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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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예
지공예
공예
개념
종이를 이용하여 기물을 만들거나 장식하는 공예.
내용 요약

지공예는 종이를 이용하여 기물을 만들거나 장식하는 공예이다. 일상의 다양한 용품에서부터 지등 같은 연희·의례용품까지 널리 쓰였다. 재료는 닥종이로 글씨 연습 후 휴지, 책을 만드는 제지, 또는 파지를 이용하였다. 만드는 방법에는 종이를 여러 번 겹쳐 발라 사용하는 지도 기법이 있다. 또 종이를 물에 불려 사용하는 지호기법, 종이를 꼬아서 사용하는 지승기법이 있다. 종이 기물은 가볍고 질기며 깨지지 않는다. 또 휴지나 파지로 쉽게 제작할 수 있어 조선 시대 서민 계층에 널리 유행하였다. 지공예는 개발할 여지가 많은 공예 분야이다.

목차
정의
종이를 이용하여 기물을 만들거나 장식하는 공예.
내용

지공예는 장(藏) · 농(籠) · 함(函) · 연상(硯床) · 필통 · 등촉기구(燈燭器具) · 방장(房帳) · 자리〔紙繩席〕 · 방석 · 주3 · 빗접 · 주2 · 소반 · 합(盒) · 함지 · 항아리 · 주1 등 가정용 비품, 쌈지 · 안경집 · 표주박 · 화살통 · 자라병옷 · 부채 · 우산 등 휴대용품, 지의(紙衣, 油衫) · 신〔紙繩鞋〕 · 갓모 등 복식류, 지화(紙花) · 지등(紙燈) · 연(鳶)과 같은 연희 · 의례용품에 이르기까지 일상 생활용품 전반에 고루 이용되었다.

재료는 닥종이〔楮紙〕로서 휴지(글씨를 연습한 종이)나 제지(책을 만들거나 방을 도배할 때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 종이), 또는 파지(못 쓰게 된 종이 또는 헌책 종이)를 많이 이용하였고 소지(素紙)를 물들이거나 기름을 먹여 이용하였다. 만드는 방법에는 지도기법(紙塗器法) · 지호기법(紙糊器法) · 지승기법(紙繩器法) 등이 있다.

① 지도기법에는 종이를 여러 번 겹쳐 발라 후지(厚紙)를 만들어 기형(器形)을 완성하는 방법과, 대〔竹〕 또는 나무로 골격이나 기형을 만든 다음 그 안팎에 종이를 두세 겹 바르는 목골지장(木骨紙粧)의 두 가지 기법이 있다.

후지기(厚紙器)는 대체로 하중(荷重)을 받지 않는 소형 기물인 쌈지 · 합 · 반짇고리 · 빗접 등에 많이 이용되었고, 목골지장은 장 · 농 · 함 등의 대형 수장구(收藏具)에 주로 이용되었다.

목골지장은 서민층에서는 값싼 나무로 목골을 만들어 그 안팎 면을 휴지로 여러 겹 싸서 바르고 표면을 색지로 마감하며, 부유층에서는 결이 좋은 목재로 골격을 만들고 이 골격을 노출시켜 소지나 당지(唐紙)를 바른 호사스런 별격(別格) 취미의 기물로 애용하였다. 색지는 여성용 기물에 주로 이용하였으며, 각 가정에서 자연염료로 물들인 청(靑) · 적(赤) · 홍(紅) · 황(黃) · 녹(綠) · 자색(紫色)의 바탕색에 맞추어 나비 · 박쥐 · 원앙 · 쌍희(囍〕 · 만(卍) 등의 주4을 오려 붙였다.

② 지호기법은 휴지나 파지를 물에 불려 풀과 섞어 찧어서 점토(粘土)처럼 만든 뒤 기물을 성형하는 방법으로, 그릇이 귀한 농가에서 합 · 함지 등 주방용품에 주로 이용되었다.

③ 지승기법은 일정한 크기로 자른 종이쪽을 꼬아서 끈을 만들어 기물을 엮는 방법으로, 주5 · 주6 · 주7 · 항아리 · 소반 등 농가의 주방용품을 비롯하여 연상 · 필통 · 등경 · 자리 · 방석 · 방장 등 문방 · 기거용품을 포함한다.이 밖에 화살통 · 표주박 · 화약통 등의 휴대용품과 신발류, 세숫대야 · 요강 등 물기가 닿는 기물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중 연상이나 소반과 같이 물건을 얹는 기물에는 목심(木心)을 하여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지승기법은 휴지나 파지를 버리지 않고 활용함으로써 생겨난 조선시대 특유의 공예기법이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종이제품들은 칠을 입혀 사용하였다. 옻칠은 규제로 인하여 함부로 쓸 수 없었고 일반인이 취급하기도 어려워, 옻칠에 대응하는 시칠(枾漆 : 덜 익은 푸른색의 감을 물과 섞어서 찧어 만든 즙)이나 들기름칠을 하여 방수와 내구력이 생기도록 하였다. 색지 위에는 주8를 끓인 즙을 발라 말린 다음 연유(煉油 : 들깨 · 밀타승 · 활석 · 백반을 한데 볶아 만든 기름)를 칠하면 색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오래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지공예품은 종류가 다양하여 그 시원(始源)을 일괄하여 말할 수는 없다. 고려 때 지장(紙帳)이나 등롱(燈籠) · 지연(紙鳶) 등을 소지 또는 색지로 만들어 썼으나, 휴지나 파지를 이용한 각종 지공예품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800년대 이후부터였다. 종이는 600년경 중국으로부터 제지술이 도입되면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성종 2년(983)에 주9을 정하고 지전(紙田)을 두어 양질의 종이를 생산하였다. 그러나 제작공정이 까다롭고 닥나무밭은 한정되어 궁중을 중심한 사원 및 귀족들의 문방용과 내수용, 서적과 불경의 간행, 중국에 보내는 공물 등을 충족시키는 데 불과하였다.

종이가 귀하므로 각 도의 안렴사별감 등은 공물을 빙자하여 거둔 종이를 권문귀가(權門貴家)에 뇌물로 주는 폐단도 있었다. 이러한 실정하에서 일반 백성들은 종이를 여유있게 쓸 수 없었다. 궁중에서는 연회 때 탁자 위에 깔았고 민간에서는 겨울철의 방장〔紙帳〕에 이용하였다. 그밖에 하급관리들의 부채에 쓰이거나 연등의식과 제액(除厄)에 사용하는 종이등이나 종이연을 만드는 정도였다.

지장은 중국 송대(宋代)에 우아한 취미생활을 위하여 구비하는 필수품으로서 고려의 지식인들에게 전하여진 것으로 조선시대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만드는 법은 소지를 주름잡아 꿰매어 나무막대에 얽어 걸어놓으며, 주름잡은 종이에는 매화나 나비를 그려 장식하였다.

조선 초기는 숭유정책을 기본이념으로 새 문화 건설 의욕이 각 분야에 걸쳐 싹텄다. 따라서, 학문을 숭상하여 많은 서적이 간행되었고 국민 상하가 학문에 힘써 종이의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다. 태조 때부터 사치를 금하여 고려 이래로 각종 연회의 장식물로 썼던 밀랍 · 비단 · 세저포(細苧布) 등으로 만든 조화(造花)를 물들인 종이꽃으로 대체하도록 하였으므로 신하들의 과상(果床) 장식에 종이꽃이 쓰이게 되었고, 세종조에는 공사간의 불사(佛事)에도 종이꽃을 쓰도록 하였다.

조선 초에는 북쪽 변경을 지키는 병졸들을 위하여 지갑(紙甲)을 보급하였다. 이 지갑은 방한과 방수의 기능을 지녀 갑옷으로서의 기능은 물론 군졸들의 방한복으로서 필수품이었다. 지갑은 점차 간략하여져서 인조 때에는 휴지를 이용하여 만들기도 하였으며 군졸 외에 일반인도 입었던 지의(紙衣)로 변하였다.

이처럼 조선 초부터 종이의 수요가 많아 세종 때 조지서(造紙署)를 설치하여 닥종이 외에도 각종 잡초지를 개발하였다. 종이가 양산되면서 고려 때 적황색 비단을 발랐던 등비(藤篚 : 등으로 짠 광주리)와 같은 죽기(竹器)의 안쪽에는 색지를 바르고, 귀족들이 사용하였던 비단부채도 점차 종이부채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 병자호란을 극복하면서 · 정조대에는 산업이 발전되고 유통경제가 활기를 띠어 서책과 종이가 산간촌락에까지 원활하게 공급되었다.

우리나라의 닥종이는 비단처럼 질기고도 우수하였고 당시의 생활은 매우 검소하였다. 따라서, 휴지나 파지는 다시 종이로 재생하거나 초배지로 활용하였으며, 가늘게 잘라 꼬아서 노끈을 만들어 문고리나 빨랫줄로도 사용하였다. 이렇듯 단순한 노끈의 사용이 발전하여 1800년대 초에는 염색한 노끈으로 방석이나 자리를 만들게 되었으며 그 뒤 각종 기물에 응용되었다.

이 시기의 풍속에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은 설날 황혼에 문 밖에서 태우면 나쁜 병을 물리친다고 믿어 유지(油紙)로 된 퇴발낭(退髮囊 : 사방 80∼90㎝의 유지로 머리 빗을 때 무릎에 펴 빠지는 머리카락을 받으며 세로와 가로로 3번 접어 보관함.)을 사용하였고, 이를 보관하기 위한 종이빗접이나 빗접고비도 제작되었다. 조선 중엽에 수입된 담배가 1800년대에 이르러 국민 모두에게 확대, 소비되면서 엽초를 휴대하기 위한 간편한 종이쌈지가 널리 사용되었다.

탐관오리의 매관매직으로 양반사회가 붕괴되는 조선 후기에는 서민들의 자의식이 강하게 대두되어 생활양식의 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책을 찢어 만든 종이 기물이 대량 제작되었고 양반집 서적이 종들에게 도난당하는 등 서액(書厄)이 심하여졌다. 이에 서책으로 한잡(閑雜)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은 법으로 규제하여야 된다는 뜻 있는 선비의 발의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종이 기물은 가볍고 질기며 깨지지도 않고 휴지나 파지로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어 조선시대 서민계층에 널리 유행되었다. 이와 같이 종이는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각종 용도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기형을 이룰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이러한 특징을 잘 활용한다면 현대감각에 맞는 아름답고 개성있는 공예품으로서 개발할 여지가 많은 공예분야라 하겠다.

참고문헌

『고려사』
『태조실록』
『세종실록』
『임하필기』
『임원십육지』
『한국의 지공예』(덕성여자대학교박물관, 1988)
주석
주1

밥상과 음식을 덮는 데 쓰는 기름종이. 우리말샘

주2

빗접을 꽂아 걸어 두는 도구. 가는 나무오리로 네모지게 짜고 앞뒤를 종이로 바른 뒤에 다시 앞쪽에 두꺼운 종이를 틈이 뜨게 붙였는데, 그 틈에 빗접을 꽂는다. 우리말샘

주3

바늘, 실, 골무, 헝겊 따위의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 우리말샘

주4

장수나 행복 따위의 좋은 일을 상징하는 무늬. 십장생이나 나비 따위의 소재로 구성한다. 우리말샘

주5

실, 삼, 종이 따위를 가늘게 비비거나 꼰 줄로 그물처럼 떠서 만든 망태기. 우리말샘

주6

짚으로 날을 촘촘히 결어서 만든 그릇의 하나. 주로 곡식을 담는 데 쓰인다. 우리말샘

주7

짚이나 댑싸리 따위로 바구니와 비슷하게 엮어 둥글게 만든 그릇. 우리말샘

주8

홍조류 우뭇가사릿과의 해조. 높이는 10~30cm이고 줄기에 잔가지가 많이 나 나뭇가지 모양이며 몸빛은 주로 검붉다. 긴 쇠갈퀴 따위로 따서 고아 우무를 만드는데 바닷속 모래나 돌에 붙어 산다.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9

고려ㆍ조선 시대에, 중앙의 여러 관아와 지방 관서의 경비를 충당하도록 하기 위하여 나누어 주던 논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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