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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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은 동북아시아의 여러 부족과 정치체에서 지역의 수장 또는 족장을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장 강력한 간이 왕 또는 마립간이 되어 여러 간과 더불어 주요한 국정을 논의하여 결정하였다. 점차 국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간은 국왕으로부터 관등을 받고 신료로 편입되었다.
간 (干)
간은 동북아시아의 여러 부족과 정치체에서 지역의 수장 또는 족장을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장 강력한 간이 왕 또는 마립간이 되어 여러 간과 더불어 주요한 국정을 논의하여 결정하였다. 점차 국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간은 국왕으로부터 관등을 받고 신료로 편입되었다.
간진은 신라 진평왕 때 활약한 중앙의 관리이다. 능절조 30석을 부산성으로 나르다가 죽지랑의 낭도인 득오가 휴가를 얻게 도왔다. 간진은 당시 '사리'였으므로 중앙의 관리로서 임시로 수취품의 운송을 책임졌다고 보인다. 국가는 이를 표창하여 간진의 가호를 평정호(枰定戶)로 지정해 주었다.
간진 (侃珍)
간진은 신라 진평왕 때 활약한 중앙의 관리이다. 능절조 30석을 부산성으로 나르다가 죽지랑의 낭도인 득오가 휴가를 얻게 도왔다. 간진은 당시 '사리'였으므로 중앙의 관리로서 임시로 수취품의 운송을 책임졌다고 보인다. 국가는 이를 표창하여 간진의 가호를 평정호(枰定戶)로 지정해 주었다.
경덕왕은 742~765년에 재위한 신라의 제35대 왕으로서, 이름은 김헌영이다. 재위 기간에 여러 관부와 관직을 신설했고, 패강(浿江)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관료 급여제도로서 월봉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했고, 관호와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실시했다.
경덕왕 (景德王)
경덕왕은 742~765년에 재위한 신라의 제35대 왕으로서, 이름은 김헌영이다. 재위 기간에 여러 관부와 관직을 신설했고, 패강(浿江)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관료 급여제도로서 월봉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했고, 관호와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실시했다.
『계림잡전』은 신라 성덕왕 때, 김대문이 신라의 전통적인 제도와 문화에 관한 여러 전승을 모은 책이다. 현재 이 책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려 중기에 『삼국사기』가 편찬될 때까지는 전해지고 있었다. 즉, 『삼국사기』 편찬자가 『계림잡전』을 참조하여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의 어원과 이차돈의 순교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였다.
계림잡전 (鷄林雜傳)
『계림잡전』은 신라 성덕왕 때, 김대문이 신라의 전통적인 제도와 문화에 관한 여러 전승을 모은 책이다. 현재 이 책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려 중기에 『삼국사기』가 편찬될 때까지는 전해지고 있었다. 즉, 『삼국사기』 편찬자가 『계림잡전』을 참조하여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의 어원과 이차돈의 순교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였다.
공옹(工翁)은 삼국시대, 신라 내성(內省) 관할의 본피궁(本彼宮)에 소속된 관원이다. 본피궁에는 우(虞) 1명, 사모(私母) 1명, 공옹 2명, 전옹(典翁) 1명, 사(史) 2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왕실에서 소유한 자원을 이용한 수공업 물품 생산을 관장하던 역할을 수행하였다. 주로 땔나무와 숯 등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일을 맡았다.
공옹 (工翁)
공옹(工翁)은 삼국시대, 신라 내성(內省) 관할의 본피궁(本彼宮)에 소속된 관원이다. 본피궁에는 우(虞) 1명, 사모(私母) 1명, 공옹 2명, 전옹(典翁) 1명, 사(史) 2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왕실에서 소유한 자원을 이용한 수공업 물품 생산을 관장하던 역할을 수행하였다. 주로 땔나무와 숯 등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일을 맡았다.
교관선(交關船)은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와 발해가 당나라 또는 일본과 교섭하기 위해 보낸 선박이다. 고대국가는 육로, 내륙수로, 해로를 통해 사절단을 파견하여 주변 국가와 교류해 왔다. 이러한 활동을 교관(交關)이라고 하며, 교관을 위해 사용된 선박이 교관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일신라와 발해에서 일본으로 보낸 교관선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주로 교역 활동에 이용되었다.
교관선 (交關船)
교관선(交關船)은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와 발해가 당나라 또는 일본과 교섭하기 위해 보낸 선박이다. 고대국가는 육로, 내륙수로, 해로를 통해 사절단을 파견하여 주변 국가와 교류해 왔다. 이러한 활동을 교관(交關)이라고 하며, 교관을 위해 사용된 선박이 교관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일신라와 발해에서 일본으로 보낸 교관선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주로 교역 활동에 이용되었다.
대렴은 신라 하대(下代)에 활약한 고위 관료이다. 신라 제42대 왕인 흥덕왕 때 중국 당나라에 사절로 파견되었다가 귀국하면서 차(茶)의 종자를 가져왔다. 이를 계기로 차의 재배가 확대 보급되어 신라의 왕족, 귀족, 승려들이 즐겨 마시게 되었다.
대렴 (大廉)
대렴은 신라 하대(下代)에 활약한 고위 관료이다. 신라 제42대 왕인 흥덕왕 때 중국 당나라에 사절로 파견되었다가 귀국하면서 차(茶)의 종자를 가져왔다. 이를 계기로 차의 재배가 확대 보급되어 신라의 왕족, 귀족, 승려들이 즐겨 마시게 되었다.
김대문은 신라의 진골 귀족 출신 관료이다. 성덕왕 때 한산주를 다스리는 도독으로 임명되어 파견되었으며, 『고승전』, 『화랑세기』, 『악본(樂夲)』, 『한산기(漢山記)』, 『계림잡전』 등을 지었다. 불교 및 신라의 전통문화에 관한 지식이 깊었다. 관리로서의 경력은 한산주 도독을 지냈다는 사실만 전하는데, 이것을 김대문의 최후이자 최고 관직으로 본다면, 그는 문무왕대에 출생하여 신문왕대부터 관료가 되었고 성덕왕대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대문 (金大問)
김대문은 신라의 진골 귀족 출신 관료이다. 성덕왕 때 한산주를 다스리는 도독으로 임명되어 파견되었으며, 『고승전』, 『화랑세기』, 『악본(樂夲)』, 『한산기(漢山記)』, 『계림잡전』 등을 지었다. 불교 및 신라의 전통문화에 관한 지식이 깊었다. 관리로서의 경력은 한산주 도독을 지냈다는 사실만 전하는데, 이것을 김대문의 최후이자 최고 관직으로 본다면, 그는 문무왕대에 출생하여 신문왕대부터 관료가 되었고 성덕왕대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봉휴는 신라 말의 관료이다. 경순왕 때 시랑(侍郞) 직에 있으면서 고려 태조 왕건에게 가서 신라의 항복 의사를 전했다. 그 밖의 활동이나 가계에 관해 전하는 기록이 없다. 관직은 차관이었지만, 성(姓)이 김씨이고 중책을 맡은 것으로 보아 진골이라고 여겨진다.
김봉휴 (金封休)
김봉휴는 신라 말의 관료이다. 경순왕 때 시랑(侍郞) 직에 있으면서 고려 태조 왕건에게 가서 신라의 항복 의사를 전했다. 그 밖의 활동이나 가계에 관해 전하는 기록이 없다. 관직은 차관이었지만, 성(姓)이 김씨이고 중책을 맡은 것으로 보아 진골이라고 여겨진다.
김옹은 신라 진골 출신의 고위 관료로서, 중대 말기에 활약하였다. 경덕왕 때 집사성의 장관인 시중이 되어 정치와 행정의 핵심 역할을 맡았고, 혜공왕 때는 대각간에 올라 최고의 집정자로서 정국을 주도하였다. 외교 면에서는 일본과 우호적인 교류를 추진하였다.
김옹 (金邕)
김옹은 신라 진골 출신의 고위 관료로서, 중대 말기에 활약하였다. 경덕왕 때 집사성의 장관인 시중이 되어 정치와 행정의 핵심 역할을 맡았고, 혜공왕 때는 대각간에 올라 최고의 집정자로서 정국을 주도하였다. 외교 면에서는 일본과 우호적인 교류를 추진하였다.
김체신은 신라 중대 말~하대 초의 관료이다. 경덕왕 때 일본에 파견되어 외교 활동을 하였고, 혜공왕 때는 감은사성전(感恩寺成典)의 차관으로서 성덕대왕신종을 주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선덕왕 4년(783)에 대곡진이라고도 불린 패강진의 장관이 되었다.
김체신 (金體信)
김체신은 신라 중대 말~하대 초의 관료이다. 경덕왕 때 일본에 파견되어 외교 활동을 하였고, 혜공왕 때는 감은사성전(感恩寺成典)의 차관으로서 성덕대왕신종을 주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선덕왕 4년(783)에 대곡진이라고도 불린 패강진의 장관이 되었다.
김현은 신라 설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삼국유사』 권 5, 「김현감호」 조에 왕경에 사는 귀족 출신의 젊은이로 나온다. 그는 탑돌이를 하다가 호랑이가 변신한 여성을 만났는데, 그 호랑이의 희생으로 인해 높은 관등을 얻자 은혜를 갚기 위해 호원사라는 사찰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김현 (金現)
김현은 신라 설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삼국유사』 권 5, 「김현감호」 조에 왕경에 사는 귀족 출신의 젊은이로 나온다. 그는 탑돌이를 하다가 호랑이가 변신한 여성을 만났는데, 그 호랑이의 희생으로 인해 높은 관등을 얻자 은혜를 갚기 위해 호원사라는 사찰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김흠돌은 신라 중대의 진골 귀족 출신 관료였다. 문무왕대에 장군직을 역임하였으며, 신문왕이 태자였을 때 그의 장인이 되었다. 그러나 뒤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어 죽임을 당했고, 자신의 딸도 이 때문에 출궁되었다.
김흠돌 (金欽突)
김흠돌은 신라 중대의 진골 귀족 출신 관료였다. 문무왕대에 장군직을 역임하였으며, 신문왕이 태자였을 때 그의 장인이 되었다. 그러나 뒤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어 죽임을 당했고, 자신의 딸도 이 때문에 출궁되었다.
덕복은 문무왕대에 중국 당나라에서 숙위를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역술을 전하였다. 관등은 10등 대나마를 지냈다. 신라는 그의 역술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역법을 쓰게 되었다. 그 밖의 행적에 관해서는 전하는 자료가 없다.
덕복 (德福)
덕복은 문무왕대에 중국 당나라에서 숙위를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역술을 전하였다. 관등은 10등 대나마를 지냈다. 신라는 그의 역술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역법을 쓰게 되었다. 그 밖의 행적에 관해서는 전하는 자료가 없다.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신라 하대의 왕족인 김주원이 묻혇다고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무덤이다. 선덕왕 사후 왕위 쟁탈전을 벌인 김주원이 김경신에게 패배하여 명주, 지금의 강릉 지역으로 퇴거하였다. 조선 중기에 김주원의 후손이 강릉의 지방관으로 파견되어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 읍지, 족보류에 김주원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그의 무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명주군왕릉 (溟州郡王陵)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신라 하대의 왕족인 김주원이 묻혇다고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무덤이다. 선덕왕 사후 왕위 쟁탈전을 벌인 김주원이 김경신에게 패배하여 명주, 지금의 강릉 지역으로 퇴거하였다. 조선 중기에 김주원의 후손이 강릉의 지방관으로 파견되어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 읍지, 족보류에 김주원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그의 무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