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大正)은 이름의 유사성과 활동 시기를 통하여 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를 창건한 김대성(金大城)과 동일인이라는 추정이 제기된 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표훈(表訓)이 황복사(皇福寺)에 있을 때 대정(大正) 각간(角干)이 삼본정(三本定)의 가르침을 청하여 배웠다는 내용이 균여(均如)의 『 십구장원통기(十句章圓通記)』에 기록되어 있다. 표훈은 김대성이 불국사 창건 후 초청하여 주석(駐錫)하게 한 승려로서 김대성 및 불국사와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대정 각간이 곧 김대성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고려 현종 15년(1024)에 불국사 무구정광탑을 중수하면서 남긴 기록인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佛國寺無垢淨光塔重修記)」도 경덕왕 때 상공(相公) 대성(大城)의 관등이 각간이었다고 하여 그 가능성을 높여준다.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과 동일 인물로 볼 경우, 『삼국유사』에 인용된 「향전(鄕典)」의 설화에서 후생(後生)의 아버지가 재상 김문량(金文亮)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706년(성덕왕 5)에 중시(中侍)에 임명되었다가 711년(성덕왕 10) 사망한 문량(文良)으로 간주하는 견해가 있다. 단, 「향전」의 설화는 김문량이 신문왕 때의 재상으로 되어 있어 시기상 다소 차이가 난다.
745년(경덕왕 4) 5월에 중시 유정(惟正)이 물러나자 대정은 이찬(伊湌)의 관등으로 중시에 임명되었다가, 750년(경덕왕 9) 정월에 물러났다. 후임 시중은 이찬 조량(朝良)이었다. 재임 중이던 747년(경덕왕 6) 정월에 관직명 중시가 시중(侍中)으로 개칭되었다.
아울러 사정부(司正府) · 소년감전(少年監典) · 예궁전(穢宮典) 등 관부의 설치 혹은 개칭(改稱), 국학(國學)의 개편과 박사(博士) · 조교(助敎) 설치, 관리들의 감찰을 담당한 정찰(貞察)의 설치, 천문박사(天文博士) · 누각박사(漏刻博士) 설치 등 관제의 개편 작업이 대정의 재임 기간에 이루어졌다. 김대성과 동일인임을 인정할 경우, 경덕왕 때 불국사 창건 공사를 시작하여 진행하다가 774년(혜공왕 10)에 사망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