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장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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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천동 도시 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통일신라의 도시터이다. 북천의 소금강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경주의 북쪽으로, 도시가 황룡사와 월성이 위치한 중심부에서 점차 외곽으로 확장된 사실을 보여준다. 유구는 7세기 후반경에 조성된 동-서도로, 수혈, 기단석열, 청동공방지 등과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문지시설, 배수시설, 우물 등이 있다. 이 유적에서 중요한 점은 도로를 포함한 우물, 청동공방지, 건물지 등이 함께 조성됐다는 것으로 왕경의 외곽은 중심부와는 다르게 생산 시설들이 다수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왕경을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경주 동천동 도시 유적 (慶州 東川洞 都市 遺蹟)
경주 동천동 도시 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통일신라의 도시터이다. 북천의 소금강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경주의 북쪽으로, 도시가 황룡사와 월성이 위치한 중심부에서 점차 외곽으로 확장된 사실을 보여준다. 유구는 7세기 후반경에 조성된 동-서도로, 수혈, 기단석열, 청동공방지 등과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문지시설, 배수시설, 우물 등이 있다. 이 유적에서 중요한 점은 도로를 포함한 우물, 청동공방지, 건물지 등이 함께 조성됐다는 것으로 왕경의 외곽은 중심부와는 다르게 생산 시설들이 다수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왕경을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경산 북사리 고분은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 있는 삼국시대 경산지역 지배층의 암반굴착덧널무덤이다. 고분이 축조된 시기는 대체로 삼국시대인 5~6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고분은 총 3기가 발견되었는데 모두 암반을 굴착하고 내부에 목곽시설을 설치한 암광목곽묘이다. 1·3호분은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인 부곽과 피장자를 안치하는 공간인 주곽을 별도로 설치한 구조이다. 이 지역에서 이보다 이른 시기의 무덤인 목관묘 및 목곽묘(木槨墓)는 아직까지 조사 보고된 예가 없다. 이 고분은 규모나 출토유물의 질과 양으로 볼 때 이 지역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경산 북사리 고분 (慶山 北四里 古墳)
경산 북사리 고분은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 있는 삼국시대 경산지역 지배층의 암반굴착덧널무덤이다. 고분이 축조된 시기는 대체로 삼국시대인 5~6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고분은 총 3기가 발견되었는데 모두 암반을 굴착하고 내부에 목곽시설을 설치한 암광목곽묘이다. 1·3호분은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인 부곽과 피장자를 안치하는 공간인 주곽을 별도로 설치한 구조이다. 이 지역에서 이보다 이른 시기의 무덤인 목관묘 및 목곽묘(木槨墓)는 아직까지 조사 보고된 예가 없다. 이 고분은 규모나 출토유물의 질과 양으로 볼 때 이 지역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경산 신상리 유적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무지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복합유적이다. 1986년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후 2003년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에 따른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고분들과 조선시대 생활유적 일부가 조사되었다. 이 유적의 고분들은 5~6세기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경주지역 중심묘제인 적석목곽묘 형태가 많다. 이는 이 지역에서 경주지역의 장송의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이곳의 고분은 규모나 출토유물로 볼 때 이 일대를 다스린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경산 신상리 유적 (慶山 新上里 遺蹟)
경산 신상리 유적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무지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복합유적이다. 1986년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후 2003년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에 따른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고분들과 조선시대 생활유적 일부가 조사되었다. 이 유적의 고분들은 5~6세기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경주지역 중심묘제인 적석목곽묘 형태가 많다. 이는 이 지역에서 경주지역의 장송의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이곳의 고분은 규모나 출토유물로 볼 때 이 일대를 다스린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널무덤·화장무덤 관련 생활유적.
경산 옥곡동 유적 (慶山 玉谷洞 遺蹟)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널무덤·화장무덤 관련 생활유적.
경산 임당동 토성은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 지배 정책과 관련된 성곽이다. 타원형 또는 땅콩 껍질처럼 중간이 약간 들어간 형태로, 규모는 동서 120m, 남북 350m, 전체 둘레는 950m 정도이다. 해발 59∼65m의 야트막한 임당 구릉의 서쪽 정상과 경사면의 지형에 따라 축조되었다. 이는 이 토성이 방어적인 용도 외에 신라 지방 지배 정책과 관련된 성곽임을 말해준다. 성의 내부에 지배 정책 관련 시설물들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4세기 초·중반 무렵 신라의 영역 확대에 따라 광역화된 지방을 지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축조된 토성이다.
경산 임당동 토성 (慶山 林堂洞 土城)
경산 임당동 토성은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 지배 정책과 관련된 성곽이다. 타원형 또는 땅콩 껍질처럼 중간이 약간 들어간 형태로, 규모는 동서 120m, 남북 350m, 전체 둘레는 950m 정도이다. 해발 59∼65m의 야트막한 임당 구릉의 서쪽 정상과 경사면의 지형에 따라 축조되었다. 이는 이 토성이 방어적인 용도 외에 신라 지방 지배 정책과 관련된 성곽임을 말해준다. 성의 내부에 지배 정책 관련 시설물들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4세기 초·중반 무렵 신라의 영역 확대에 따라 광역화된 지방을 지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축조된 토성이다.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집터와 토기류·청동기류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생활유적.
경산 평사리 유적 (慶山 坪沙里 遺蹟)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집터와 토기류·청동기류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생활유적.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아궁이시설 관련 생활유적.
포항 호동 주거지 (浦項 虎洞 住居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아궁이시설 관련 생활유적.
대구 상동 유적은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돌널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이다. 상동유적은 신천변 동안에 위치하며, 청동기시대 주거지 20기, 삼국시대 주거지 15기, 조선시대 주거지 5기가 발견되었다. 주거지는 평면형태에 따라 장방형주거지, 원형주거지, 송국리형주거지로 구분된다.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유구 가운데 15기의 주거지에 온돌이 설치되었다. 상동유적은 신천의 자연제방 위에 위치한 취락유적으로, 삼국-통일신라시대 주거지의 내부에 온돌시설인 고래가 설치되어 있어 주거지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대구 상동 유적 (大邱 上洞 遺蹟)
대구 상동 유적은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돌널무덤·건물터 관련 생활유적이다. 상동유적은 신천변 동안에 위치하며, 청동기시대 주거지 20기, 삼국시대 주거지 15기, 조선시대 주거지 5기가 발견되었다. 주거지는 평면형태에 따라 장방형주거지, 원형주거지, 송국리형주거지로 구분된다.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유구 가운데 15기의 주거지에 온돌이 설치되었다. 상동유적은 신천의 자연제방 위에 위치한 취락유적으로, 삼국-통일신라시대 주거지의 내부에 온돌시설인 고래가 설치되어 있어 주거지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동·각산동 일대에 있는 철기시대 두형토기·삼각구연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생활유적.
대구 안심동 유적 (大邱 安心洞 遺蹟)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동·각산동 일대에 있는 철기시대 두형토기·삼각구연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된 유물산포지. 생활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