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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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등은 능(陵), 원(園), 묘(墓)의 봉분 앞에 세워 놓은 석등(石燈)이다. 사찰의 석등과 유사하지만 ‘장명등(長明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후손의 장생발복(長生發福)을 기원하기 위해 불을 꺼뜨리지 않고 오래오래 밝히는 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같은 예서에 능묘 석물로 장명등이 정식 명칭으로 되어 있음에도 명등석(明燈石)이라는 별칭이 조선 후기에 등장한다. 이 명칭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의궤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장명등 (長明燈)
장명등은 능(陵), 원(園), 묘(墓)의 봉분 앞에 세워 놓은 석등(石燈)이다. 사찰의 석등과 유사하지만 ‘장명등(長明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후손의 장생발복(長生發福)을 기원하기 위해 불을 꺼뜨리지 않고 오래오래 밝히는 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같은 예서에 능묘 석물로 장명등이 정식 명칭으로 되어 있음에도 명등석(明燈石)이라는 별칭이 조선 후기에 등장한다. 이 명칭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의궤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혼유석은 능(陵), 원(園), 묘(墓)의 봉분 바로 앞에 설치된 직육면체 형태의 석상(石床)으로, ‘영혼이 노는 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묘(墓)의 경우 봉분 앞에 설치된 직육면체 형태의 석물은 제수(祭需)를 차리는 상석(床石)이고, 상석 뒤에 설치한 작은 직육면체의 돌이 혼유석이다.
혼유석 (魂遊石)
혼유석은 능(陵), 원(園), 묘(墓)의 봉분 바로 앞에 설치된 직육면체 형태의 석상(石床)으로, ‘영혼이 노는 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묘(墓)의 경우 봉분 앞에 설치된 직육면체 형태의 석물은 제수(祭需)를 차리는 상석(床石)이고, 상석 뒤에 설치한 작은 직육면체의 돌이 혼유석이다.
조각가 윤효중이 1950년에 제작한 최송설당(崔松雪堂)의 동상.
최송설당상 (崔松雪堂像)
조각가 윤효중이 1950년에 제작한 최송설당(崔松雪堂)의 동상.
조각가 윤효중이 1952년에 제작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忠武公 李舜臣 將軍 銅像)
조각가 윤효중이 1952년에 제작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
조각가 차근호가 1953년에 제작한 을지문덕 장군의 동상.
성장 을지문덕상 (聖將 乙支文德像)
조각가 차근호가 1953년에 제작한 을지문덕 장군의 동상.
조각가 윤효중이 1940년에 나무로 제작한 여인상.
물동이를 인 여인 (물동이를 인 女人)
조각가 윤효중이 1940년에 나무로 제작한 여인상.
조각가 윤승욱이 1941년에 석고로 제작한 인물상.
피리부는 소녀 (피리부는 少女)
조각가 윤승욱이 1941년에 석고로 제작한 인물상.
조각가 송영수가 1954년에 석고로 제작한 인물 조각상.
가족 (家族)
조각가 송영수가 1954년에 석고로 제작한 인물 조각상.
조각가 김정숙이 1956년에 제작한 석조 인물상.
키스 (kiss)
조각가 김정숙이 1956년에 제작한 석조 인물상.
조각가 김세중이 1957년에 나무로 토르소 형식의 인체를 표현한 조각상.
토르소 (torso)
조각가 김세중이 1957년에 나무로 토르소 형식의 인체를 표현한 조각상.
조각가 송영수가 1957년에 제작한 철 용접조각.
효 (嘵)
조각가 송영수가 1957년에 제작한 철 용접조각.
조각가 김정숙이 1959년에 나무로 여성 누드를 표현한 조각상.
누워있는 여인 (누워있는 女人)
조각가 김정숙이 1959년에 나무로 여성 누드를 표현한 조각상.
해방 이후 「패배자의 딸」, 「미망인」, 「위증인」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오종욱 (吳宗旭)
해방 이후 「패배자의 딸」, 「미망인」, 「위증인」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미술건설본부 조각부 위원, 북조선예술동맹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조각가.
문석오 (文錫五)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미술건설본부 조각부 위원, 북조선예술동맹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조각가.
해방 이후 「해방」, 「역사(力士) I」, 「역사(力士) II」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김만술 (金萬述)
해방 이후 「해방」, 「역사(力士) I」, 「역사(力士) II」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용접조각은 가스 용접이나 전기 용접으로 금속을 이어 붙여서 형상을 만드는 조각 기법이다. 산업기술이 미술에 도입된 것으로 20세기에 서양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는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에 고철을 모아 시대의 고통을 표현하는 조각 기법으로 1950~60년대에 유행했다. 대부분의 조각가들이 고철로 용접조각을 제작했기 때문에 ‘철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금속을 현대적인 절단기로 자유롭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게 되면서 조각가들의 표현 가능성이 크게 확장되었다. 용접조각가로는 송영수, 박종배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용접조각 (鎔接彫刻)
용접조각은 가스 용접이나 전기 용접으로 금속을 이어 붙여서 형상을 만드는 조각 기법이다. 산업기술이 미술에 도입된 것으로 20세기에 서양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는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에 고철을 모아 시대의 고통을 표현하는 조각 기법으로 1950~60년대에 유행했다. 대부분의 조각가들이 고철로 용접조각을 제작했기 때문에 ‘철조’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금속을 현대적인 절단기로 자유롭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게 되면서 조각가들의 표현 가능성이 크게 확장되었다. 용접조각가로는 송영수, 박종배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재료를 깎거나 새겨서 형상을 만드는 조각과 재료를 빚거나 덧붙여 형상을 만드는 소조를 아울러 가리키는 미술용어.
조소 (彫塑)
재료를 깎거나 새겨서 형상을 만드는 조각과 재료를 빚거나 덧붙여 형상을 만드는 소조를 아울러 가리키는 미술용어.
가소성이 있는 재료로 입체적인 미술품을 제작하는 조형미술. 니소(泥塑).
소조 (塑造)
가소성이 있는 재료로 입체적인 미술품을 제작하는 조형미술. 니소(泥塑).
벽동인은 1960년에 설립된 미술 단체이다. 학연이나 지연 중심의 기성 화단과 아카데미즘과 국전의 화풍에 저항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김익수, 김정현, 김형대 등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3학년 재학생 10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기성 화단의 현실을 ‘벽’으로 보고 ‘창조를 현시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하였다. 첫 전시는 국전 개막일인 10월 1일에 맞춰 국전이 열리던 덕수궁의 정동 골목길 담벽에서 열었다. 이후 1964년까지 총 5회의 전시를 가졌다. 작품은 쇳조각, 콘크리트, 마대 등 오브제를 도입하여 기성 화단에 대한 거부를 표명했다.
벽동인 (壁同人)
벽동인은 1960년에 설립된 미술 단체이다. 학연이나 지연 중심의 기성 화단과 아카데미즘과 국전의 화풍에 저항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김익수, 김정현, 김형대 등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3학년 재학생 10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기성 화단의 현실을 ‘벽’으로 보고 ‘창조를 현시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하였다. 첫 전시는 국전 개막일인 10월 1일에 맞춰 국전이 열리던 덕수궁의 정동 골목길 담벽에서 열었다. 이후 1964년까지 총 5회의 전시를 가졌다. 작품은 쇳조각, 콘크리트, 마대 등 오브제를 도입하여 기성 화단에 대한 거부를 표명했다.
60년미술협회는 1960년에 국전의 제도와 기성 화단에 대한 거부 의식에서 설립된 미술 협회이다.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생 각 6명으로 이루어진 미술 단체로, 전위적인 미술을 구현하였다. 두 차례 전시회를 열었는데 제1회는 덕수궁 담 벽에 가두전 형식으로 열었고 제2회 전시는 현대미술가협회와 연립전으로 열었다. 이 협회는 두 번의 전시로 막을 내리고 이후 현대 미협과 연합하여 악뛰엘(Actuel, 1962∼1964)을 창립하였다. 이들은 두터운 마티에르, 격렬한 붓질 등 앵포르멜적인 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앵포르멜 화풍을 선도하였다.
60년미술협회 (六十年美術協會)
60년미술협회는 1960년에 국전의 제도와 기성 화단에 대한 거부 의식에서 설립된 미술 협회이다.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생 각 6명으로 이루어진 미술 단체로, 전위적인 미술을 구현하였다. 두 차례 전시회를 열었는데 제1회는 덕수궁 담 벽에 가두전 형식으로 열었고 제2회 전시는 현대미술가협회와 연립전으로 열었다. 이 협회는 두 번의 전시로 막을 내리고 이후 현대 미협과 연합하여 악뛰엘(Actuel, 1962∼1964)을 창립하였다. 이들은 두터운 마티에르, 격렬한 붓질 등 앵포르멜적인 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앵포르멜 화풍을 선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