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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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은 일제강점기 때, 위정척사 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운동을 모색하였으며, 저항시인으로 평가되는 학자·시인·독립운동가이다. 자는 내회, 호는 경회, 죽산, 천태이다. 1865년(고종 2) 출생하여 1934년 사망했다. 1905년, 1910년 경에 북간도로 망명하였으나 곧 환국하였다. 1916년부터는 강진에 신흥서관을 열고 강학하며 지냈다. 1919년 이후 ‘조선고사연구회’와 ‘인도공의소’를 결성하여 민족운동을 하였다. 1934년에 서거하였다. 민족 수난을 소재로 1500여 수의 한시를 남겨 저항시인으로 평가되었다. 1987년 『경회집』이 간행되었다.
김영근 (金永根)
김영근은 일제강점기 때, 위정척사 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운동을 모색하였으며, 저항시인으로 평가되는 학자·시인·독립운동가이다. 자는 내회, 호는 경회, 죽산, 천태이다. 1865년(고종 2) 출생하여 1934년 사망했다. 1905년, 1910년 경에 북간도로 망명하였으나 곧 환국하였다. 1916년부터는 강진에 신흥서관을 열고 강학하며 지냈다. 1919년 이후 ‘조선고사연구회’와 ‘인도공의소’를 결성하여 민족운동을 하였다. 1934년에 서거하였다. 민족 수난을 소재로 1500여 수의 한시를 남겨 저항시인으로 평가되었다. 1987년 『경회집』이 간행되었다.
원용팔은 개항기 때, 유인석 휘하의 제천의병에서 중군장으로 활동하다가 강원도 원주에서 직접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이다. 본명은 용석인데 용팔로 개명하였다. 1862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고, 유중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5년 을미변복령이 내려지자 비상시국에 대처하는 행동 방안으로 ‘처변삼사(處變三事)’를 제시하였으며 심상희의진과 제천의병에 가담하였다. 1905년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격문과 성명서를 발표하고 단양, 영월, 정선, 홍천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9월에 체포되어 경성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옥중 순국하였다.
원용팔 (元容八)
원용팔은 개항기 때, 유인석 휘하의 제천의병에서 중군장으로 활동하다가 강원도 원주에서 직접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이다. 본명은 용석인데 용팔로 개명하였다. 1862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고, 유중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5년 을미변복령이 내려지자 비상시국에 대처하는 행동 방안으로 ‘처변삼사(處變三事)’를 제시하였으며 심상희의진과 제천의병에 가담하였다. 1905년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격문과 성명서를 발표하고 단양, 영월, 정선, 홍천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9월에 체포되어 경성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옥중 순국하였다.
임한주는 일제강점기 때,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였고, 덕명의숙에서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홍양기사』, 『파변집』 등을 저술한 독립운동가이다. 항일지사 임승주의 동생이다. 1895년에 김복한 등이 주도한 홍주의병에 참여하였다. 1919년 파리장서운동이 전개될 때 장서에 서명하고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부터는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덕명의숙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외에 의병에 참여한 지사들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역사 기록을 남겼다. 특히 홍주의병의 사적을 상세히 담은 『홍양기사』는 의병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임한주 (林翰周)
임한주는 일제강점기 때,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였고, 덕명의숙에서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홍양기사』, 『파변집』 등을 저술한 독립운동가이다. 항일지사 임승주의 동생이다. 1895년에 김복한 등이 주도한 홍주의병에 참여하였다. 1919년 파리장서운동이 전개될 때 장서에 서명하고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부터는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덕명의숙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외에 의병에 참여한 지사들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역사 기록을 남겼다. 특히 홍주의병의 사적을 상세히 담은 『홍양기사』는 의병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채응언은 대한제국기 한반도 중북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883년(고종 20)에 태어나 1915년에 사망했다. 채응원(蔡應元), 채응경(蔡應慶), 채도석(蔡道錫) 등의 이름도 사용하였다. 1907년 유인석 계열의 서태순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08년 황해도 일대에서 의병부대를 정비하여 항일전을 시작하였다. 이후 황해도와 강원도, 함경남도 등지에서 일제의 군경과 헌병대와 교전하였다. 1914년 일제의 대대적인 의병 탄압작전이 전개되는 와중에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채응언 (蔡應彦)
채응언은 대한제국기 한반도 중북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883년(고종 20)에 태어나 1915년에 사망했다. 채응원(蔡應元), 채응경(蔡應慶), 채도석(蔡道錫) 등의 이름도 사용하였다. 1907년 유인석 계열의 서태순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08년 황해도 일대에서 의병부대를 정비하여 항일전을 시작하였다. 이후 황해도와 강원도, 함경남도 등지에서 일제의 군경과 헌병대와 교전하였다. 1914년 일제의 대대적인 의병 탄압작전이 전개되는 와중에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춘천의병은 강원도 춘천에서 1896년 1월 18일부터 2월 8일까지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이다. 정인회, 성익현 등은 전직 관료와 유생을 비롯하여 아전, 군인, 농민, 상민 등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의병 5~6천 명을 모으고, 이항로의 문인인 이소응을 의병장으로 삼았다. 이들은 춘천 관찰사 조인승을 처단하고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가평으로 향하던 중 벌업산 전투에서 패하고 총공격을 해온 경군에 의해 패산되었다. 을미의병 시기 봉기한 대표적인 의진 가운데 하나이다. 양구, 회양 등지 뿐만 아니라 관북지방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춘천의병 (春川義兵)
춘천의병은 강원도 춘천에서 1896년 1월 18일부터 2월 8일까지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이다. 정인회, 성익현 등은 전직 관료와 유생을 비롯하여 아전, 군인, 농민, 상민 등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의병 5~6천 명을 모으고, 이항로의 문인인 이소응을 의병장으로 삼았다. 이들은 춘천 관찰사 조인승을 처단하고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가평으로 향하던 중 벌업산 전투에서 패하고 총공격을 해온 경군에 의해 패산되었다. 을미의병 시기 봉기한 대표적인 의진 가운데 하나이다. 양구, 회양 등지 뿐만 아니라 관북지방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사립 미술관.
사비나미술관 (Savina美術館)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사립 미술관.
일제강점기 때, 제주에서 독서회를 조직하고 일인상품불매운동을 전개하는 등 항일계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강기찬 (康箕贊)
일제강점기 때, 제주에서 독서회를 조직하고 일인상품불매운동을 전개하는 등 항일계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강난형 (姜蘭馨)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민용호가 우리나라 서북지역과 만주일대에서의 활동을 기록한 일기.
강북일기 (江北日記)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민용호가 우리나라 서북지역과 만주일대에서의 활동을 기록한 일기.
조선 후기에, 중추원의관, 장례원소경,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강우형 (姜友馨)
조선 후기에, 중추원의관, 장례원소경,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강찬 (姜𧄽)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기 호남지역의 의병 활동을 기록한 일기.
거의일기 (擧義日記)
대한제국기 호남지역의 의병 활동을 기록한 일기.
조선 숙종 때 개성부(開城府)의 군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리영(管理營)의 우두머리.
관리사 (管理使)
조선 숙종 때 개성부(開城府)의 군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리영(管理營)의 우두머리.
1909년 의병장 유인석이 연해주에서 국내외 항일의병 세력을 결속하기 위하여 시도한 향약 형태의 군사조직.
관일약 (貫一約)
1909년 의병장 유인석이 연해주에서 국내외 항일의병 세력을 결속하기 위하여 시도한 향약 형태의 군사조직.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봉상사제조,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권응선 (權膺善)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봉상사제조,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헌부집의, 부사직, 정위 등을 역임한 문신.
권종록 (權鍾祿)
조선 후기에, 사헌부집의, 부사직, 정위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제실회계심사국장, 대원왕대원비원침천봉시검찰당상 등을 역임한 문신.
김각현 (金珏鉉)
조선 후기에, 제실회계심사국장, 대원왕대원비원침천봉시검찰당상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중추원일등의관,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문신.
김구현 (金九絃)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중추원일등의관,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중추원외랑, 내부참서관,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김규희 (金奎熙)
조선 후기에, 중추원외랑, 내부참서관,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궁내부특진관, 시종원부경, 중추원찬의 등을 역임한 문신.
김만수 (金晩秀)
조선 후기에, 궁내부특진관, 시종원부경, 중추원찬의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