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양명"
검색결과 총 18건
1950년 12월 16일 통과된 <국민방위군설치법>에 의하여 만 17세에서 40세 미만의 제2국민병으로 조직되었던 군대.
국민방위군 (國民防衛軍)
1950년 12월 16일 통과된 <국민방위군설치법>에 의하여 만 17세에서 40세 미만의 제2국민병으로 조직되었던 군대.
1945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군사교육기관.
군사영어학교 (軍事英語學敎)
1945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군사교육기관.
한국전쟁 당시 경기도 연천의 베티고지전투에 참전한 군인.
김만술 (金萬述)
한국전쟁 당시 경기도 연천의 베티고지전투에 참전한 군인.
1951년 6·25전쟁 당시 강원도 양구군 일대의 연봉에서 UN군과 공산군 간에 벌어진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斷腸의 稜線 戰鬪)
1951년 6·25전쟁 당시 강원도 양구군 일대의 연봉에서 UN군과 공산군 간에 벌어진 전투.
한반도의 중앙부를 가로지르고 있는 북위 38°선.
삼팔선 (三八線)
한반도의 중앙부를 가로지르고 있는 북위 38°선.
1967년 1월 19일 휴전선 부근의 동해에서 한국함대의 초계함인 PCE 56 당포함(唐浦艦)이 북한 해안포대에 의하여 피격, 침몰된 사건.
56함 피격침몰사건 (五六艦 被擊沈沒事件)
1967년 1월 19일 휴전선 부근의 동해에서 한국함대의 초계함인 PCE 56 당포함(唐浦艦)이 북한 해안포대에 의하여 피격, 침몰된 사건.
1968년 11월 120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유격대 활동거점 구축을 목적으로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한 사건.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蔚珍·三陟地區 武裝共匪 侵透事件)
1968년 11월 120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유격대 활동거점 구축을 목적으로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한 사건.
해방 이후 육군 제1공수특전단에서 하사관으로 복무한 군인. 스카이다이버.
이원등 (李源登)
해방 이후 육군 제1공수특전단에서 하사관으로 복무한 군인. 스카이다이버.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공세에 따라 정부가 수도 서울에서 철수한 사건.
1·4후퇴 (一四後退)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공세에 따라 정부가 수도 서울에서 철수한 사건.
1·21사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이다. 북한은 대남적화공작을 위해 유격전 특수부대를 조직해 습격을 준비하였다. 1월 13일 청와대 습격 명령을 받은 31명이 18일에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고 20일 밤 서울에 침투해 접전을 벌이면서 경찰과 민간인이 살상되었다. 일당 가운데 김신조는 생포되고 31일까지 28명이 사살되며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하기 위해 향토예비군의 창설을 서두르게 되었다.
1·21사태 (一二一事態)
1·21사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이다. 북한은 대남적화공작을 위해 유격전 특수부대를 조직해 습격을 준비하였다. 1월 13일 청와대 습격 명령을 받은 31명이 18일에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고 20일 밤 서울에 침투해 접전을 벌이면서 경찰과 민간인이 살상되었다. 일당 가운데 김신조는 생포되고 31일까지 28명이 사살되며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하기 위해 향토예비군의 창설을 서두르게 되었다.
1946년 창설되었던 한국 해군의 전신이 되는 국방기구.
조선해안경비대 (朝鮮海岸警備隊)
1946년 창설되었던 한국 해군의 전신이 되는 국방기구.
1949년 11월 대한청년단을 주축으로 하여 창설된 민병대(民兵隊).
청년방위대 (靑年防衛隊)
1949년 11월 대한청년단을 주축으로 하여 창설된 민병대(民兵隊).
1968년 1월 23일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Pueblo號)가 북한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북한으로 납치된 사건.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Pueblo號 拉致事件)
1968년 1월 23일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Pueblo號)가 북한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북한으로 납치된 사건.
학도의용군은 6·25전쟁 때 학생의 신분으로 참전한 의용병이다. 최초는 서울 시내 학교의 학도호국단 간부 학생 200여 명이 조직한 비상학도대이다. 이들은 후방에서 피난민 구호, 전황 보도 등의 임무를 담당했으나 일부는 현역 입대하였고, 전투부대인 ‘대한학도의용대’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도의용군에 참여한 학생 중 실전에 투입된 자가 2만 7700여 명, 후방지원 등에 투입된 자가 20만 명이나 되었다. 상당수의 여학생들도 간호원으로 출정하였다. 1951년 3월부터 정부에서 내린 복교령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갔고, 일부는 다시 입대하였다.
학도의용군 (學徒義勇軍)
학도의용군은 6·25전쟁 때 학생의 신분으로 참전한 의용병이다. 최초는 서울 시내 학교의 학도호국단 간부 학생 200여 명이 조직한 비상학도대이다. 이들은 후방에서 피난민 구호, 전황 보도 등의 임무를 담당했으나 일부는 현역 입대하였고, 전투부대인 ‘대한학도의용대’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도의용군에 참여한 학생 중 실전에 투입된 자가 2만 7700여 명, 후방지원 등에 투입된 자가 20만 명이나 되었다. 상당수의 여학생들도 간호원으로 출정하였다. 1951년 3월부터 정부에서 내린 복교령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갔고, 일부는 다시 입대하였다.
1950년 6·25 당시 북한공산군의 한강이남 진격을 저지할 목적으로 한강다리를 폭파시킨 일.
한강교 폭파사건 (漢江橋 爆破事件)
1950년 6·25 당시 북한공산군의 한강이남 진격을 저지할 목적으로 한강다리를 폭파시킨 일.
1945년에 조직된 한국해군의 모체.
해방병단 (海防兵團)
1945년에 조직된 한국해군의 모체.
1945년 광복 직후에 해군 창설을 목적으로 조직된 해사(海事)관계 사설단체.
해사대 (海事隊)
1945년 광복 직후에 해군 창설을 목적으로 조직된 해사(海事)관계 사설단체.
1948년 8월 정부 수립 직후부터 1949년 8월까지의 기간에 국군의 예비병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창설되었던 예비군.
호국군 (護國軍)
1948년 8월 정부 수립 직후부터 1949년 8월까지의 기간에 국군의 예비병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창설되었던 예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