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정규"
검색결과 총 31건
주영한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942년에 창간한 신문. 교민신문.
공개편지 (公開片紙)
주영한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942년에 창간한 신문. 교민신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교포단체인 공립협회의 기관지로 1905년에 창간한 신문.
공립신보 (共立新報)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교포단체인 공립협회의 기관지로 1905년에 창간한 신문.
1945년 서울에서 창간되었던 종합통신.
공립통신 (共立通信)
1945년 서울에서 창간되었던 종합통신.
1935년에, 서울에서 김영철이 『동아상공시보』를 개제하여 창간한 신문.
동아경제신문 (東亞經濟新聞)
1935년에, 서울에서 김영철이 『동아상공시보』를 개제하여 창간한 신문.
1908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교포 단체인 한국국민회의 기관지로 창간한 교민 단체 신문.
대동공보 (大東共報)
1908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교포 단체인 한국국민회의 기관지로 창간한 교민 단체 신문.
격문은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의분을 고취하려고 쓴 문서이다. 격 또는 격서라고도 한다. 적군을 힐책하는 글과 급히 각 곳의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보내는 글도 포함된다. 격문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통문과 함께 중요한 의사 전달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격문의 일종인 사발통문은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연명자들의 이름을 사발 모양으로 돌려서 썼다. 대중매체가 발달하지 못하였던 전통사회에서는 격문이 심리전에 있어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격문 (檄文)
격문은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의분을 고취하려고 쓴 문서이다. 격 또는 격서라고도 한다. 적군을 힐책하는 글과 급히 각 곳의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보내는 글도 포함된다. 격문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통문과 함께 중요한 의사 전달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격문의 일종인 사발통문은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연명자들의 이름을 사발 모양으로 돌려서 썼다. 대중매체가 발달하지 못하였던 전통사회에서는 격문이 심리전에 있어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1909년에, 대한협회에서 민족의 단결과 지식의 보급을 위하여 창간한 일간 신문.
대한민보 (大韓民報)
1909년에, 대한협회에서 민족의 단결과 지식의 보급을 위하여 창간한 일간 신문.
괘서는 비방이나 민심 선동을 위하여 공공장소에 몰래 붙이는 게시물이다. 벽서라고도 한다. 개인 사이의 사적인 고발에서부터 당파나 나라를 비방하고 민심을 동요시키기 위한 것까지 각종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대부분 작성자의 이름을 숨겼기 때문에 익명서로 간주했다. 수많은 사화·옥사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하였다. 조정에 대하여 불만과 불평을 가진 백성들에 의해서 민심의 선동 매체로 이용되었으며, 유언비어의 원천이 되었다. 대중매체가 없었던 시대에 정치적 현실을 널리 알리는 신문의 구실도 하였다.
괘서 (掛書)
괘서는 비방이나 민심 선동을 위하여 공공장소에 몰래 붙이는 게시물이다. 벽서라고도 한다. 개인 사이의 사적인 고발에서부터 당파나 나라를 비방하고 민심을 동요시키기 위한 것까지 각종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대부분 작성자의 이름을 숨겼기 때문에 익명서로 간주했다. 수많은 사화·옥사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하였다. 조정에 대하여 불만과 불평을 가진 백성들에 의해서 민심의 선동 매체로 이용되었으며, 유언비어의 원천이 되었다. 대중매체가 없었던 시대에 정치적 현실을 널리 알리는 신문의 구실도 하였다.
방문은 여러 사람에게 어떤 사항을 알리기 위하여 길거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써 붙이는 게시물이다. 공고문·공지문, 또는 포고문의 옛 이름으로 줄여서 ‘방’이라고도 한다. 조정의 관리를 대상으로 한 방문은 ‘조방’이라고 불렀다. 민간인들이 정치를 비방하거나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한 방을 ‘민방’, ‘익명방’이라고 했다. 서울이나 주요 읍성은 성문과 종루 등에, 군현 이하에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게시했다. 전시나 민란·혁명 등 사건이 발생한 유사시에 이용되었다. 근래에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에 따라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방문 (榜文)
방문은 여러 사람에게 어떤 사항을 알리기 위하여 길거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써 붙이는 게시물이다. 공고문·공지문, 또는 포고문의 옛 이름으로 줄여서 ‘방’이라고도 한다. 조정의 관리를 대상으로 한 방문은 ‘조방’이라고 불렀다. 민간인들이 정치를 비방하거나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한 방을 ‘민방’, ‘익명방’이라고 했다. 서울이나 주요 읍성은 성문과 종루 등에, 군현 이하에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게시했다. 전시나 민란·혁명 등 사건이 발생한 유사시에 이용되었다. 근래에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에 따라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천주교에서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1906년에 창간한 신문. 천주교신문.
경향신문 (京鄕新聞)
천주교에서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1906년에 창간한 신문. 천주교신문.
1949년에, 이봉혁이 『국제신문』을 인수하여 창간한 일간 신문.
국도신문 (國都新聞)
1949년에, 이봉혁이 『국제신문』을 인수하여 창간한 일간 신문.
1943년에, 조선 민족 혁명당 미주지부의 기관지로 창간한 신문.
독립 (獨立)
1943년에, 조선 민족 혁명당 미주지부의 기관지로 창간한 신문.
1913년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신한국보』를 개제하여 창간한 신문.
국민보 (國民報)
1913년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신한국보』를 개제하여 창간한 신문.
1965년에, 동아일보사에서 『동아일보』의 자매지로 창간한 어린이 일간 신문.
소년동아일보 (少年東亞日報)
1965년에, 동아일보사에서 『동아일보』의 자매지로 창간한 어린이 일간 신문.
1909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교민 단체인 국민회의 기관지로 창간한 신문.
신한민보 (新韓民報)
1909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교민 단체인 국민회의 기관지로 창간한 신문.
영기(營奇)는 조선시대, 각 도의 감영 등에서 발생한 일을 취사선택하여 알리던 제도이다. 순수한 우리말 ‘기별’에서 파생된 말로 서울 소식은 경기(京奇), 지방 소식은 영기라고 불렀다. 각 군현의 수령은 감영이나 병영·수영의 소재지에 영저리[영주인]을 파견하여 관찰사에게 여러 가지 업무를 보고하였으며 관찰사의 지휘 감독을 받았다. 영저리는 감영에서 소식을 수집하여 해당 군현의 수령들에게 보내주기도 하였다. 한문과 이두를 혼용하고 작성하였으며 부정기적으로 발행되었다. 지방지 성격의 필사 신문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 신문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영기 (營奇)
영기(營奇)는 조선시대, 각 도의 감영 등에서 발생한 일을 취사선택하여 알리던 제도이다. 순수한 우리말 ‘기별’에서 파생된 말로 서울 소식은 경기(京奇), 지방 소식은 영기라고 불렀다. 각 군현의 수령은 감영이나 병영·수영의 소재지에 영저리[영주인]을 파견하여 관찰사에게 여러 가지 업무를 보고하였으며 관찰사의 지휘 감독을 받았다. 영저리는 감영에서 소식을 수집하여 해당 군현의 수령들에게 보내주기도 하였다. 한문과 이두를 혼용하고 작성하였으며 부정기적으로 발행되었다. 지방지 성격의 필사 신문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 신문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언론의 보도로 인한 분쟁을 중재하고, 언론침해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
언론중재위원회 (言論仲裁委員會)
언론의 보도로 인한 분쟁을 중재하고, 언론침해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
1907년 자강회에서 발행한 하와이거주 한인단체의 기관 회보.
자신보 (自新報)
1907년 자강회에서 발행한 하와이거주 한인단체의 기관 회보.
1946년에, 좌익에 호의적인 논조로 군산에서 창간한 일간 신문.
전북신문 (全北新聞)
1946년에, 좌익에 호의적인 논조로 군산에서 창간한 일간 신문.
1946년에, 인천에서 손계언이 좌익에 호의적인 논조로 창간한 일간 신문.
인천신문 (仁川新聞)
1946년에, 인천에서 손계언이 좌익에 호의적인 논조로 창간한 일간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