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희인"
검색결과 총 24건
김자수 선생 묘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김자수의 무덤이다. 조선이 건국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가 태종이 형조판서 직을 내리자 한양으로 향하다가 광주 추령에서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묘역은 전반적으로 후대에 정비되어 조성 당시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말 문신 김자수의 생애와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김자수 선생 묘 (金自粹 先生 墓)
김자수 선생 묘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김자수의 무덤이다. 조선이 건국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가 태종이 형조판서 직을 내리자 한양으로 향하다가 광주 추령에서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묘역은 전반적으로 후대에 정비되어 조성 당시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말 문신 김자수의 생애와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서희 장군 묘는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정치가·외교가 서희의 무덤이다. 개경 개국사에서 세상을 떠난 서희의 무덤이 이곳에 조성된 경위는 분명치 않다. 둘레석이 설치된 장방형 봉분과 3단으로 조성된 묘역 구조 등 고려시대 묘제의 모습이 남아 있다. 고려초 외침 극복에 큰 공헌을 한 서희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서희 장군 묘 (徐熙 將軍 墓)
서희 장군 묘는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정치가·외교가 서희의 무덤이다. 개경 개국사에서 세상을 떠난 서희의 무덤이 이곳에 조성된 경위는 분명치 않다. 둘레석이 설치된 장방형 봉분과 3단으로 조성된 묘역 구조 등 고려시대 묘제의 모습이 남아 있다. 고려초 외침 극복에 큰 공헌을 한 서희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용덕궁은 북한 평양직할시 금수산 을밀대 남쪽으로 비정되는 고려 전기 제16대 예종 연간에 건립된 궁궐이다. 예종 초에 용덕궁 조영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였고 1116년(예종 11) 4월 예종의 서경 순행에 즈음하여 궁궐이 완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용덕궁의 영건은 고구려 계승의식을 환기하고 고구려의 옛 영토에 대한 영유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
용덕궁 (龍德宮)
용덕궁은 북한 평양직할시 금수산 을밀대 남쪽으로 비정되는 고려 전기 제16대 예종 연간에 건립된 궁궐이다. 예종 초에 용덕궁 조영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였고 1116년(예종 11) 4월 예종의 서경 순행에 즈음하여 궁궐이 완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용덕궁의 영건은 고구려 계승의식을 환기하고 고구려의 옛 영토에 대한 영유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
연담공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곽예의 무덤이다. 연담공 묘소는 봉분과 묘역 구조, 석물 등이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 후기 시문에 능하고 당대의 명필로도 이름 높았던 곽예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연담공묘소 (蓮潭公墓所)
연담공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곽예의 무덤이다. 연담공 묘소는 봉분과 묘역 구조, 석물 등이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 후기 시문에 능하고 당대의 명필로도 이름 높았던 곽예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이색 선생 묘 일원은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에 있는 고려시대 문신·학자 이색의 무덤이다. 여주에서 사망한 뒤 셋째 아들이 이곳으로 모셔와 장사지냈다. 봉분과 묘역 구조와 석물 등이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후기 대학자 이색의 생애를 살펴 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이색 선생 묘 일원 (李穡 先生 墓 一圓)
이색 선생 묘 일원은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에 있는 고려시대 문신·학자 이색의 무덤이다. 여주에서 사망한 뒤 셋째 아들이 이곳으로 모셔와 장사지냈다. 봉분과 묘역 구조와 석물 등이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후기 대학자 이색의 생애를 살펴 볼 수 있는 유적이다.
정몽주 선생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학자 정몽주의 무덤이다. 순절한 뒤 개성 풍덕군에 묘를 썼다가,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하던 중 그 행렬이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렀을 때, 명정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 묘소의 위치에 떨어져 상여가 움직이지 않자 이곳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후대의 정비로 원형을 많이 잃었으나 정몽주의 충절과 절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정몽주 선생 묘 (鄭夢周 先生 墓)
정몽주 선생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학자 정몽주의 무덤이다. 순절한 뒤 개성 풍덕군에 묘를 썼다가,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하던 중 그 행렬이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렀을 때, 명정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 묘소의 위치에 떨어져 상여가 움직이지 않자 이곳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후대의 정비로 원형을 많이 잃었으나 정몽주의 충절과 절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함안 월촌리 야철지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고려시대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제철유적이다. 시굴 조사 결과 조사지역에서 제철 행위가 이루어졌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다량의 슬래그가 출토되어 조사지역 인근에서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사 사례가 많지 않은 고려시대 철 생산지 자료로서 함안 지역은 물론 중세 제철 관련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함안 월촌리 야철지 (咸安 月村里 冶鐵址)
함안 월촌리 야철지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고려시대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제철유적이다. 시굴 조사 결과 조사지역에서 제철 행위가 이루어졌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다량의 슬래그가 출토되어 조사지역 인근에서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사 사례가 많지 않은 고려시대 철 생산지 자료로서 함안 지역은 물론 중세 제철 관련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강화 광성보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조선 후기 군사 진보이다. 조선 효종~숙종 연간에 강화도 해안을 따라 설치된 군사 진보 가운데 하나로 1658년(효종 9) 신설되었다. 별장의 지휘 아래 광성돈대 등 2~3개의 돈대를 관할하였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당시 최대 격전지로 미군의 상륙 부대와의 전투에서 지휘관인 중군 어재연과 조선군 수비대 대부분이 전사한 역사적 현장이다.
강화 광성보 (江華 廣城堡)
강화 광성보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조선 후기 군사 진보이다. 조선 효종~숙종 연간에 강화도 해안을 따라 설치된 군사 진보 가운데 하나로 1658년(효종 9) 신설되었다. 별장의 지휘 아래 광성돈대 등 2~3개의 돈대를 관할하였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당시 최대 격전지로 미군의 상륙 부대와의 전투에서 지휘관인 중군 어재연과 조선군 수비대 대부분이 전사한 역사적 현장이다.
교동읍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에 있는 조선 후기 읍성이자 수영성(水營城)이다. 1629년(인조 7)에 경기 수영이 남양에서 교동으로 이설되면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영성과 일반 읍성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성으로 조선 후기 강화와 교동의 역사적 전개 양상 및 도성 방어 체계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교동읍성 (喬桐邑城)
교동읍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에 있는 조선 후기 읍성이자 수영성(水營城)이다. 1629년(인조 7)에 경기 수영이 남양에서 교동으로 이설되면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영성과 일반 읍성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성으로 조선 후기 강화와 교동의 역사적 전개 양상 및 도성 방어 체계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수군진이다. 선조 연간에 경기도 강화에 설치되었고 1666년(현종 7) 통진으로 이전 설치되었다. 이 수군진은 바다를 통해 강화도와 도성으로 진입하는 외적을 통제하던 수군 기지 가운데 하나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미군 함대에 포격을 가하여 미군의 북상을 저지한 곳이다.
김포 덕포진 (金浦 德浦鎭)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수군진이다. 선조 연간에 경기도 강화에 설치되었고 1666년(현종 7) 통진으로 이전 설치되었다. 이 수군진은 바다를 통해 강화도와 도성으로 진입하는 외적을 통제하던 수군 기지 가운데 하나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미군 함대에 포격을 가하여 미군의 북상을 저지한 곳이다.
문수산성은 경기도 김포시 문수산에 있는 조선 후기 산성이다. 1694년(숙종 20)에 왕실 보장처 강화도의 방비를 위해 쌓았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문수산 정상부에서는 삼국~통일신라시대에 쌓이고 운영된 성벽이 발굴되어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곳이 군사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문수산성 (文殊山城)
문수산성은 경기도 김포시 문수산에 있는 조선 후기 산성이다. 1694년(숙종 20)에 왕실 보장처 강화도의 방비를 위해 쌓았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문수산 정상부에서는 삼국~통일신라시대에 쌓이고 운영된 성벽이 발굴되어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곳이 군사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강화 삼랑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정족산에 있는 산성이다.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산성이 언제 쌓아졌는지는 분명치 않은데 강화 천도기 성 안에 가궐(假闕)을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3세기에는 산성이 축조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둘레 약 2.3km인 삼랑성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성벽과 문루를 고쳐 쌓았고, 성내에 실록을 보관하였던 사고(史庫)가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군이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승전을 거둔 역사적 현장이다.
강화 삼랑성 (江華 三郞城)
강화 삼랑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정족산에 있는 산성이다.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산성이 언제 쌓아졌는지는 분명치 않은데 강화 천도기 성 안에 가궐(假闕)을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3세기에는 산성이 축조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둘레 약 2.3km인 삼랑성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성벽과 문루를 고쳐 쌓았고, 성내에 실록을 보관하였던 사고(史庫)가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군이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승전을 거둔 역사적 현장이다.
영월 법흥사 석분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강원도 영월군 법흥사에 있는 돌방[石室] 유적이다. 원형의 봉토 아래에 장방형의 돌방이 조성된 돌방무덤의 형태이다. 통일신라시대 말의 고승인 징효대사와 연관된 돌방무덤이나 승려가 수행하였던 토굴과 같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영월 법흥사 석분 (寧越 法興寺 石墳)
영월 법흥사 석분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강원도 영월군 법흥사에 있는 돌방[石室] 유적이다. 원형의 봉토 아래에 장방형의 돌방이 조성된 돌방무덤의 형태이다. 통일신라시대 말의 고승인 징효대사와 연관된 돌방무덤이나 승려가 수행하였던 토굴과 같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숭겸장군유적은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을 기리는 유적이다.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대신해 전사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을 기리기 위해 왕건이 공이 숨진 자리에 지묘사와 순절단을 세워 명복을 빌었다. 조선 후기 때 후손들이 신숭겸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옛 절터에 표충사를 세우고 단을 중건하여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
신숭겸 장군 유적 (申崇謙 將軍 遺蹟)
신숭겸장군유적은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을 기리는 유적이다.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대신해 전사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을 기리기 위해 왕건이 공이 숨진 자리에 지묘사와 순절단을 세워 명복을 빌었다. 조선 후기 때 후손들이 신숭겸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옛 절터에 표충사를 세우고 단을 중건하여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
신장절공묘역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의 묘이다.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대신해 전사하자, 시신을 공이 거주하던 춘천에 안장하였다. 후백제군이 신숭겸의 머리를 잘라 돌아가자 왕건이 공의 두상을 만들게 하여 매장하였는데, 두상이 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신숭겸의 충절과 절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신장절공 묘역 (申壯節公 墓域)
신장절공묘역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의 묘이다.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대신해 전사하자, 시신을 공이 거주하던 춘천에 안장하였다. 후백제군이 신숭겸의 머리를 잘라 돌아가자 왕건이 공의 두상을 만들게 하여 매장하였는데, 두상이 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신숭겸의 충절과 절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영동김자수유적'은 충청북도 영동군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김자수의 손자 김영년의 세거(世居) 유적이다. 김자수가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켜 조선 건국 후 관직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자결한 후, 김영년이 영동으로 이주하여 지내면서 후학을 양성한 곳이다. 김자수의 충절과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영동 김자수 유적 (永同 金自粹 遺蹟)
'영동김자수유적'은 충청북도 영동군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김자수의 손자 김영년의 세거(世居) 유적이다. 김자수가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켜 조선 건국 후 관직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자결한 후, 김영년이 영동으로 이주하여 지내면서 후학을 양성한 곳이다. 김자수의 충절과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위열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의 묘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김취려의 무덤이다. 김취려의 묘지명에는 강화 진강산 서쪽에 묘가 있다고 전하는데, 울산에 묘소가 조성된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울산과 강화 묘소 모두 김취려의 무덤으로 인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위일공 김취려의 묘는 거란 침입을 격퇴한 김취려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위열공 김취려의 묘 (威烈公 金就礪의 墓)
위열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의 묘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김취려의 무덤이다. 김취려의 묘지명에는 강화 진강산 서쪽에 묘가 있다고 전하는데, 울산에 묘소가 조성된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울산과 강화 묘소 모두 김취려의 무덤으로 인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위일공 김취려의 묘는 거란 침입을 격퇴한 김취려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윤관장군묘(尹瓘將軍墓)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이자 장군인 윤관의 무덤이다. 오랫동안 소재가 확인되지 않다가 1764년(영조 40)에 현 묘소 부근에서 묘비 조각이 발견되면서 윤관의 무덤으로 공인되었다. 청송심씨 가문과 묘지 소유에 대한 오랜 다툼이 있었다. 윤관장군묘는 본래 임진강 이북 임강현에 있었으나 후대에 경기도 파주로 이장 또는 새로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윤관 장군 묘 (尹瓘 將軍 墓)
윤관장군묘(尹瓘將軍墓)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이자 장군인 윤관의 무덤이다. 오랫동안 소재가 확인되지 않다가 1764년(영조 40)에 현 묘소 부근에서 묘비 조각이 발견되면서 윤관의 무덤으로 공인되었다. 청송심씨 가문과 묘지 소유에 대한 오랜 다툼이 있었다. 윤관장군묘는 본래 임진강 이북 임강현에 있었으나 후대에 경기도 파주로 이장 또는 새로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규보선생묘(李奎報先生墓)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문장가인 이규보의 무덤이다. 이규보는 천도와 함께 강화에 옮겨 와 살다가 1241년(고종 28) 9월 74세로 사망한 뒤 진강산 동쪽 기슭에 묻혔다. 봉분과 석물, 묘역의 형태는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으나, 이규보의 생애와 강도 시기 강화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이규보 선생 묘 (李奎報 先生 墓)
이규보선생묘(李奎報先生墓)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문장가인 이규보의 무덤이다. 이규보는 천도와 함께 강화에 옮겨 와 살다가 1241년(고종 28) 9월 74세로 사망한 뒤 진강산 동쪽 기슭에 묻혔다. 봉분과 석물, 묘역의 형태는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으나, 이규보의 생애와 강도 시기 강화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이방실장군묘(李芳實將軍墓)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이방실의 무덤이다. 이방실은 고려 후기 2차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한 공로로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으나, 이른바 ‘삼원수(三元帥) 살해 사건’ 당시 죽임을 당하고 이곳에 안장되었다. 묘역은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 후기 무신 이방실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이방실 장군 묘 (李芳實 將軍 墓)
이방실장군묘(李芳實將軍墓)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이방실의 무덤이다. 이방실은 고려 후기 2차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한 공로로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으나, 이른바 ‘삼원수(三元帥) 살해 사건’ 당시 죽임을 당하고 이곳에 안장되었다. 묘역은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 후기 무신 이방실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