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명미"
검색결과 총 17건
설손은 고려 후기 원나라에서 고려에 귀화한 유민이다. 본래 위구르 사람으로, 공민왕 대 원나라에서 고려로 온 귀화인이다. 원 순제 때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부친상을 당한 후 옮겨 살던 대령에서 홍건적의 공격을 받고 그를 피하여 고려로 와서 귀화하였다. 저작으로 『근사재일고(近思齋逸藁)』가 전한다.
설손 (偰遜)
설손은 고려 후기 원나라에서 고려에 귀화한 유민이다. 본래 위구르 사람으로, 공민왕 대 원나라에서 고려로 온 귀화인이다. 원 순제 때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부친상을 당한 후 옮겨 살던 대령에서 홍건적의 공격을 받고 그를 피하여 고려로 와서 귀화하였다. 저작으로 『근사재일고(近思齋逸藁)』가 전한다.
안평공주는 고려 후기 제25대 충렬왕의 왕비이다. 원 세조의 딸이며, 1274년(원종 15) 고려 왕실과 몽골 황실의 첫 통혼으로 고려에 왔다. 원 황제의 딸로서 정치적으로 위세를 떨쳤으며, 충렬왕의 측근 중심 정치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1297년(충렬왕 23)에 사망하였다. 제26대 충선왕이 그 아들이다.
안평공주 (安平公主)
안평공주는 고려 후기 제25대 충렬왕의 왕비이다. 원 세조의 딸이며, 1274년(원종 15) 고려 왕실과 몽골 황실의 첫 통혼으로 고려에 왔다. 원 황제의 딸로서 정치적으로 위세를 떨쳤으며, 충렬왕의 측근 중심 정치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1297년(충렬왕 23)에 사망하였다. 제26대 충선왕이 그 아들이다.
왕삼석은 고려 후기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이다. 고려 충숙왕 대에 활동한 남만 사람이다. 1320년대 초반 충숙왕이 원에 체재할 때의 인연으로 1325년(충숙왕 12) 귀국하는 왕을 따라 고려에 왔다. 의술에 능해 왕의 총애를 받았다.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바 있으며,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거나 형벌을 처리하는 등 방자하였다. 1330년(충숙왕 17)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삼석 (王三錫)
왕삼석은 고려 후기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이다. 고려 충숙왕 대에 활동한 남만 사람이다. 1320년대 초반 충숙왕이 원에 체재할 때의 인연으로 1325년(충숙왕 12) 귀국하는 왕을 따라 고려에 왔다. 의술에 능해 왕의 총애를 받았다.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바 있으며,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거나 형벌을 처리하는 등 방자하였다. 1330년(충숙왕 17)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전은 고려 후기 서흥후에 봉작된 왕족이다. 1301년(충렬왕 27) 원에 가서 숙위 생활을 시작하였다. 충렬왕과 충선왕 부자의 갈등 속에서 충렬왕 지지 세력에 의해 충선왕비 계국대장공주와의 결혼이 추진되었다. 1306년(충렬왕 32)까지 이어지던 왕 부자의 갈등은 1307년(충렬왕 33) 충선왕이 지지한 황족이 몽골 황제 위에 오르게 되면서 충선왕 측의 승리로 끝나고, 그에 동반한 공주 개가 추진은 실패로 돌아갔다. 왕전 또한 1307년 처형당하였다.
왕전 (王琠)
왕전은 고려 후기 서흥후에 봉작된 왕족이다. 1301년(충렬왕 27) 원에 가서 숙위 생활을 시작하였다. 충렬왕과 충선왕 부자의 갈등 속에서 충렬왕 지지 세력에 의해 충선왕비 계국대장공주와의 결혼이 추진되었다. 1306년(충렬왕 32)까지 이어지던 왕 부자의 갈등은 1307년(충렬왕 33) 충선왕이 지지한 황족이 몽골 황제 위에 오르게 되면서 충선왕 측의 승리로 끝나고, 그에 동반한 공주 개가 추진은 실패로 돌아갔다. 왕전 또한 1307년 처형당하였다.
장순룡은 고려 후기에 부지밀직, 첨의참리 등을 역임한 귀화인이다. 그는 제국대장공주의 사속인이다. 회회인으로, 공주를 따라 고려에 와서 귀화하여, 여러 벼슬을 거치며 원과의 외교에서 여러 역할을 하였다. 1281년(충렬왕 7) 원 황제의 칙명으로 선무장군 진변관군총관 정동행중서성도진무에 임명되었다.
장순룡 (張舜龍)
장순룡은 고려 후기에 부지밀직, 첨의참리 등을 역임한 귀화인이다. 그는 제국대장공주의 사속인이다. 회회인으로, 공주를 따라 고려에 와서 귀화하여, 여러 벼슬을 거치며 원과의 외교에서 여러 역할을 하였다. 1281년(충렬왕 7) 원 황제의 칙명으로 선무장군 진변관군총관 정동행중서성도진무에 임명되었다.
정비 안씨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왕비이다. 안극인(安克人)의 딸로, 1366년(공민왕 15) 정비에 책봉되었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 후 우왕이 퇴위할 때, 1389년(공양왕 원년)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울 때, 조선 태조가 즉위할 때 모두 대비의 자격으로 교서를 내렸다. 1389년 대비의 책봉호를 받고, 조선 건국 후 1392년(태조 1) 의화궁주로 봉해졌다. 1428년(세종 10) 사망하였다.
정비 안씨 (定妃 安氏)
정비 안씨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왕비이다. 안극인(安克人)의 딸로, 1366년(공민왕 15) 정비에 책봉되었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 후 우왕이 퇴위할 때, 1389년(공양왕 원년)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울 때, 조선 태조가 즉위할 때 모두 대비의 자격으로 교서를 내렸다. 1389년 대비의 책봉호를 받고, 조선 건국 후 1392년(태조 1) 의화궁주로 봉해졌다. 1428년(세종 10) 사망하였다.
조비는 고려 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왕비이다. 조인규의 딸로, 1292년(충렬왕 18) 세자비가 되었다. 왕의 총애로 계국대장공주의 투기를 받았으며, 그 어머니와 함께 계국대장공주와 충선왕이 불화하도록 저주했다는 무고사건에 휘말려 처벌받았다.
조비 (趙妃)
조비는 고려 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왕비이다. 조인규의 딸로, 1292년(충렬왕 18) 세자비가 되었다. 왕의 총애로 계국대장공주의 투기를 받았으며, 그 어머니와 함께 계국대장공주와 충선왕이 불화하도록 저주했다는 무고사건에 휘말려 처벌받았다.
조적은 고려 후기 제28대 충혜왕 때 심왕의 옹립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이다. 본래 역리 출신으로, 충렬왕 대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채하중 등과 함께 대표적인 심왕 세력으로, 충숙왕 대에는 심왕을 고려왕으로 세우기 위한 정치활동을 지속하였고, 충숙왕이 사망한 후 충혜왕의 경화공주 간음사건과 연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사망하였다.
조적 (曺頔)
조적은 고려 후기 제28대 충혜왕 때 심왕의 옹립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이다. 본래 역리 출신으로, 충렬왕 대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채하중 등과 함께 대표적인 심왕 세력으로, 충숙왕 대에는 심왕을 고려왕으로 세우기 위한 정치활동을 지속하였고, 충숙왕이 사망한 후 충혜왕의 경화공주 간음사건과 연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사망하였다.
최유는 고려 후기 원에서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옹립을 모의한 주모자이다.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충혜왕을 수행하여 원에 간 공으로 귀국 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원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사망했을 때 충정왕을 호종하여 그 즉위에 공이 있었다. 이후 포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다시 원으로 갔다. 기황후를 설득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1362년(공민왕 11) 주살되었다.
최유 (崔濡)
최유는 고려 후기 원에서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옹립을 모의한 주모자이다.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충혜왕을 수행하여 원에 간 공으로 귀국 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원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사망했을 때 충정왕을 호종하여 그 즉위에 공이 있었다. 이후 포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다시 원으로 갔다. 기황후를 설득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1362년(공민왕 11) 주살되었다.
충정왕은 고려 후기 제30대(재위: 1348~1351) 왕이다. 1348년(충목왕 4) 충목왕 사후, 다수 고려 신료들이 당시 원에 숙위 중이던 공민왕의 왕위 계승을 희망하였으나, 충정왕이 11세로 즉위하였다. 재위기간 중 안으로는 외척과 권신이 정권을 좌우하였고, 밖으로는 왜구가 크게 일어났다. 1351년(충정왕 3) 폐위되어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사망하였다.
충정왕 (忠定王)
충정왕은 고려 후기 제30대(재위: 1348~1351) 왕이다. 1348년(충목왕 4) 충목왕 사후, 다수 고려 신료들이 당시 원에 숙위 중이던 공민왕의 왕위 계승을 희망하였으나, 충정왕이 11세로 즉위하였다. 재위기간 중 안으로는 외척과 권신이 정권을 좌우하였고, 밖으로는 왜구가 크게 일어났다. 1351년(충정왕 3) 폐위되어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사망하였다.
홍군상은 고려 후기 원(元)에서 집현전대학사, 첨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고려인이다. 몽골과의 전쟁 당시 몽골에 투항하여 몽골의 동경총관을 지낸 홍복원의 아들로, 원나라에서 집현전대학사, 첨추밀원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원 세조 쿠빌라이 사후 원 조정에 건의해 일본원정 계획을 그만두게 한 일 등의 공을 인정받아 고려에서 공신호를 받기도 하였다.
홍군상 (洪君祥)
홍군상은 고려 후기 원(元)에서 집현전대학사, 첨추밀원사 등을 역임한 고려인이다. 몽골과의 전쟁 당시 몽골에 투항하여 몽골의 동경총관을 지낸 홍복원의 아들로, 원나라에서 집현전대학사, 첨추밀원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원 세조 쿠빌라이 사후 원 조정에 건의해 일본원정 계획을 그만두게 한 일 등의 공을 인정받아 고려에서 공신호를 받기도 하였다.
흥왕사의 변은 1363년(공민왕 12)에 김용이 공민왕을 시해하려고 흥왕사 행궁을 침범한 사건이다. 국왕의 총애를 둘러싼 공민왕 측근 세력 간의 알력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이를 계기로 공민왕의 측근 세력 다수가 살해되거나 제거되었다.
흥왕사의 변 (興王寺의 變)
흥왕사의 변은 1363년(공민왕 12)에 김용이 공민왕을 시해하려고 흥왕사 행궁을 침범한 사건이다. 국왕의 총애를 둘러싼 공민왕 측근 세력 간의 알력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이를 계기로 공민왕의 측근 세력 다수가 살해되거나 제거되었다.
이숙은 고려 후기 충렬왕 복위 후 충렬왕 측에서 활동한 고려 출신의 원 환관이다. 충렬왕이 복위한 후 충렬왕의 요청을 원측에 전하며 그 세력 회복에 기여함으로써 충렬왕의 총애를 받아, 벽상삼한정광 평창군에 봉하여졌다. 충선왕이 복위한 후에도 다른 환관들과 함께 봉군되었다.
이숙 (李淑)
이숙은 고려 후기 충렬왕 복위 후 충렬왕 측에서 활동한 고려 출신의 원 환관이다. 충렬왕이 복위한 후 충렬왕의 요청을 원측에 전하며 그 세력 회복에 기여함으로써 충렬왕의 총애를 받아, 벽상삼한정광 평창군에 봉하여졌다. 충선왕이 복위한 후에도 다른 환관들과 함께 봉군되었다.
경화공주는 고려 제27대 충숙왕의 왕비이다. 충숙왕이 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와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 사후에 그에 이어 세 번째로 맞이한 몽골공주 출신 왕비다. 충숙왕 사후 충혜왕에게 겁간을 당해 조적의 난이 발생하는 데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에 사망하였다.
경화공주 (慶華公主)
경화공주는 고려 제27대 충숙왕의 왕비이다. 충숙왕이 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와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 사후에 그에 이어 세 번째로 맞이한 몽골공주 출신 왕비다. 충숙왕 사후 충혜왕에게 겁간을 당해 조적의 난이 발생하는 데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에 사망하였다.
기황후는 고려 후기 몽골제국 제14대 카안 순제 토곤테무르의 황후이다. 고려 여성으로, 궁녀로 시작해서 제2황후를 거쳐 정후에 올랐으며, 그 아들이 황태자에 책봉되면서 세력을 강화하였다. 기철 등 그녀의 일족이 고려에서 득세하여 공민왕과 갈등하다가 주살되자, 원한을 품고 공민왕 폐위를 기도하기도 하였다.
기황후 (奇皇后)
기황후는 고려 후기 몽골제국 제14대 카안 순제 토곤테무르의 황후이다. 고려 여성으로, 궁녀로 시작해서 제2황후를 거쳐 정후에 올랐으며, 그 아들이 황태자에 책봉되면서 세력을 강화하였다. 기철 등 그녀의 일족이 고려에서 득세하여 공민왕과 갈등하다가 주살되자, 원한을 품고 공민왕 폐위를 기도하기도 하였다.
덕흥군은 고려 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셋째 아들인 왕자이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으로 도망해 있다가 1362년(공민왕 11) 원에서 공민왕을 폐위하고자 했을 때 그를 대신해 고려 국왕에 세워졌다. 고려 국왕에 오르기 위해 최유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군에 패하고 원으로 돌아갔다.
덕흥군 (德興君)
덕흥군은 고려 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셋째 아들인 왕자이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으로 도망해 있다가 1362년(공민왕 11) 원에서 공민왕을 폐위하고자 했을 때 그를 대신해 고려 국왕에 세워졌다. 고려 국왕에 오르기 위해 최유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군에 패하고 원으로 돌아갔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고 (蒙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