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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하여 불을 켜는 데 필요한 도구.
내용 요약

등기는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하여 불을 켜는 데 필요한 도구이다. 기름을 담아서 불을 켜는 것은 등잔, 등잔을 얹어서 사용하는 등경이 있다. 초를 꽂는 촛대, 들고 다니는 제등, 걸어놓는 괘등, 실내에 놓는 좌등도 있다. 이 등기의 명칭과 형태는 다르지만 기름불이나 촛불을 이용하도록 만든 구조는 공통된다. 이들 등기 중 등잔은 사용된 재료에 따라 토기·도기·자기·옥석제로 나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잔은 신라시대의 다등식 등잔과 백제 무령왕릉의 벽에 놓였던 등잔이다. 현존하는 최고 촛대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감옥촛대이다.

목차
정의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하여 불을 켜는 데 필요한 도구.
내용

재료나 형태 또는 용도에 따라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름을 담아서 불을 켜는 등잔, 등잔을 얹어서 사용하는 등경(燈檠), 초를 꽂는 촛대, 들고 다니는 제등(提燈), 걸어놓는 괘등(掛燈), 실내에 놓는 좌등(坐燈)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들의 명칭과 형태는 다를지라도 기름불이나 촛불을 이용하도록 만든 구조는 공통된다.

(1) 등 잔

사용된 재료에 따라서 토기 · 도기 · 자기 · 옥석제(玉石製)로 나누어지며, 형태별로는 종지형 · 호형(壺形) · 탕기형(湯器形)이 있다.

종지형 등잔은 지름 7㎝ 내외, 높이 5㎝ 내외의 크기로 식물성 기름 · 어유(魚油) · 경유(鯨油) · 굳기름을 사용하며, 심지는 솜을 꼬아 쓰거나 삼실[麻絲]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옥석제의 종지형 등잔은 옥등(玉燈) 또는 석등잔(石燈盞)이라고도 부르는 궁중용이지만, 사찰에서 쓰는 것은 선등(禪燈), 무당들이 사용하는 것은 인등(引燈)이라고 하며, 심지는 한지(韓紙)를, 기름은 반드시 참기름[胡麻油]을 사용한다.

석등잔은 지름 5∼7㎝, 높이 5㎝ 내외의 소형과 지름 15∼30㎝, 높이 10∼20㎝ 정도의 대형이 있으며, 대형의 석등잔은 철사고리를 만들어 들보에 달아 사용한다. 호형과 탕기형 등잔은 석유가 수입된 1876년 이후 인화성이 강한 석유를 등유로 사용하면서 생겨난 형태로, 심지뽑이가 붙은 뚜껑이 달려 있으며, 크기는 동경(胴徑)이 8㎝ 내외, 높이 10㎝ 내외이다.

현존 유물로서 가장 오래된 등잔의 예는 고 신라시대의 다등식 등잔(多燈式燈盞)과 백제 무령왕릉의 등감(燈龕)에 놓였던 등잔이 있다. 이 중 다등식 등잔은 고신라시대나 가야시대의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4∼6개의 등잔이 하나의 원통관에 연결되어, 한곳에 기름을 넣으면 여러 개의 등잔에 일정한 유량을 유지하면서 불을 밝힐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또 무령왕릉의 등감에 놓였던 다섯 개의 등잔은 종지형 등잔이었는데, 이러한 종지형 등잔은 조선시대 말 석유가 수입되기 전까지 쓰인 등잔의 기본형이었다.

(2) 등 경

등잔을 적당한 높이에 얹도록 한 등대(燈臺)로서 흔히 등경걸이라 부른다. 등잔과는 별개로 만들어지나, 등잔에 긴 대를 붙여 만든 것도 등경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등경의 형태는 널찍한 하반에 서너 개의 거치형 단급(段級)이 있는 등가를 세우고 이 단급에 등잔걸이를 걸쳐놓아 등잔이 안정감있게 앉히도록 하였으며, 등잔 밑에는 우각형(牛角形) · 유방형 · 타구형의 기름받이를 달아놓은 것으로서 상하귀천의 구별없이 가장 애용된 실내용 등기양식이다.

청동 · 철 · 놋쇠 · 나무 · 도자기제가 있고, 하반경 20㎝ 내외, 높이 70㎝ 내외가 일반적인 크기이지만, 높이 120㎝ 정도의 대형등경도 있는데 이것은 제사용으로 사용되었으며, 하반경 10㎝ 내외, 높이 20㎝ 내외의 소형등경은 벽에 걸어 사용하였던 것으로 부엌에서 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부엌등이라고도 한다.

(3) 촛 대

일상생활용과 의식 · 예식용, 이동용의 수초[手燭]가 있다. 고식(古式)의 기본형은 복발형 대(臺) 위에 죽절형 · 연주형 · 장구형의 간주(竿柱)가 서고 그 위에 짧은 초꽂이 촉이 달린 받침접시가 있어 초를 안전하게 꽂도록 하였으며, 주로 의식 · 예식에 쌍으로 사용하였다.

박쥐형 · 나비형 · 원형 등의 화선(火扇)이 달린 것은 일상생활용이며, 분해하여 보관에 간편하게 만든 조립식 촛대도 있다. 길이 10㎝ 내외의 소형에서 2m가 넘는 대형까지 있으나, 30∼70㎝ 정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형촛대는 궁중에서 의식 · 예식에 사용한 것으로 두석대촛대[豆錫大燭臺]라고 부르며, 2m가 넘는 초대형 촛대는 간주의 중간을 나사못으로 연결하도록 만들었다.

수초는 집안에서 간단한 용무를 보기 위하여 이동하면서 사용하기에 편하도록 만든 촛대양식의 하나로서, 다리가 없는 것과 다리가 달린 것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다리가 없는 것은 운두가 낮은 접시형 반(盤)에 초꽂이가 달렸고 한쪽에 손잡이가 달렸다. 다리가 있는 것은 두 개의 짧은 다리 위에 초꽂이가 달린 반이 얹혀 있고, 아래로 굽어진 긴 손잡이가 반 밑에 달려 들기에 편하도록 하였으며, 바닥에 놓았을 때 다리의 구실도 하여 안정감이 있게 하였다. 높이 5㎝ 내외, 손잡이 길이 15㎝ 내외이며 주로 놋쇠 또는 철로 만들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촛대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감옥촛대[金銅嵌玉燭臺]로서, 여섯개의 수면(獸面) 다리와 여섯 꽃잎의 상 · 하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촉좌(燭座)와 촉좌받침은 활짝 핀 겹연꽃형태로 전체 각부에 48개의 자수정을 물린 장중하고 화려한 기형을 하고 있다. 기면 전체에는 서화(瑞花)무늬와 작은 고리무늬가 빈틈없이 오목새김되어 있다. 일부 수정은 떨어져 없고 푸른 녹이 두껍게 돋아 있지만, 아직도 도금색이 남아 있어 당시의 세련된 조형감각에 맞춘 탁월한 공예기법을 보이며 아울러 화려하였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초가 여전히 사용되어 각종 형태의 동제촛대[銅製燭臺]가 제작되었다. 그중에는 예술적으로 높은 세련미를 보이는 작품들이 상당수 알려져 있다.

(4) 제 등

밤길을 갈 때나 의식 · 예식에 사용하는 휴대용 조명기구로서 초롱 · 등롱 · 청사초롱 · 홍사초롱 · 조족등(照足燈) · 조촉(照燭) · 유제등(鍮提燈)이 있다.

철사 · 놋쇠 · 대나무 · 나무 등으로 골격을 만들고, 표면에 종이나 깁[紗]을 발라 위에 손잡이를 하여 이동하기에 편하게 만들었다. 내부에 초를 넣은 것은 초롱, 등잔을 넣은 것은 등롱, 청사 · 홍사의 깁을 씌운 것은 청사초롱 · 홍사초롱이라 부른다. 청사초롱 · 홍사초롱은 주로 의식용으로 사용하였으며, 조족등은 궁중의 빈전이나 순라꾼이 야경을 돌 때 사용하였던 것으로서, 그 형태가 박과 같다 하여 박등이라고도 불렀으며, 순라꾼이 도적을 잡을 때 쓴다 하여 ‘도적등’이라고도 불렀다.

조촉은 정재(呈才) 때 풍악 진행의 신호로 사용하였던 붉은 비단으로 만든 초롱의 일종이다. 용머리가 장식된 긴 대 끝에 초롱을 달아, 초롱을 세우면 풍악이 진행되고 누이면 풍악이 그쳤다.

(5) 괘 등

주로 벽이나 들보에 거는 외등양식으로 제등과 비슷한 형태와 구조를 지녔으나 크기가 큰 것이 특징으로서, 사방등(유리등) · 양각등 · 요사등 · 발등거리가 있다. 사방등은 육면체의 나무틀에 유리를 끼워 내부에 등을 놓도록 된 형태이다. 양각등은 양뿔을 얇게 펴서 씌워 만든 것인데 채색화를 그렸다. 요사등은 오색의 초자옥을 실로 꿰어 육각의 형태로 한 것으로, 화려한 궁중용 등이다. 발등거리는 상가(喪家)의 대문에 달아 상중임을 표시하는 상례용 등으로, 대나 싸리로 골격을 만들었다.

(6) 좌 등

좌등에는 서등(書燈)과 장등(長燈)이 있다.

서등은 얇은 나무판으로 상자를 만들어 앞면에 문을 내고 윗면에 원형 환기공을 낸 뒤 흑칠(黑漆)을 한 것으로, 내부에 등잔을 넣도록 설계되었다. 문을 열면 등불이 책을 곧바로 비추어 글을 읽는 데 주로 사용되었으므로 서등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내부에 철로 만든 간단한 등경을 고정시켜 설치한 것도 있으며, 크기는 높이 25㎝ 정도의 소형에서 70㎝에 달하는 큰 것까지 있다.

장등은 각재(角材)나 반죽(斑竹) · 오죽(烏竹)으로 기둥을 만든 사각 · 육각 · 팔각의 장방형 등으로 표면에 기름종이를 발랐으며, 유리가 수입된 뒤로는 유리를 끼웠다. 밑에는 서랍이 있어서 인광노(引光奴)나 초를 넣도록 하였으며 짧은 촛대를 넣어 사용하였다. 조각으로 장식하고 휴칠(髹漆)이나 주칠(朱漆)을 하기도 하였으며, 말발굽모양의 네 다리가 달린 화려한 가구양식의 등으로서, 높이가 70∼100㎝ 정도이다.

이 밖에도 직접적인 등기구는 아니지만 사찰에서 사용하던 석등(石燈)은 법당 앞에 설치되었고, 장명등(長明燈)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능 앞에 설치하여 화사(火舍) 안에 등기를 넣게 만들었는데, 야외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모두 석재를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삼재도회(三才圖會)』
『한국의 고등기』(최순우 감수, 한국전력주식회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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