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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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중추원의관, 장례원소경,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강우형 (姜友馨)
조선 후기에, 중추원의관, 장례원소경,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궁내부특진관, 시종원부경, 중추원찬의 등을 역임한 문신.
김만수 (金晩秀)
조선 후기에, 궁내부특진관, 시종원부경, 중추원찬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경기관찰사, 경상도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김명진 (金明鎭)
조선 후기에, 경기관찰사, 경상도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강찬 (姜籫▽)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비서원승, 봉상사제조,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문신.
김병수 (金炳秀)
조선 후기에, 비서원승, 봉상사제조,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형조판서, 함경도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병지 (金柄地)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형조판서, 함경도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인천부사 겸 감리인천항통상사무, 홍주부관찰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 의진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문신·의병.
김상덕 (金商悳)
조선 후기에, 인천부사 겸 감리인천항통상사무, 홍주부관찰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 의진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문신·의병.
조선 후기에, 평리원판사, 한성재판소 수반판사, 형법교정관 등을 역임한 문신.
김석규 (金錫圭)
조선 후기에, 평리원판사, 한성재판소 수반판사, 형법교정관 등을 역임한 문신.
일제강점기 때, 이석용 의진에서 연락책으로 활동하였으며, 국권 피탈 이후 진전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의병·독립운동가.
박동환 (朴東煥)
일제강점기 때, 이석용 의진에서 연락책으로 활동하였으며, 국권 피탈 이후 진전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의병·독립운동가.
개항기 때, 궁내부특진관, 경효전제조, 장례원경 등을 역임한 문신.
김석근 (金晳根)
개항기 때, 궁내부특진관, 경효전제조, 장례원경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기 때, 황재호 의진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의병.
목자상 (睦子商)
대한제국기 때, 황재호 의진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의병.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김세호 (金世鎬)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제학, 경상도관찰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남일우 (南一祐)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제학, 경상도관찰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기 호남지역의 의병 활동을 기록한 일기.
거의일기 (擧義日記)
대한제국기 호남지역의 의병 활동을 기록한 일기.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봉상사제조,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권응선 (權膺善)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봉상사제조,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군부협판, 육군연성학교장, 규장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김승규 (金昇圭)
조선 후기에, 군부협판, 육군연성학교장, 규장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헌부집의, 부사직, 정위 등을 역임한 문신.
권종록 (權鍾祿)
조선 후기에, 사헌부집의, 부사직, 정위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성균관대사성, 강원도관찰사,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시연 (金始淵)
조선 후기에, 성균관대사성, 강원도관찰사,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헌부장령, 홍문관교리, 남포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김양연 (金亮淵)
조선 후기에, 사헌부장령, 홍문관교리, 남포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김영근은 일제강점기 때, 위정척사 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운동을 모색하였으며, 저항시인으로 평가되는 학자·시인·독립운동가이다. 자는 내회, 호는 경회, 죽산, 천태이다. 1865년(고종 2) 출생하여 1934년 사망했다. 1905년, 1910년 경에 북간도로 망명하였으나 곧 환국하였다. 1916년부터는 강진에 신흥서관을 열고 강학하며 지냈다. 1919년 이후 ‘조선고사연구회’와 ‘인도공의소’를 결성하여 민족운동을 하였다. 1934년에 서거하였다. 민족 수난을 소재로 1500여 수의 한시를 남겨 저항시인으로 평가되었다. 1987년 『경회집』이 간행되었다.
김영근 (金永根)
김영근은 일제강점기 때, 위정척사 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운동을 모색하였으며, 저항시인으로 평가되는 학자·시인·독립운동가이다. 자는 내회, 호는 경회, 죽산, 천태이다. 1865년(고종 2) 출생하여 1934년 사망했다. 1905년, 1910년 경에 북간도로 망명하였으나 곧 환국하였다. 1916년부터는 강진에 신흥서관을 열고 강학하며 지냈다. 1919년 이후 ‘조선고사연구회’와 ‘인도공의소’를 결성하여 민족운동을 하였다. 1934년에 서거하였다. 민족 수난을 소재로 1500여 수의 한시를 남겨 저항시인으로 평가되었다. 1987년 『경회집』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