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윤치소는 한말, 일제 시기에 활동한 기업가이자 대지주로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인물이다. 윤치소는 경성직뉴주식회사 사장으로 활동한 기업가이자 충청남도 지역의 대지주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으며, 1938년 ‘전도보국(傳道報國)’을 기치로 내걸고 조직한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 1941년 조선기독교장로교 애국기헌납기성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정의
한말, 일제 시기에 활동한 기업가이자 대지주로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인물.
인적사항
주요 활동
윤치소의 기업 활동은 1909년부터 시작되었다. 1909년 양화(洋靴)를 제조하는 경성 혁신점(京城革新店)과 식자재 용달 업체인 가나다 상점을 경영했으며, 대한천일은행 감사를 역임했다. 1910년에는 농산물 매매・부동산 임대・금전 대부를 영업 내용으로 하는 광업 주식회사(廣業株式會社) 설립에 앞장서 초대 사장으로 활동했다. 해산 군인들이 조직한 대한공업회가 중심이 되어 1911년 설립한 분원 자기 공업 주식회사(汾院磁器工業株式會社) 감사로 활동했다. 직뉴조합에서 출발하여 합명회사로 재편되었다가 1911년 주식회사로 재조직된 경성직뉴주식회사(京城織紐株式會社)의 사장으로 경영을 주도했으며, 김성수에게 회사가 양도된 이후에는 감사로 활동했다.
윤치소는 1900년대 초 부친으로부터 토지를 물려받아 농업 경영에 나섰다. 1909년 일본인과 동업으로 평안북도 영변에서 농업 경영을 시도했다. 1911년 3월 농사 개량의 정책적 보급을 목적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가 주도한 농담회(農談會)의 찬성원(贊成員)이었다. 그는 농장 형태의 농업 경영을 전개하였다. 토지는 주로 아산을 중심으로 당진, 천안 등 충청남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고 이후 경기도와 강원도로 확대되었다. 농사 개량을 추진하기 위한 기구로 자신을 포함하여 소작인들로 구성된 ‘윤씨 농업조합’을 1917년에 조직하여 종자・종묘・비료・농구・기타 농업상 필요한 재료의 구입 자금을 빌려 주었다. 윤치소가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했던 시기는 1935년 무렵으로, 소유한 토지의 면적은 경지 1,182정보, 임야 217였다. 토지 매입 자금은 주로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으로부터 빌렸다.
윤치소는 사촌 형 윤치호의 영향을 받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기독교를 매개로 서양의 문물과 사고에 친화적이었고, 근대적 기업 창립에 일찍부터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1898년 사촌 형인 윤치호와 함께 『황성신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경성신문』을 창간하여 경영했는데, 지면이 손바닥 크기에 불과했으나 순한글판이었고 계급 타파・자유 평등을 주창하는 논조를 고수했다. 1908년 사립 중동학교(中東學校) 교장을 잠시 역임했다. 1909년경 대한협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920년 6월 20일과 26일에 한규설(韓圭卨)・이상재(李商在)・유근(柳瑾) 등이 조직한 조선교육협회(朝鮮敎育協會) 발기인 모임과 창립 총회가 윤치소의 별저(別邸)에서 개최되었으며, 이때 이사로 선출되었다. 1920년 12월 경성부 학교 평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24~1927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주임관 대우)를 역임했고, 1927년 일본 정부로부터 정(正) 7위에 서위(敍位)되었다. 1917~1944년 경성 안동교회 장로,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을 지냈다. ‘전도보국(傳道報國)’을 내걸고 1938년 5월 경성 거주 기독교인이 조직한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 1941년 조선기독교장로교 애국기헌납기성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참고문헌
단행본
- 오미일, 『(개정판) 근대 한국의 자본가들』(푸른역사, 2015)
- 김명구, 『해위 윤보선: 생애와 사상』(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 해평윤씨대동보간행위원회, 『海平尹氏大同譜』 3권(해평윤씨대동보간행위원회, 2005)
- 尹男慶, 『秘錄: 한국의 대통령』(조선일보사, 199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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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대한 제국 때에 둔 장관 계급의 하나. 부장(副將)의 다음으로 장관의 최하 계급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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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구한말에 둔, 법부(法部)의 으뜸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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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선 후기에 둔, 군부의 으뜸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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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시대에, 관원들의 임기가 찼거나 근무 성적이 좋은 경우 품계를 올려 주던 일. 또는 그 올린 품계. 왕의 즉위나 왕자의 탄생과 같은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 있거나, 반란을 평정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 주로 행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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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주로 가죽을 재료로 하여 만든 서양식 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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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어떤 행동이나 견해, 제안 따위가 옳거나 좋다고 판단하여 수긍하는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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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살림을 하는 집 외에 경치 좋은 곳에 따로 지어 놓고 때때로 묵으면서 쉬는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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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벼슬자리를 내려 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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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일정한 직무가 없는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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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한 스승 밑에서 함께 학문을 배우거나 수업을 받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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