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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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남산 유적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 · 도랑 · 고인돌군 관련 복합유적이다. 청동기시대의 취락은 특이한 구조로 서남쪽 사면에 집터가 몰려 있다. 구릉 정상부에 있는 지상 건물지 외에 어떤 시설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서남쪽 사면에 굴착 이유를 알 수 없는 도랑 시설이 발견되었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거대한 규모로 축조된 환호 시설이다. 다른 유적에서 볼 수 없는 망루가 축조되고 의례용 물품이 제작되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당시 취락공동체들 사이에 중심적인 기능을 했던 취락으로 추정된다.
창원 남산 유적 (昌原 南山 遺蹟)
창원 남산 유적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 · 도랑 · 고인돌군 관련 복합유적이다. 청동기시대의 취락은 특이한 구조로 서남쪽 사면에 집터가 몰려 있다. 구릉 정상부에 있는 지상 건물지 외에 어떤 시설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서남쪽 사면에 굴착 이유를 알 수 없는 도랑 시설이 발견되었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거대한 규모로 축조된 환호 시설이다. 다른 유적에서 볼 수 없는 망루가 축조되고 의례용 물품이 제작되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당시 취락공동체들 사이에 중심적인 기능을 했던 취락으로 추정된다.
토기 뚜껑을 가진 항아리.
뚜껑 항아리 (뚜껑 缸아리)
토기 뚜껑을 가진 항아리.
제사토기는 제의의 과정에서 사용되거나 그것과 관련된 행위가 가해져 변형된 토기이다. 토기가 일상용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형태나 장식을 가진 경우, 혹은 제의의 장소에 공헌되거나 폐기된 토기의 경우 제사토기라 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 제사용으로 제작된 토기로는 눌러찍은무늬가 가득 장식된 대접이 있다. 원삼국시대가 되면 매장의례에 많은 토기가 공헌되고 부장용의 토기 종류도 늘어난다. 음식을 담는 그릇과 커다란 저장용기도 제사에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 매장시설을 밀봉할 때나 봉분의 성토를 하는 과정, 고분 완성하고 후에도 토기를 이용한 제사가 있었다.
제사토기 (祭祀土器)
제사토기는 제의의 과정에서 사용되거나 그것과 관련된 행위가 가해져 변형된 토기이다. 토기가 일상용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형태나 장식을 가진 경우, 혹은 제의의 장소에 공헌되거나 폐기된 토기의 경우 제사토기라 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 제사용으로 제작된 토기로는 눌러찍은무늬가 가득 장식된 대접이 있다. 원삼국시대가 되면 매장의례에 많은 토기가 공헌되고 부장용의 토기 종류도 늘어난다. 음식을 담는 그릇과 커다란 저장용기도 제사에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 매장시설을 밀봉할 때나 봉분의 성토를 하는 과정, 고분 완성하고 후에도 토기를 이용한 제사가 있었다.
둥근 몸통에 그릇 아가리가 짧고 직립한 형태로 부착된 항아리.
곧은 입 항아리 (곧은 입 缸아리)
둥근 몸통에 그릇 아가리가 짧고 직립한 형태로 부착된 항아리.
두들긴무늬토기는 초기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제작, 사용된 두들긴 무늬가 있는 토기이다. 타날문토기라고도 한다. 점토띠의 이음매를 단단하게 붙이거나 그릇의 벽을 곡면으로 만들기 위해 그릇 안쪽을 받침모루로 받치고 그릇 외면을 타날구로 두드려서 만든 토기이다. 전통적인 기술로 물레질법과 함께 토기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타날구에 새겨진 무늬에 따라 새끼무늬[繩文], 격자문(格子文), 평행두들긴무늬[平行打捺文]로 구분된다. 물레질만으로 토기를 성형하는 기술이 보급되자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두들긴무늬토기 (두들긴무늬土器)
두들긴무늬토기는 초기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제작, 사용된 두들긴 무늬가 있는 토기이다. 타날문토기라고도 한다. 점토띠의 이음매를 단단하게 붙이거나 그릇의 벽을 곡면으로 만들기 위해 그릇 안쪽을 받침모루로 받치고 그릇 외면을 타날구로 두드려서 만든 토기이다. 전통적인 기술로 물레질법과 함께 토기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타날구에 새겨진 무늬에 따라 새끼무늬[繩文], 격자문(格子文), 평행두들긴무늬[平行打捺文]로 구분된다. 물레질만으로 토기를 성형하는 기술이 보급되자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원삼국시대 후기 진·변한 지역에서 생산된 토기의 한 종류.
화로모양 토기 (火爐模樣 土器)
원삼국시대 후기 진·변한 지역에서 생산된 토기의 한 종류.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납작한 형태의 철제 유물.
미늘쇠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납작한 형태의 철제 유물.
봉분이나은 분구가 방추형 또는 방대형으로 축조된 무덤양식.
방형분 (方形墳)
봉분이나은 분구가 방추형 또는 방대형으로 축조된 무덤양식.
방형으로 에워싸는 주구를 돌리고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방형주구묘 (方形周構墓)
방형으로 에워싸는 주구를 돌리고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분구묘는 분구를 먼저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이다. 돌이나 흙으로 무덤의 외형을 구축하는 원리, 혹은 분구와 매장시설 관계의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부 이남의 서해안 일원에서 원삼국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6세기까지 유행했던 묘제이다. 축조 재료에 따라 돌무지분구묘, 성토분구묘, 이음돌분구묘로 나눌 수 있는데 성토분구묘가 성행하였다. 성토분구묘는 호서와 호남지방에서 축조되었는데 방형이나 원형의 저분구묘(低墳丘墓)로 발전하였다. 저분구묘는 분구를 덧붙이는 중대형의 분구묘와 대형 독널과 돌방이 복합되는 대형 분구묘로 발전하였다.
분구묘 (墳丘墓)
분구묘는 분구를 먼저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이다. 돌이나 흙으로 무덤의 외형을 구축하는 원리, 혹은 분구와 매장시설 관계의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부 이남의 서해안 일원에서 원삼국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6세기까지 유행했던 묘제이다. 축조 재료에 따라 돌무지분구묘, 성토분구묘, 이음돌분구묘로 나눌 수 있는데 성토분구묘가 성행하였다. 성토분구묘는 호서와 호남지방에서 축조되었는데 방형이나 원형의 저분구묘(低墳丘墓)로 발전하였다. 저분구묘는 분구를 덧붙이는 중대형의 분구묘와 대형 독널과 돌방이 복합되는 대형 분구묘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