회고문, 한국공예가회고문 등을 역임한 공예가.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부터 국전에 계속 출품하였으며, 이후 추천작가 · 초대작가로서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 · 신인예술상전 · 동아공예대전 · 불교미술전 · 신라미술대상전 등 중요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1958년 한국판화협회 창립회원으로 잠시 목판화에 손을 대기도 했으나, 1966년 ‘목양공방’을 새로 짓고 목공예 창작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동안 공예작가동인전(1955년) · 대한미술협회전(1956년) · 일본국제자유전(1961년) · 상공미전(1972년) · 공예가초대전(1974) 및 국립현대미술관의 각종 기획초대전과 한국공예가회전 등 많은 주요 전시회에 출품하였으며, 서울시문화위원(1954년) · 문화재전문위원(현...
박성삼 (朴星三)
해방 이후 한국미술협회고문, 한국공예가회고문 등을 역임한 공예가.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부터 국전에 계속 출품하였으며, 이후 추천작가 · 초대작가로서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 · 신인예술상전 · 동아공예대전 · 불교미술전 · 신라미술대상전 등 중요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1958년 한국판화협회 창립회원으로 잠시 목판화에 손을 대기도 했으나, 1966년 ‘목양공방’을 새로 짓고 목공예 창작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동안 공예작가동인전(1955년) · 대한미술협회전(1956년) · 일본국제자유전(1961년) · 상공미전(1972년) · 공예가초대전(1974) 및 국립현대미술관의 각종 기획초대전과 한국공예가회전 등 많은 주요 전시회에 출품하였으며, 서울시문화위원(1954년) · 문화재전문위원(현...
조선시대 남창 가곡의 양금 반주곡을 수록한 악보. 양금악보. # 내용 1960년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에 기증되어 현재에 이른다. 음고(音高)는 율자보(律字譜)로, 시가(時價)는 정간보(井間譜)로 표기하였으며, 각 면의 첫 행에는 장구 장단을 부호로 적었다. 기보법이나 내용면에서『아악부 양금보(雅樂部洋琴譜)』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1930년 이후의 악보로 추정되며, 현행 악곡과 큰 차이가 없다. 『가곡여창양금보(歌曲女唱洋琴譜)』와 짝을 이룬다. 총 25종의 남창가곡 양금 반주곡을 수록하였는데, 같은 곡이라도 가사를 달리하는 경우의 악곡을 실은 경우도 있어 총 수록 악곡은 40곡이다. - 「고악보해제보유(古樂譜解題補遺)」I (이동복, 『한국음악연구』8·9합병호, 한국국악학회, 1979)
가곡남창양금보 (歌曲男唱洋琴譜)
조선시대 남창 가곡의 양금 반주곡을 수록한 악보. 양금악보. # 내용 1960년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에 기증되어 현재에 이른다. 음고(音高)는 율자보(律字譜)로, 시가(時價)는 정간보(井間譜)로 표기하였으며, 각 면의 첫 행에는 장구 장단을 부호로 적었다. 기보법이나 내용면에서『아악부 양금보(雅樂部洋琴譜)』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1930년 이후의 악보로 추정되며, 현행 악곡과 큰 차이가 없다. 『가곡여창양금보(歌曲女唱洋琴譜)』와 짝을 이룬다. 총 25종의 남창가곡 양금 반주곡을 수록하였는데, 같은 곡이라도 가사를 달리하는 경우의 악곡을 실은 경우도 있어 총 수록 악곡은 40곡이다. - 「고악보해제보유(古樂譜解題補遺)」I (이동복, 『한국음악연구』8·9합병호, 한국국악학회, 1979)
무인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기를 다루는 재주. 무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기를 다루는 재주이다. 고대부터 활을 쏘고 말을 달리고 무술을 하는 무사를 양성하였다. 이는 기사도·무인도 등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이후 칼을 쓰고 창을 사용하는 무예가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훈련원 등에서 무예를 훈련시키고 무관 선발 시험도 치렀다. 임진왜란 이후에야 장창, 곤봉 등 6가지 무기를 쓰는 기술을 알게 되었다. 1790년(정조 14)에는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이십사반무예를 정비하였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신식 총포의 위력에 눌려 무예의 기능은 상실하였다.# 내용 무예는 활 · 칼 · 창 · 총포 등을 이용하여 전투에서 적과 겨루는 행동이다. 고대부터 우리 나라는 신시(神市) 이래로 특별한 구역에 소도...
무예 (武藝)
무인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기를 다루는 재주. 무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기를 다루는 재주이다. 고대부터 활을 쏘고 말을 달리고 무술을 하는 무사를 양성하였다. 이는 기사도·무인도 등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이후 칼을 쓰고 창을 사용하는 무예가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훈련원 등에서 무예를 훈련시키고 무관 선발 시험도 치렀다. 임진왜란 이후에야 장창, 곤봉 등 6가지 무기를 쓰는 기술을 알게 되었다. 1790년(정조 14)에는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이십사반무예를 정비하였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신식 총포의 위력에 눌려 무예의 기능은 상실하였다.# 내용 무예는 활 · 칼 · 창 · 총포 등을 이용하여 전투에서 적과 겨루는 행동이다. 고대부터 우리 나라는 신시(神市) 이래로 특별한 구역에 소도...
1928년 평양기성권번에서 김구희가 기생들과 가무를 즐기는 풍류 인사들의 교양 서적으로 편찬한 가요집. # 내용 1928년 평양기성권번(箕城券番)에서 발행하였다. 기생들의 학습은 물론 가무를 즐기는 이른바 풍류 인사들의 교양 서적으로 꾸민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편 가곡은 여창가곡(女唱歌曲)의 사설을 모은 것으로 제1절은 우조(羽調)에 속하는 「긴우됴」, 「우됴들머리」, 「드는 우됴」, 「우조세ᄌᆡ치」, 「우됴쇠는 거」, 「뒤집ᄂᆞᆫ 우됴」 제2절은 계면조(界面調)에 속하는 「게면긴노ᄅᆡ」, 「게면들 머리」, 「게면 드는 것」, 「게면셋ᄌᆡ치」, 「게면쇠ᄂᆞᆫ 것」 제3절은 「농」, 「뒤집ᄂᆞᆫ 농」 제4절은 「평우락」, 「뒤집ᄂᆞᆫ 우락」 제5절은 「계락」 제6절은 「편」, 제7절은 「ᄐᆡ평가...
가곡보감 (歌曲寶鑑)
1928년 평양기성권번에서 김구희가 기생들과 가무를 즐기는 풍류 인사들의 교양 서적으로 편찬한 가요집. # 내용 1928년 평양기성권번(箕城券番)에서 발행하였다. 기생들의 학습은 물론 가무를 즐기는 이른바 풍류 인사들의 교양 서적으로 꾸민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편 가곡은 여창가곡(女唱歌曲)의 사설을 모은 것으로 제1절은 우조(羽調)에 속하는 「긴우됴」, 「우됴들머리」, 「드는 우됴」, 「우조세ᄌᆡ치」, 「우됴쇠는 거」, 「뒤집ᄂᆞᆫ 우됴」 제2절은 계면조(界面調)에 속하는 「게면긴노ᄅᆡ」, 「게면들 머리」, 「게면 드는 것」, 「게면셋ᄌᆡ치」, 「게면쇠ᄂᆞᆫ 것」 제3절은 「농」, 「뒤집ᄂᆞᆫ 농」 제4절은 「평우락」, 「뒤집ᄂᆞᆫ 우락」 제5절은 「계락」 제6절은 「편」, 제7절은 「ᄐᆡ평가...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박제가·백동수 등이 왕명에 따라 군사의 무예 훈련을 위하여 편찬한 무예서. 무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각기(各技)마다 중국식·아국식(我國式)을 뚜렷이 하고, 도식(圖式)·설(說)·보(譜)·도(圖)·총보(總譜)·총도(總圖)로 나누어 일일이 알기 쉽게 그림과 함께 설명을 하고 있다. 요즈음 중국·일본 등에서도 동양무술사의 서술에 『무예도보통지』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따로 언해본도 있는데, 이를 합쳐서 최근 한국체육사연구회에서 영인하였다.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 - 『무예제보(武藝諸譜)』 - 『무예신보(武藝新譜)』 - 『무비지(武備志)』 - 『영인본과 그 해제』(홍이섭, 학문각, 1970) - 『징비록』(이민수 역, 을유문고 33, 1970) - 「무예도보통지」(이형석, 『한국의 고전백선』, 1969)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박제가·백동수 등이 왕명에 따라 군사의 무예 훈련을 위하여 편찬한 무예서. 무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각기(各技)마다 중국식·아국식(我國式)을 뚜렷이 하고, 도식(圖式)·설(說)·보(譜)·도(圖)·총보(總譜)·총도(總圖)로 나누어 일일이 알기 쉽게 그림과 함께 설명을 하고 있다. 요즈음 중국·일본 등에서도 동양무술사의 서술에 『무예도보통지』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따로 언해본도 있는데, 이를 합쳐서 최근 한국체육사연구회에서 영인하였다.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 - 『무예제보(武藝諸譜)』 - 『무예신보(武藝新譜)』 - 『무비지(武備志)』 - 『영인본과 그 해제』(홍이섭, 학문각, 1970) - 『징비록』(이민수 역, 을유문고 33, 1970) - 「무예도보통지」(이형석, 『한국의 고전백선』, 1969)
조선시대 여창 가곡의 양금 반주곡을 수록한 악보. 양금악보. # 내용 미농지(美濃紙)에 필사된 1책 33장(67면)으로 크기는 가로 17.5cm 세로 24.5cm이다. 1960년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에 기증되어 현재에 이른다. 음고(音高)는 율자보(律字譜)로, 시가(時價)는 정간보(井間譜)로 표기하였으며, 각 면의 첫 행에는 장구장단을 부호로 적었다. 기보법이나 내용면에서 『아악부 양금보(雅樂部洋琴譜)』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1930년 경 이후의 악보로 추정되며, 현행 악곡과 큰 차이가 없다. 『가곡남창양금보(歌曲男唱洋琴譜)』와 짝을 이룬다. 총 14종의 여창가곡 양금반주곡을 수록하였는데, 같은 곡이라도 가사를 달리하는 경우의 악곡을 실은 경우도 있어 총 수록 악곡은 23곡이다. - 「고악보해제보유(古樂譜解題補遺)」 I...
가곡여창양금보 (歌曲女唱洋琴譜)
조선시대 여창 가곡의 양금 반주곡을 수록한 악보. 양금악보. # 내용 미농지(美濃紙)에 필사된 1책 33장(67면)으로 크기는 가로 17.5cm 세로 24.5cm이다. 1960년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에 기증되어 현재에 이른다. 음고(音高)는 율자보(律字譜)로, 시가(時價)는 정간보(井間譜)로 표기하였으며, 각 면의 첫 행에는 장구장단을 부호로 적었다. 기보법이나 내용면에서 『아악부 양금보(雅樂部洋琴譜)』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1930년 경 이후의 악보로 추정되며, 현행 악곡과 큰 차이가 없다. 『가곡남창양금보(歌曲男唱洋琴譜)』와 짝을 이룬다. 총 14종의 여창가곡 양금반주곡을 수록하였는데, 같은 곡이라도 가사를 달리하는 경우의 악곡을 실은 경우도 있어 총 수록 악곡은 23곡이다. - 「고악보해제보유(古樂譜解題補遺)」 I...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 개설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749년(영조 25)에 사혜(思惠) · 광감(廣瑊) 등 6명의 화승(畵僧)이 그렸다. 중앙의 보관(寶冠)을 쓴 보살형 노사나불은 두 손을 어깨 높이로 들어 설법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이 주위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사천왕(四天王), 시방제불(十方諸佛)[^1]이 배치된 간략한 군도형식이다. # 내용 설법인의 손모양을 한 보관불로서 존명(尊名)이 기입된 예는 2점이 남아 있는데, 충청남도 공주의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2](1664년 작)과 예산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1673년 작)이다. 모두 화면 내에 본존을 노사나불로 기입하였고, 화기에 영산괘불탱이라 하였다. 설법인의 손모양을 한 보관불은...
광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廣德寺 盧舍那拂 掛佛幀▽)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 # 개설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749년(영조 25)에 사혜(思惠) · 광감(廣瑊) 등 6명의 화승(畵僧)이 그렸다. 중앙의 보관(寶冠)을 쓴 보살형 노사나불은 두 손을 어깨 높이로 들어 설법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이 주위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사천왕(四天王), 시방제불(十方諸佛)[^1]이 배치된 간략한 군도형식이다. # 내용 설법인의 손모양을 한 보관불로서 존명(尊名)이 기입된 예는 2점이 남아 있는데, 충청남도 공주의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2](1664년 작)과 예산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1673년 작)이다. 모두 화면 내에 본존을 노사나불로 기입하였고, 화기에 영산괘불탱이라 하였다. 설법인의 손모양을 한 보관불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에 있는 사리를 봉안한 5기의 석조 불탑. 부도. # 내용 1978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부도는 모두 5기(基)가 있는데 4기는 홍예(虹霓)로 된 석교를 넘기 전에 있고, 1기는 4기(基)의 부도에서 동북 약 40m의 산봉우리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4기 중 3기에는 명문이 있고 1기는 명문은 없으나 가장 큰 석종형 부도이다. 왼쪽으로부터 광덕사에서 수도하시던 청상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청상당(淸霜堂), 적조스님의 사리를 모신 적조당(寂照堂), 우암스님의 사리를 모신 우암당(愚菴堂), 그리고 무명부도(無名浮屠)가 있다. 다른 1기는 신라 흥덕왕 때의 고승 진산(珍山)화상이 음각된 석종형부도로 이 부도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으로 석축기단을 쌓고, 지대석과 상대석은 4매의...
광덕사 부도 (廣德寺 浮屠)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에 있는 사리를 봉안한 5기의 석조 불탑. 부도. # 내용 1978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부도는 모두 5기(基)가 있는데 4기는 홍예(虹霓)로 된 석교를 넘기 전에 있고, 1기는 4기(基)의 부도에서 동북 약 40m의 산봉우리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4기 중 3기에는 명문이 있고 1기는 명문은 없으나 가장 큰 석종형 부도이다. 왼쪽으로부터 광덕사에서 수도하시던 청상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청상당(淸霜堂), 적조스님의 사리를 모신 적조당(寂照堂), 우암스님의 사리를 모신 우암당(愚菴堂), 그리고 무명부도(無名浮屠)가 있다. 다른 1기는 신라 흥덕왕 때의 고승 진산(珍山)화상이 음각된 석종형부도로 이 부도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으로 석축기단을 쌓고, 지대석과 상대석은 4매의...
1938년 조이순이 남창 가곡의 거문고 반주곡을 수록한 악보. 거문고악보. # 내용 남창 가곡 24곡의 거문고 반주가 수록되었다. 갱지(更紙)에 인쇄된 원고지(原稿紙)에 철필(鐵筆)로 필사된 1책 26장의 악보로 대전시립연정국악연구원(大田市立燕亭國樂硏究院) 도서실 소장이다. 영인본이 국립국악원 발행의『한국음악학자료총서』에 수록되었으며, 동 해제(解題)에 편찬 연대 미상이라 하였으나, 표지에 기록된 ‘黃虎南呂月月夕書端(황호남려월월석서단)’이란 기록에 의하여 편찬 연대가 1938년임을 알 수 있다. 이 악보는 원고지를 세로로 세워 기보(記譜)하였다. 정간(井間) 안에 한글 육보(肉譜)로 음고(音高)를 적되 불분명한 경우는 줄이나 괘(棵)를 약자(略字)로 병서(竝書)하였다. 정간의 우측 공란을 활용하여 해당 음의 율명...
가곡현금보 (歌曲玄琴譜)
1938년 조이순이 남창 가곡의 거문고 반주곡을 수록한 악보. 거문고악보. # 내용 남창 가곡 24곡의 거문고 반주가 수록되었다. 갱지(更紙)에 인쇄된 원고지(原稿紙)에 철필(鐵筆)로 필사된 1책 26장의 악보로 대전시립연정국악연구원(大田市立燕亭國樂硏究院) 도서실 소장이다. 영인본이 국립국악원 발행의『한국음악학자료총서』에 수록되었으며, 동 해제(解題)에 편찬 연대 미상이라 하였으나, 표지에 기록된 ‘黃虎南呂月月夕書端(황호남려월월석서단)’이란 기록에 의하여 편찬 연대가 1938년임을 알 수 있다. 이 악보는 원고지를 세로로 세워 기보(記譜)하였다. 정간(井間) 안에 한글 육보(肉譜)로 음고(音高)를 적되 불분명한 경우는 줄이나 괘(棵)를 약자(略字)로 병서(竝書)하였다. 정간의 우측 공란을 활용하여 해당 음의 율명...
1567년(명종 22)에 행하여졌던 일종의 사회풍자극. # 내용 필자 미상의 『지양만록(芝陽漫錄)』에 전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이 심기가 불편하여 소일삼아 창우희(倡優戱)를 구경하였는데, 배우가 「도목정사놀이」, 즉 벼슬아치의 성적을 평가하여 벼슬을 떼거나 더 좋은 데로 승진시키거나 하던 일을 놀이로 보였다. 이조판서가 휘장을 들고 병조판서에게 글도 못하고 무예도 못한 조카 일을 부탁하자, 병조판서가 눈을 꿈뻑이고 웃으며 응낙한다. 조금 뒤 병조판서가 휘장을 들고 이조판서에게 무능한 셋째사위 일을 부탁하자 이조판서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소. 내 조카나 당신 사위나 좋게 합시다.” 하자, 병조판서가 크게 웃으며 “서로 맞바꾸는 일이 뭐 힘들겠습니까?”하고 정실을 쓰는 내용을 폭로하자...
도목정사놀이 (都目政事놀이)
1567년(명종 22)에 행하여졌던 일종의 사회풍자극. # 내용 필자 미상의 『지양만록(芝陽漫錄)』에 전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이 심기가 불편하여 소일삼아 창우희(倡優戱)를 구경하였는데, 배우가 「도목정사놀이」, 즉 벼슬아치의 성적을 평가하여 벼슬을 떼거나 더 좋은 데로 승진시키거나 하던 일을 놀이로 보였다. 이조판서가 휘장을 들고 병조판서에게 글도 못하고 무예도 못한 조카 일을 부탁하자, 병조판서가 눈을 꿈뻑이고 웃으며 응낙한다. 조금 뒤 병조판서가 휘장을 들고 이조판서에게 무능한 셋째사위 일을 부탁하자 이조판서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소. 내 조카나 당신 사위나 좋게 합시다.” 하자, 병조판서가 크게 웃으며 “서로 맞바꾸는 일이 뭐 힘들겠습니까?”하고 정실을 쓰는 내용을 폭로하자...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사에 있는 고려시대 3층 석조 불탑. # 내용 높이 2.8m. 1985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웅전 앞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위치로 생각된다. 넓고 높직한 장대석 3매를 결구하여 지대석을 이루고 그 위에 기단부와 탑신부를 형성하였으며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는 상 · 하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하층기단 면석에는 안상(眼象)이 돌려져 있다. 면석 위의 갑석은 상면이 약간 경사졌으며 낮은 굄대를 마련하여 상층기단 면석을 받고 있다. 상층의 면석에는 각 면에 양쪽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중앙 1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1매석으로 조성한 상층기단 갑석(甲石)은 상면에 높직한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광덕사 삼층석탑 (廣德寺 三層石塔)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사에 있는 고려시대 3층 석조 불탑. # 내용 높이 2.8m. 1985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웅전 앞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위치로 생각된다. 넓고 높직한 장대석 3매를 결구하여 지대석을 이루고 그 위에 기단부와 탑신부를 형성하였으며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는 상 · 하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하층기단 면석에는 안상(眼象)이 돌려져 있다. 면석 위의 갑석은 상면이 약간 경사졌으며 낮은 굄대를 마련하여 상층기단 면석을 받고 있다. 상층의 면석에는 각 면에 양쪽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중앙 1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1매석으로 조성한 상층기단 갑석(甲石)은 상면에 높직한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궁중의 제사나 잔치 때 등가와 헌가에서 노래를 부르던 악사. 가(歌). # 내용 고려 때 국왕이 친히 제사할 때에 등가에서는 가공 4인이 축(祝)과 어(敔) 사이에서 마주보고 앉아 의식 절차에 따라 노래 부르며, 헌가에서는 12인의 가공이 축과 어 사이에서 동서로 마주 보고 앉아 네 줄로 열지어 있는데, 좌우로 각각 두 줄씩이다. 유사(有司)가 일을 대행할 때 등가에는 가공 2인이 축과 어 사이에서 동서로 마주 보게 편성되었고, 헌가에는 가공 4인이 축과 어 사이에서 동서로 마주 보게 편성되었다. 그리고 조선 세종 때까지도 가공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으나 그뒤부터는 ‘가(歌)’라고만 나타나고 ‘가공’이라는 용어는 보이지 않고 있다. - 『세종실록(世宗實錄)』 - 『악학궤범(樂學軌範)』 - 『국악사(國樂史)』(이성천...
가공 (歌工)
궁중의 제사나 잔치 때 등가와 헌가에서 노래를 부르던 악사. 가(歌). # 내용 고려 때 국왕이 친히 제사할 때에 등가에서는 가공 4인이 축(祝)과 어(敔) 사이에서 마주보고 앉아 의식 절차에 따라 노래 부르며, 헌가에서는 12인의 가공이 축과 어 사이에서 동서로 마주 보고 앉아 네 줄로 열지어 있는데, 좌우로 각각 두 줄씩이다. 유사(有司)가 일을 대행할 때 등가에는 가공 2인이 축과 어 사이에서 동서로 마주 보게 편성되었고, 헌가에는 가공 4인이 축과 어 사이에서 동서로 마주 보게 편성되었다. 그리고 조선 세종 때까지도 가공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으나 그뒤부터는 ‘가(歌)’라고만 나타나고 ‘가공’이라는 용어는 보이지 않고 있다. - 『세종실록(世宗實錄)』 - 『악학궤범(樂學軌範)』 - 『국악사(國樂史)』(이성천...
1928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미술단체. # 내용 양화계(洋畫界) 형성기의 미술그룹으로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박광진(朴廣鎭)·김주경(金周經)과 서울에서 독학한 심영섭(沈英燮)·장석표(張錫豹)가 발기회원으로 참여하였다. 1929년 5월에 천도교기념관에서 첫 회원작품전을 가졌는데, 그 움직임은 매우 주목할만한 것이어서 신문에 평문(評文)이 실리고 주위의 격려가 따랐다. 1931년 4월에 역시 천도교기념관에서 개최된 2회전에는 때마침 동경미술학교 유학을 마치고 온 오지호(吳之湖) 등이 새 회원으로 가입하여 한층 활기를 보였다. 그들의 작품은 각기 비법적 특색을 가지고 표현 취향을 달리하여 미술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양화의 토대 건설과 민중화(民衆化)를 위한 계몽의 필요성’을 내세우며, 2회전 때에는...
녹향회 (綠鄕會)
1928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미술단체. # 내용 양화계(洋畫界) 형성기의 미술그룹으로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박광진(朴廣鎭)·김주경(金周經)과 서울에서 독학한 심영섭(沈英燮)·장석표(張錫豹)가 발기회원으로 참여하였다. 1929년 5월에 천도교기념관에서 첫 회원작품전을 가졌는데, 그 움직임은 매우 주목할만한 것이어서 신문에 평문(評文)이 실리고 주위의 격려가 따랐다. 1931년 4월에 역시 천도교기념관에서 개최된 2회전에는 때마침 동경미술학교 유학을 마치고 온 오지호(吳之湖) 등이 새 회원으로 가입하여 한층 활기를 보였다. 그들의 작품은 각기 비법적 특색을 가지고 표현 취향을 달리하여 미술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양화의 토대 건설과 민중화(民衆化)를 위한 계몽의 필요성’을 내세우며, 2회전 때에는...
조선 후기, 『해산도첩』, 『풍악권』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 김하종은 조선 후기에 『해산도첩』, 『풍악권』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할아버지는 김응환, 아버지는 김득신, 형은 김건종이다. 순조 대 중반경인 1816년 6월 14일부터 녹취재에 참여한 뒤, 1863년 3월 26일까지 47년간 녹취재에 참여했다. 금강산 일대를 그린 진경산수화첩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해산도첩』[1815]과 『풍악권』[1865]이 있다.#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자는 대여(大汝)이고, 호는 유당(蕤堂) · 이당(怡堂) · 유재(蕤齋) · 설호산인(雪壺山人)이다. 1793년(정조 17) 생이며, 몰년은 확인되지 않았다. 『순종왕세자수책시책례의궤(純宗王世子受冊時冊禮儀軌)』(1875) 중 「반차도(班次圖)」를 그려 상을 받았고, 『승정원일기』 고종 15년(1878)...
김하종 (金夏鐘)
조선 후기, 『해산도첩』, 『풍악권』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 김하종은 조선 후기에 『해산도첩』, 『풍악권』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할아버지는 김응환, 아버지는 김득신, 형은 김건종이다. 순조 대 중반경인 1816년 6월 14일부터 녹취재에 참여한 뒤, 1863년 3월 26일까지 47년간 녹취재에 참여했다. 금강산 일대를 그린 진경산수화첩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해산도첩』[1815]과 『풍악권』[1865]이 있다.#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자는 대여(大汝)이고, 호는 유당(蕤堂) · 이당(怡堂) · 유재(蕤齋) · 설호산인(雪壺山人)이다. 1793년(정조 17) 생이며, 몰년은 확인되지 않았다. 『순종왕세자수책시책례의궤(純宗王世子受冊時冊禮儀軌)』(1875) 중 「반차도(班次圖)」를 그려 상을 받았고, 『승정원일기』 고종 15년(1878)...
범패(梵唄) 곡목 중의 하나. # 내용 재(齋)를 올릴 때 그 장소의 부정(不淨)을 없애는 계송(啓頌)이다.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죽은 자를 위해 행하는 가장 작은 재)를 올릴 때에는 ‘상부 수함청정지공 향유보훈지덕 고장법수 특훈묘향 쇄사법연 성우정토(詳夫 水含淸淨之功 香有普熏之德 故將法水 特熏妙香 灑斯法筵 成于淨土)’의 사설을 홋소리로 부르기 때문에 「상부개계(詳夫開啓)」라 한다.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재수를 위해 드리는 의식으로, 저승에 있다는 10대왕에게 자비를 비는 것) 때에는 ‘원부 범치법연 선사방우엄정 공의과교전장가지 소이 수함청정지공 법유신통지용 장법비수 용수결심 쇄사법연 성우정토 정토결계진언(原夫 凡峙法筵 先使方隅嚴淨 恭依科敎全杖加持 所以 水含淸淨之功 法有神通之用 將法備水...
개계 (開啓)
범패(梵唄) 곡목 중의 하나. # 내용 재(齋)를 올릴 때 그 장소의 부정(不淨)을 없애는 계송(啓頌)이다.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죽은 자를 위해 행하는 가장 작은 재)를 올릴 때에는 ‘상부 수함청정지공 향유보훈지덕 고장법수 특훈묘향 쇄사법연 성우정토(詳夫 水含淸淨之功 香有普熏之德 故將法水 特熏妙香 灑斯法筵 成于淨土)’의 사설을 홋소리로 부르기 때문에 「상부개계(詳夫開啓)」라 한다.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재수를 위해 드리는 의식으로, 저승에 있다는 10대왕에게 자비를 비는 것) 때에는 ‘원부 범치법연 선사방우엄정 공의과교전장가지 소이 수함청정지공 법유신통지용 장법비수 용수결심 쇄사법연 성우정토 정토결계진언(原夫 凡峙法筵 先使方隅嚴淨 恭依科敎全杖加持 所以 水含淸淨之功 法有神通之用 將法備水...
1965년에 창단된 동인제 극단. 연극을 통한 현실 참여, 연극 인구의 저변확대, 연극의 예술적 승화를 목표로 권성덕(權成德)·김광남(金光男)·김동욱(金東昱)·김진태(金鎭泰)·김승일(金昇一)·김태완·오기환·이문영·이일웅·이승규(李昇珪) 등이 창단하였다. # 연원 및 변천 극단 가교는 극술의 탐구 및 연극을 통한 대중과의 대화와 함께 고전극을 바탕으로 한 새 연극 실험을 목표로 내걸고, 창립공연으로 같은 해 5월이근삼(李根三)의 작품인「데모스테스의 재판」으로 공연을 했다. 이들은 극장 외에 전국의 교도소, 교회, 학교, 군부대, 탄광 등을 순회하며 공연을 가졌다. 또한 한국 최초로 천막극장을 제작하여 해변, 유원지 등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극작가 이근삼(李根三)이 많은 작품을 공급했고, 이승규, 김상열...
가교 (架橋)
1965년에 창단된 동인제 극단. 연극을 통한 현실 참여, 연극 인구의 저변확대, 연극의 예술적 승화를 목표로 권성덕(權成德)·김광남(金光男)·김동욱(金東昱)·김진태(金鎭泰)·김승일(金昇一)·김태완·오기환·이문영·이일웅·이승규(李昇珪) 등이 창단하였다. # 연원 및 변천 극단 가교는 극술의 탐구 및 연극을 통한 대중과의 대화와 함께 고전극을 바탕으로 한 새 연극 실험을 목표로 내걸고, 창립공연으로 같은 해 5월이근삼(李根三)의 작품인「데모스테스의 재판」으로 공연을 했다. 이들은 극장 외에 전국의 교도소, 교회, 학교, 군부대, 탄광 등을 순회하며 공연을 가졌다. 또한 한국 최초로 천막극장을 제작하여 해변, 유원지 등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극작가 이근삼(李根三)이 많은 작품을 공급했고, 이승규, 김상열...
저장·운반·기거 등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생활도구. 즉, 실용성과 함께 쾌적한 생활로 이끄는 미적 예술성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구는 아름다움과 쓰임새의 합목적성을 동시에 지닌 조형물로서 더욱 그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가구를 성립시키는 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재료 · 기술 · 의장(意匠)이다. 어떠한 재료를 가지고 어떠한 기술로 어떠한 형태를 만드느냐의 면밀한 계획과 설계가 진행된다. 또, 계획에 앞서 사회적인 여건, 즉 자연환경과 재료의 생산량, 형태의 개발성, 기술능력, 제작 및 구매층의 경제력 등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여야만 한다. 근대 서구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가구의 새로운 기능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졌음에도 인간의 생활감정을 등질 수 없는 옛것의 조형감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즉...
가구 (家具)
저장·운반·기거 등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생활도구. 즉, 실용성과 함께 쾌적한 생활로 이끄는 미적 예술성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구는 아름다움과 쓰임새의 합목적성을 동시에 지닌 조형물로서 더욱 그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가구를 성립시키는 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재료 · 기술 · 의장(意匠)이다. 어떠한 재료를 가지고 어떠한 기술로 어떠한 형태를 만드느냐의 면밀한 계획과 설계가 진행된다. 또, 계획에 앞서 사회적인 여건, 즉 자연환경과 재료의 생산량, 형태의 개발성, 기술능력, 제작 및 구매층의 경제력 등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여야만 한다. 근대 서구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가구의 새로운 기능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졌음에도 인간의 생활감정을 등질 수 없는 옛것의 조형감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