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오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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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흥업은 자주적인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근대적인 산업 기반 시설과 공장‧광산의 설립, 상업적 농업의 확대를 추진했던 정부 정책과 민간의 경제 운동을 말한다. 대한제국은 러일전쟁 이전까지 궁내부 산하 내장원을 중심으로 도로·철도·전기 등 근대적인 산업 기반 시설의 자주적 건설, 제조공장 설립, 상업적 농업의 확대를 추진했으며, 기술학교를 설립했다. 통감부 설치 이후 정부의 독자적인 식산흥업정책 추진이 어렵게 되자, 이후 식산흥업운동은 자강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민간의 지주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제조업 투자와 기업 설립에 나섰다.
식산흥업 (殖産興業)
식산흥업은 자주적인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근대적인 산업 기반 시설과 공장‧광산의 설립, 상업적 농업의 확대를 추진했던 정부 정책과 민간의 경제 운동을 말한다. 대한제국은 러일전쟁 이전까지 궁내부 산하 내장원을 중심으로 도로·철도·전기 등 근대적인 산업 기반 시설의 자주적 건설, 제조공장 설립, 상업적 농업의 확대를 추진했으며, 기술학교를 설립했다. 통감부 설치 이후 정부의 독자적인 식산흥업정책 추진이 어렵게 되자, 이후 식산흥업운동은 자강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민간의 지주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제조업 투자와 기업 설립에 나섰다.
조병택은 한말 저포상(苧布商)으로 자본을 축적하여 초대 한일은행장과 경성상업회의소 회두를 역임한 실업가이다. 한말 조진태(趙鎭泰)·백완혁(白完爀) 등과 함께 재계 세 원로 중의 한 사람으로 불렸다. 1906년 설립된 한일은행(韓一銀行) 초대 은행장이었고, 1907부터 1910년까지 경성상업회의소 회두를 역임했다.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 중역, 한호농공은행 중역, 조선식산은행 상담역으로 활동했다.
조병택 (趙秉澤)
조병택은 한말 저포상(苧布商)으로 자본을 축적하여 초대 한일은행장과 경성상업회의소 회두를 역임한 실업가이다. 한말 조진태(趙鎭泰)·백완혁(白完爀) 등과 함께 재계 세 원로 중의 한 사람으로 불렸다. 1906년 설립된 한일은행(韓一銀行) 초대 은행장이었고, 1907부터 1910년까지 경성상업회의소 회두를 역임했다.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 중역, 한호농공은행 중역, 조선식산은행 상담역으로 활동했다.
신태화는 금은 세공 전문 수공업자 출신으로 신행상회(信行商會)를 남대문통에 설립하고, 이후 백화점의 대명사로 불린 화신상회(和信商會)를 창립하여 경영한 기업가이다. 1908년 김연학과 동업으로 신행상회를 설립하여 이후 금은 세공 업계를 제패했다. 1918년 3월경 동업을 해제했으며, 화신상회로 상호명을 고치고 서양식 2층 건물을 신축했다. 화신상회는 포목부를 두고 잡화도 취급하여 백화점으로 운영되었다. 1930년경 대공황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유동성 위기를 맞아 박흥식의 자금을 썼다가 결국 이를 갚지 못해 화신상회를 넘기게 되었다.
신태화 (申泰和)
신태화는 금은 세공 전문 수공업자 출신으로 신행상회(信行商會)를 남대문통에 설립하고, 이후 백화점의 대명사로 불린 화신상회(和信商會)를 창립하여 경영한 기업가이다. 1908년 김연학과 동업으로 신행상회를 설립하여 이후 금은 세공 업계를 제패했다. 1918년 3월경 동업을 해제했으며, 화신상회로 상호명을 고치고 서양식 2층 건물을 신축했다. 화신상회는 포목부를 두고 잡화도 취급하여 백화점으로 운영되었다. 1930년경 대공황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유동성 위기를 맞아 박흥식의 자금을 썼다가 결국 이를 갚지 못해 화신상회를 넘기게 되었다.
백인기는 일제강점기 한성농공은행 이사, 한일은행 전무,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로 활동한 기업가. 농업회사 합명회사 화성사를 설립, 경영한 대지주이다. 소유 재산의 대부분은 전주 아전 출신인 부친 백남신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한성공동창고회사와 한성농공은행 이사, 한일은행 전무,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로 활동했으며, 농업회사 합명회사화성사(華星社)를 설립한 지주였다. 경기도 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백인기 (白寅基)
백인기는 일제강점기 한성농공은행 이사, 한일은행 전무,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로 활동한 기업가. 농업회사 합명회사 화성사를 설립, 경영한 대지주이다. 소유 재산의 대부분은 전주 아전 출신인 부친 백남신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한성공동창고회사와 한성농공은행 이사, 한일은행 전무,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로 활동했으며, 농업회사 합명회사화성사(華星社)를 설립한 지주였다. 경기도 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윤치소는 한말, 일제 시기에 활동한 기업가이자 대지주로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인물이다. 윤치소는 경성직뉴주식회사 사장으로 활동한 기업가이자 충청남도 지역의 대지주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으며, 1938년 ‘전도보국(傳道報國)’을 기치로 내걸고 조직한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 1941년 조선기독교장로교 애국기헌납기성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윤치소 (尹致昭)
윤치소는 한말, 일제 시기에 활동한 기업가이자 대지주로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인물이다. 윤치소는 경성직뉴주식회사 사장으로 활동한 기업가이자 충청남도 지역의 대지주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으며, 1938년 ‘전도보국(傳道報國)’을 기치로 내걸고 조직한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 1941년 조선기독교장로교 애국기헌납기성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조선산업경제조사회는1936년 10월 20일부터 24일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에 응하여 조선의 산업 및 경제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이다.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자문 사항의 핵심은 일제의 중국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만주-농업, 조선-조공업(粗工業), 일본-정밀 공업’이라는 제국 경제권의 구상 속에 종래 식량 생산 기지로 비정했던 조선 경제를 군수 공업 지로 전환하기 위한 각종 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조선산업경제조사회 (朝鮮産業經濟調査會)
조선산업경제조사회는1936년 10월 20일부터 24일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에 응하여 조선의 산업 및 경제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이다.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자문 사항의 핵심은 일제의 중국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만주-농업, 조선-조공업(粗工業), 일본-정밀 공업’이라는 제국 경제권의 구상 속에 종래 식량 생산 기지로 비정했던 조선 경제를 군수 공업 지로 전환하기 위한 각종 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대한제국기 충청남도관찰사,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조정희 (趙定熙)
대한제국기 충청남도관찰사,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대한제국기 탁지부협판, 궁내부특진관,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관료.
조중목 (趙重穆)
대한제국기 탁지부협판, 궁내부특진관,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관료.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 전라도관찰사, 시강원첨사 등을 역임한 관료.
조한국 (趙漢國)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 전라도관찰사, 시강원첨사 등을 역임한 관료.
조선 후기에, 대사헌,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한경원 (韓敬源)
조선 후기에, 대사헌,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한계원 (韓啓源)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때, 대사성, 승정원동부승지,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한광수 (韓光洙)
개항기 때, 대사성, 승정원동부승지,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기 의정부찬정,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한기동 (韓耆東)
대한제국기 의정부찬정,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개항기 때, 공조판서, 형조판서, 부묘도감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한돈원 (韓敦源)
개항기 때, 공조판서, 형조판서, 부묘도감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의정부좌참찬,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한정교 (韓正敎)
조선 후기에, 의정부좌참찬,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