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남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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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진료가운은 서재필 박사가 의사 시절 착용한 진료가운이다. 서재필은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독립신문 창간자로서 유명하다. 진료가운의 소재는 캔버스 조직으로 된 면직물이다. 진료가운의 안쪽에는 서재필의 영문 이름인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의 가운데 ‘S’가 들어간 ‘Dr. P. S. J.’의 머리글자[initial]와 진료가운을 제작한 미국 필라델피아의 ‘C. D. Williams & Co.’의 상호 및 주소 라벨이 부착되어 있다.
서재필 진료가운 (徐載弼 診療gown)
서재필 진료가운은 서재필 박사가 의사 시절 착용한 진료가운이다. 서재필은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독립신문 창간자로서 유명하다. 진료가운의 소재는 캔버스 조직으로 된 면직물이다. 진료가운의 안쪽에는 서재필의 영문 이름인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의 가운데 ‘S’가 들어간 ‘Dr. P. S. J.’의 머리글자[initial]와 진료가운을 제작한 미국 필라델피아의 ‘C. D. Williams & Co.’의 상호 및 주소 라벨이 부착되어 있다.
백범 김구 혈의 일괄(白凡 金九 血衣 一括)은 백범 김구가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암살 당했던 당시 착용하였던 복식이다. 백범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사저인 서울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가 쏜 총탄에 암살 당했다. 혈의 일괄은 조끼적삼(1점), 저고리(1점), 조끼(1점), 개량속고의(1점), 바지(1점), 대님(2점), 양말(2점) 및 개량토시(1점) 등 일괄 8종 10점이다. 혈흔과 탄흔이 있어 서거 당시의 상황을 증명해주는 유물이다.
백범 김구 혈의 일괄 (白凡 金九 血衣 一括)
백범 김구 혈의 일괄(白凡 金九 血衣 一括)은 백범 김구가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암살 당했던 당시 착용하였던 복식이다. 백범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사저인 서울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가 쏜 총탄에 암살 당했다. 혈의 일괄은 조끼적삼(1점), 저고리(1점), 조끼(1점), 개량속고의(1점), 바지(1점), 대님(2점), 양말(2점) 및 개량토시(1점) 등 일괄 8종 10점이다. 혈흔과 탄흔이 있어 서거 당시의 상황을 증명해주는 유물이다.
최현배 의복은 한글학자 최현배가 착용하였던 현대 남성 의복 및 관련 용품이다. 두루마기, 모직 외투, 남성 정장[suit], 트렌치 코트[trench coat], 털 조끼, 털칼라 하프 코트[half coat], 스카프, 넥타이와 넥타이걸이 등 모두 9건 21점이다. 제작 시기는 대략 1950년대 또는 1960년대로 추정된다. 최현배 의복은 2010년 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을 개관할 때 외솔최현배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통해 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에 기증되었다.
최현배 의복 (崔鉉培 衣服)
최현배 의복은 한글학자 최현배가 착용하였던 현대 남성 의복 및 관련 용품이다. 두루마기, 모직 외투, 남성 정장[suit], 트렌치 코트[trench coat], 털 조끼, 털칼라 하프 코트[half coat], 스카프, 넥타이와 넥타이걸이 등 모두 9건 21점이다. 제작 시기는 대략 1950년대 또는 1960년대로 추정된다. 최현배 의복은 2010년 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을 개관할 때 외솔최현배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통해 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에 기증되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의복과 소품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부인인 프란체스카가 착용하였던 의복 및 소품이다. 이것은 4건 5점으로, 진회색 슈트(suit) 1건 2점, 검은색 가죽 구두 1켤레 2점, 검은색 레이스 1켤레 2점, 검은색 가죽 핸드백 1점이다. 이 프란체스카 여사의 의복과 소품은 프란체스카의 검소한 생활 태도를 반영하며, 초기 국내 생산 모직물이고, 애국심 고취를 위해 무궁화 무늬 안감을 주문 제작하였다는 점 등에서 가치가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의복과 소품 (Francesca 女史의 衣服과 小品)
프란체스카 여사의 의복과 소품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부인인 프란체스카가 착용하였던 의복 및 소품이다. 이것은 4건 5점으로, 진회색 슈트(suit) 1건 2점, 검은색 가죽 구두 1켤레 2점, 검은색 레이스 1켤레 2점, 검은색 가죽 핸드백 1점이다. 이 프란체스카 여사의 의복과 소품은 프란체스카의 검소한 생활 태도를 반영하며, 초기 국내 생산 모직물이고, 애국심 고취를 위해 무궁화 무늬 안감을 주문 제작하였다는 점 등에서 가치가 있다.
유림 양복은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유림(본명 유화영)이 착용한 양복이다. 독립운동가의 의복이며,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초기 국산 모직물과 플라스틱 단추 등 현물로서의 가치와 그 시대상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중산복 유형의 복식이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에 ‘신생활복’을 거쳐 1961년 제정된 표준 간소복과 같은 형태로 지속되어 이 양복은 우리나라 현대 남성복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
유림 양복 (柳林 洋服)
유림 양복은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유림(본명 유화영)이 착용한 양복이다. 독립운동가의 의복이며,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초기 국산 모직물과 플라스틱 단추 등 현물로서의 가치와 그 시대상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중산복 유형의 복식이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에 ‘신생활복’을 거쳐 1961년 제정된 표준 간소복과 같은 형태로 지속되어 이 양복은 우리나라 현대 남성복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
여운형 혈의는 1947년 7월 19일에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여운형이 권총 테러로 피격 당할 당시 입고 있던 의복이다. 피가 묻어 있는 상의로 재킷 1점, 셔츠 1점, 속옷 1점이다. 이는 여운형이 흉탄에 쓰러지던 순간에 입고 있었던 의복류로 혈흔과 탄흔이 있어 서거 당시의 상황을 증명하고 있다.
여운형 혈의 (呂運亨 血衣)
여운형 혈의는 1947년 7월 19일에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여운형이 권총 테러로 피격 당할 당시 입고 있던 의복이다. 피가 묻어 있는 상의로 재킷 1점, 셔츠 1점, 속옷 1점이다. 이는 여운형이 흉탄에 쓰러지던 순간에 입고 있었던 의복류로 혈흔과 탄흔이 있어 서거 당시의 상황을 증명하고 있다.
이원순 유물은 이원순이 1948년 런던올림픽에 한국 대표팀의 고문으로 참가하였을 당시 착용하였던 단복(團服)이다. 이원순이 1986년 독립기념관에 이 옷을 직접 기증하였으며 현재까지 발견된 1948년 런던올림픽 단복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이원순 유물 (李元淳 遺物)
이원순 유물은 이원순이 1948년 런던올림픽에 한국 대표팀의 고문으로 참가하였을 당시 착용하였던 단복(團服)이다. 이원순이 1986년 독립기념관에 이 옷을 직접 기증하였으며 현재까지 발견된 1948년 런던올림픽 단복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맥고모자는 개항 이후 남자들이 주로 착용하였던 밀짚이나 보릿짚으로 만든 여름용 모자이다. 이는 좁은 의미의 맥고모자이고, 넓은 의미로는 밀짚이나 보릿짚으로 만든 모자 일반을 맥고모자로 칭한다. 맥고(麥藁)는 밀짚이나 보릿짚을 뜻하고, 맥고모자는 그 줄기로 제작하였다. 좁은 의미의 맥고모자 형태는 모자 위 정수리를 덮는 부분이 평평하고 납작하며, 모자의 관 부분과 챙이 만나는 바로 위에 리본이 둘려져 있다. 넓은 의미의 맥고모자는 형태가 다양하다.
맥고모자 (麥藁帽子)
맥고모자는 개항 이후 남자들이 주로 착용하였던 밀짚이나 보릿짚으로 만든 여름용 모자이다. 이는 좁은 의미의 맥고모자이고, 넓은 의미로는 밀짚이나 보릿짚으로 만든 모자 일반을 맥고모자로 칭한다. 맥고(麥藁)는 밀짚이나 보릿짚을 뜻하고, 맥고모자는 그 줄기로 제작하였다. 좁은 의미의 맥고모자 형태는 모자 위 정수리를 덮는 부분이 평평하고 납작하며, 모자의 관 부분과 챙이 만나는 바로 위에 리본이 둘려져 있다. 넓은 의미의 맥고모자는 형태가 다양하다.
국민복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하여 강요된 전시용(戰時用) 복식이다. 대개 1930년대 후반에 강요되기 시작했던 남성의 복식을 가리킨다. 국민복은 우리 민족에게는 일제 말기 치욕스러운 기억이었고, 국민복을 입었던 사람은 해방 이후 ‘친일파’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후 국민복은 근검절약과 생활 개선 등을 논의할 때 등장하는, 검소함을 상징하는 복식이기도 했으나 현재는 착용되지 않고 있다.
국민복 (國民服)
국민복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하여 강요된 전시용(戰時用) 복식이다. 대개 1930년대 후반에 강요되기 시작했던 남성의 복식을 가리킨다. 국민복은 우리 민족에게는 일제 말기 치욕스러운 기억이었고, 국민복을 입었던 사람은 해방 이후 ‘친일파’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후 국민복은 근검절약과 생활 개선 등을 논의할 때 등장하는, 검소함을 상징하는 복식이기도 했으나 현재는 착용되지 않고 있다.
대학생 교복은 근대에 대학생이 착용하던 제복이다. 1880년대 근대 교육 기관 설립 초기에는 한복을 착용하였고, 배재학당에서 처음으로 양복 교복을 도입하였다. 대학생 교복은 중 · 고등학교 교복과 비슷하나 모자에서 차이를 보였다. 고등보통학교까지는 학생들이 둥근 모자를 착용하였고, 대학생은 사각형 모자를 착용하였다. 1920년대에 남학생 교복은 양복화되었고, 여학생 교복은 1930년대에 양복화되었다. 1940년 대학생 교복이 전시복 차림으로 변화하였다.
대학생 교복 (大學生 校服)
대학생 교복은 근대에 대학생이 착용하던 제복이다. 1880년대 근대 교육 기관 설립 초기에는 한복을 착용하였고, 배재학당에서 처음으로 양복 교복을 도입하였다. 대학생 교복은 중 · 고등학교 교복과 비슷하나 모자에서 차이를 보였다. 고등보통학교까지는 학생들이 둥근 모자를 착용하였고, 대학생은 사각형 모자를 착용하였다. 1920년대에 남학생 교복은 양복화되었고, 여학생 교복은 1930년대에 양복화되었다. 1940년 대학생 교복이 전시복 차림으로 변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