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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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육각간(九十六角干)의 난(亂)은 768년(혜공왕 4) 7월에 대공이 일으킨 반란에 응하여 신라 왕도와 5도 주군의 96각간이 서로 싸웠다는 사건이다. 왕도를 33일 간 포위하여 신성과 장창이 불타는 등의 피해를 입혔으며, 전국적 진압에는 3개월이 소요되었다.
96각간의 난 (九十六角干의 亂)
구십육각간(九十六角干)의 난(亂)은 768년(혜공왕 4) 7월에 대공이 일으킨 반란에 응하여 신라 왕도와 5도 주군의 96각간이 서로 싸웠다는 사건이다. 왕도를 33일 간 포위하여 신성과 장창이 불타는 등의 피해를 입혔으며, 전국적 진압에는 3개월이 소요되었다.
금강은 655년(태종무열왕 2) 정월에 이찬의 관등으로서 상대등에 임명되었다가, 5년 뒤인 660년(태종무열왕 7) 1월에 사망한 삼국시대 신라의 관리이다. 행적 관련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660년(태종무열왕 7년) 정월에 사망하였다.
금강 (金剛)
금강은 655년(태종무열왕 2) 정월에 이찬의 관등으로서 상대등에 임명되었다가, 5년 뒤인 660년(태종무열왕 7) 1월에 사망한 삼국시대 신라의 관리이다. 행적 관련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660년(태종무열왕 7년) 정월에 사망하였다.
길나는 백제 의자왕이 항복한 뒤 660년 9월 3일 낭장 유인원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의 잔여 세력으로부터 사비성을 지킬 때 왕자 인태 및 사찬 일원과 함께 7천 명의 군사를 통솔하여 보좌한 장수이다. 당시 관등은 급찬이었다.
길나 (吉那)
길나는 백제 의자왕이 항복한 뒤 660년 9월 3일 낭장 유인원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의 잔여 세력으로부터 사비성을 지킬 때 왕자 인태 및 사찬 일원과 함께 7천 명의 군사를 통솔하여 보좌한 장수이다. 당시 관등은 급찬이었다.
김서현은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관 및 장군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신라에 투항한 금관국왕의 후손으로서 신라 왕실 인물인 숙흘종의 딸 만명과 혼인하여 김유신을 낳았다. 김서현의 딸 문희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혼인하여 문명왕후가 되었다.
김서현 (金舒玄)
김서현은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관 및 장군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신라에 투항한 금관국왕의 후손으로서 신라 왕실 인물인 숙흘종의 딸 만명과 혼인하여 김유신을 낳았다. 김서현의 딸 문희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혼인하여 문명왕후가 되었다.
김순은 통일신라 혜공왕 때 이찬으로서 시중에 임명된 관리이다. 775년 정문(正門)을 이어 시중이 되어 777년까지 시중으로 재임하였다. 김순의 전임자 정문과 정문의 전임자인 김은거는 모두 반란에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김순 (金順)
김순은 통일신라 혜공왕 때 이찬으로서 시중에 임명된 관리이다. 775년 정문(正門)을 이어 시중이 되어 777년까지 시중으로 재임하였다. 김순의 전임자 정문과 정문의 전임자인 김은거는 모두 반란에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김순정은 통일신라 경덕왕의 선비(先妃) 삼모부인의 아버지이다. 혜공왕대 집정자였던 김옹(金邕)이 김순정의 손자 혹은 아들이다. 김순정 가문은 상재(上宰) 혹은 상상(上相)의 지위를 이어받으며 신라 정계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며, 친일본적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다.
김순정 (金順貞)
김순정은 통일신라 경덕왕의 선비(先妃) 삼모부인의 아버지이다. 혜공왕대 집정자였던 김옹(金邕)이 김순정의 손자 혹은 아들이다. 김순정 가문은 상재(上宰) 혹은 상상(上相)의 지위를 이어받으며 신라 정계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며, 친일본적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다.
김용춘은 신라 중고기의 왕족으로서, 진지왕의 아들이자 태종무열왕의 아버지이다. 용수라고도 불렸으며, 사후 문흥대왕으로 추봉되었다. 내성 사신을 역임하고 고구려 낭비성 공격에서 활약하였으며, 황룡사구층목탑의 건립을 주관하였다.
김용춘 (金龍春)
김용춘은 신라 중고기의 왕족으로서, 진지왕의 아들이자 태종무열왕의 아버지이다. 용수라고도 불렸으며, 사후 문흥대왕으로 추봉되었다. 내성 사신을 역임하고 고구려 낭비성 공격에서 활약하였으며, 황룡사구층목탑의 건립을 주관하였다.
김윤중은 신라 중대에 중시(中侍)와 장군으로 활동한 김유신의 적손(嫡孫)이다. 윤충(允忠)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성덕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소원한 신하라는 이유로 질투하는 종실척리(宗室戚里)들이 있었다. 당나라에 의해 지목되어 발해 공격에 참여하였다.
김윤중 (金允中)
김윤중은 신라 중대에 중시(中侍)와 장군으로 활동한 김유신의 적손(嫡孫)이다. 윤충(允忠)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성덕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소원한 신하라는 이유로 질투하는 종실척리(宗室戚里)들이 있었다. 당나라에 의해 지목되어 발해 공격에 참여하였다.
김지정(金志貞)의 난(亂)은 780년(혜공왕 16) 2월에 이찬 김지정이 일으킨 반란이다. 궁궐을 포위하였다가 같은 해 4월 상대등 김양상과 이찬 김경신의 군대에 패배하여 처형되었다. 와중에 혜공왕과 왕비가 살해되었다. 진압을 주도한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하면서 중대가 끝나고 하대가 시작된다.
김지정의 난 (金志貞의 亂)
김지정(金志貞)의 난(亂)은 780년(혜공왕 16) 2월에 이찬 김지정이 일으킨 반란이다. 궁궐을 포위하였다가 같은 해 4월 상대등 김양상과 이찬 김경신의 군대에 패배하여 처형되었다. 와중에 혜공왕과 왕비가 살해되었다. 진압을 주도한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하면서 중대가 끝나고 하대가 시작된다.
대공(大恭)의 난(亂)은 768년(혜공왕 4) 7월에 일길찬 대공이 동생인 아찬 대렴과 함께 일으킨 반란이다. 33일 동안 왕궁을 포위하였다가 왕군에 의해 토벌되어 구족이 처형되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혜공왕 대 반란의 출발점이 된다.
대공의 난 (大恭의 亂)
대공(大恭)의 난(亂)은 768년(혜공왕 4) 7월에 일길찬 대공이 동생인 아찬 대렴과 함께 일으킨 반란이다. 33일 동안 왕궁을 포위하였다가 왕군에 의해 토벌되어 구족이 처형되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혜공왕 대 반란의 출발점이 된다.
대등(大等)은 신라 중고기(中古期)를 중심으로 확인되는 신료 집단에 대한 칭호이다. 진흥왕 대 여러 금석문에서 그 존재가 나타나며, 당시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등, 전대등, 사대등(仕大等) 등은 대등으로부터 분화된 관직명이다.
대등 (大等)
대등(大等)은 신라 중고기(中古期)를 중심으로 확인되는 신료 집단에 대한 칭호이다. 진흥왕 대 여러 금석문에서 그 존재가 나타나며, 당시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등, 전대등, 사대등(仕大等) 등은 대등으로부터 분화된 관직명이다.
대문은 보덕국왕 안승이 신라 왕경으로 떠난 뒤 남아 있다가 684년 반란 모의 발각으로 처형된 고구려 유민이다. 대문의 죽음을 목격한 보덕성민들은 관리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진압 이후 보덕성민들은 남쪽 주군으로 사민된다.
대문 (大文)
대문은 보덕국왕 안승이 신라 왕경으로 떠난 뒤 남아 있다가 684년 반란 모의 발각으로 처형된 고구려 유민이다. 대문의 죽음을 목격한 보덕성민들은 관리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진압 이후 보덕성민들은 남쪽 주군으로 사민된다.
대정은 통일신라 경덕왕대 이찬으로 중시에 임명되었던 관리이다. 이름의 유사성과 활동 시기를 근거로 경주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과 같은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복사의 표훈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바 있다. 표훈은 김대성 및 불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 대정과 김대성은 동일인일 것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대정 (大正)
대정은 통일신라 경덕왕대 이찬으로 중시에 임명되었던 관리이다. 이름의 유사성과 활동 시기를 근거로 경주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과 같은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복사의 표훈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바 있다. 표훈은 김대성 및 불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 대정과 김대성은 동일인일 것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만월부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경덕왕의 후비로서 혜공왕의 어머니이며, 김의충의 딸이다. 선비 삼모부인이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출궁되자, 734년에 후비로 들어갔다. 765년 혜공왕이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8세로 어려 만월부인이 태후로서 섭정하였다.
만월부인 (滿月夫人)
만월부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경덕왕의 후비로서 혜공왕의 어머니이며, 김의충의 딸이다. 선비 삼모부인이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출궁되자, 734년에 후비로 들어갔다. 765년 혜공왕이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8세로 어려 만월부인이 태후로서 섭정하였다.
중사(中使)는 삼국시대, 신라 하대 금석문에서 국왕과 승려 사이의 교류를 중개하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사인(使人) 관직이다. 중국에서 주로 환관(宦官)이 임명되어, 환관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신라의 경우도 중사의 역할을 맡은 환관들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있다.
중사 (中使)
중사(中使)는 삼국시대, 신라 하대 금석문에서 국왕과 승려 사이의 교류를 중개하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사인(使人) 관직이다. 중국에서 주로 환관(宦官)이 임명되어, 환관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신라의 경우도 중사의 역할을 맡은 환관들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있다.
경북대학교 박물관은 대구광역시 북구 대학로에 있는 경북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대구·경북지역의 유물을 수집·보존·관리·전시함으로써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역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9년 도서관 건물의 일부를 빌려 개관하여 2011년 전시실, 시청각실, 보존처리실을 갖춘 독립건물이 되었다. 선사시대 자료부터 최근 민속자료까지 약 7,000여 점의 수집품과 40,000여 점의 발굴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가지정유산인 보물 7점이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전통문화에 대한 학술조사·연구·전시, 사회교육시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박물관 (慶北大學校 博物館)
경북대학교 박물관은 대구광역시 북구 대학로에 있는 경북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대구·경북지역의 유물을 수집·보존·관리·전시함으로써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역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9년 도서관 건물의 일부를 빌려 개관하여 2011년 전시실, 시청각실, 보존처리실을 갖춘 독립건물이 되었다. 선사시대 자료부터 최근 민속자료까지 약 7,000여 점의 수집품과 40,000여 점의 발굴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가지정유산인 보물 7점이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전통문화에 대한 학술조사·연구·전시, 사회교육시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