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정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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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은 고려 초에 태조 왕건에게 귀부한 호족이다. 신라 말에 매곡현의 본읍 장군으로 있다가 궁예에게 귀부하였는데, 왕건의 고려 건국 직후에 발생한 임춘길의 모반사건을 계기로 후백제에 귀부하여 견훤의 심복이 되었다. 그러나 왕건이 견훤을 상대로 고창전투에서 승리한 뒤인 932년(태조 15)에 그는 다시 고려에 귀부하여 대상에 임명되었으며, 백성군의 녹읍과 마구간의 말 3필 등을 하사받았다.
공직 (龔直)
공직은 고려 초에 태조 왕건에게 귀부한 호족이다. 신라 말에 매곡현의 본읍 장군으로 있다가 궁예에게 귀부하였는데, 왕건의 고려 건국 직후에 발생한 임춘길의 모반사건을 계기로 후백제에 귀부하여 견훤의 심복이 되었다. 그러나 왕건이 견훤을 상대로 고창전투에서 승리한 뒤인 932년(태조 15)에 그는 다시 고려에 귀부하여 대상에 임명되었으며, 백성군의 녹읍과 마구간의 말 3필 등을 하사받았다.
김홍술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진보성 성주 및 의성부 성주를 역임한 장군이다. 그는 신라 말에 진보성주 장군으로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가 922년(태조 5)에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29년(태조 12)에 의성부의 성주 장군으로 있다가 후백제의 견훤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사후에는 의성의 지역민들에 의해 성황신으로 받들어졌다.
김홍술 (金洪術)
김홍술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진보성 성주 및 의성부 성주를 역임한 장군이다. 그는 신라 말에 진보성주 장군으로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가 922년(태조 5)에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29년(태조 12)에 의성부의 성주 장군으로 있다가 후백제의 견훤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사후에는 의성의 지역민들에 의해 성황신으로 받들어졌다.
백수한은 고려 전기에 서경천도 운동, 묘청의 난 등과 관련된 관리이다. 그는 본래 일관으로서 서경 분사의 검교소감이 되어 묘청을 스승으로 섬겼다. 음양비술을 내세워 서경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묘청과 함께 서경의 임원역 지역을 새로운 궁궐터로 제시하고 인종으로 하여금 그곳에 궁궐을 짓게 하였다. 서경천도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김부식에 의해 반란의 주모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백수한 (白壽翰)
백수한은 고려 전기에 서경천도 운동, 묘청의 난 등과 관련된 관리이다. 그는 본래 일관으로서 서경 분사의 검교소감이 되어 묘청을 스승으로 섬겼다. 음양비술을 내세워 서경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묘청과 함께 서경의 임원역 지역을 새로운 궁궐터로 제시하고 인종으로 하여금 그곳에 궁궐을 짓게 하였다. 서경천도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김부식에 의해 반란의 주모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소태보는 고려 전기에 서북면병마사, 참지정사, 중서시랑평장사, 문하시중, 수태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재상이다. 그는 문종 때 호부시랑에 임명되었고, 선종 때 형부상서·서북면병마사·좌복야·참지정사·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하였다. 헌종 때는 왕국모 등과 함께 이자의의 난을 진압하면서 숙종의 즉위를 도왔으며, 숙종 때는 수태위·문하시중·태사·수태부·판호부사·서경유수사·수태사 등을 지냈다. 협모공신에 책봉되었으며 시호는 충겸이다.
소태보 (邵台輔)
소태보는 고려 전기에 서북면병마사, 참지정사, 중서시랑평장사, 문하시중, 수태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재상이다. 그는 문종 때 호부시랑에 임명되었고, 선종 때 형부상서·서북면병마사·좌복야·참지정사·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하였다. 헌종 때는 왕국모 등과 함께 이자의의 난을 진압하면서 숙종의 즉위를 도왔으며, 숙종 때는 수태위·문하시중·태사·수태부·판호부사·서경유수사·수태사 등을 지냈다. 협모공신에 책봉되었으며 시호는 충겸이다.
신숭겸은 고려 초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장수이다. 918년에 홍유·배현경·복지겸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후백제의 견훤이 927년에 신라 왕경까지 쳐들어가서 경애왕을 시해하고 약탈을 일삼자, 왕건은 친히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가서 대구의 공산에서 견훤에 맞서 싸웠다. 이 싸움에서 신숭겸은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처지에 빠진 왕건을 대신해서 싸우다가 원보 김락과 함께 전사하였다.
신숭겸 (申崇謙)
신숭겸은 고려 초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장수이다. 918년에 홍유·배현경·복지겸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후백제의 견훤이 927년에 신라 왕경까지 쳐들어가서 경애왕을 시해하고 약탈을 일삼자, 왕건은 친히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가서 대구의 공산에서 견훤에 맞서 싸웠다. 이 싸움에서 신숭겸은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처지에 빠진 왕건을 대신해서 싸우다가 원보 김락과 함께 전사하였다.
신정왕태후는 고려 전기 제1대 태조의 제4 왕비이다. 생전에는 명복궁대부인에 책봉되었으며, 태조와의 사이에서 대목왕후 황보씨와 대종 욱을 낳았다. 대종 욱과 선의왕후 부부가 모두 일찍 죽어서 친손자인 성종을 어려서부터 직접 키웠다. 983년(성종 2)에 세상을 떠나자, 성종이 시호를 신정왕태후라 하였다.
신정왕태후 (神靜王太后)
신정왕태후는 고려 전기 제1대 태조의 제4 왕비이다. 생전에는 명복궁대부인에 책봉되었으며, 태조와의 사이에서 대목왕후 황보씨와 대종 욱을 낳았다. 대종 욱과 선의왕후 부부가 모두 일찍 죽어서 친손자인 성종을 어려서부터 직접 키웠다. 983년(성종 2)에 세상을 떠나자, 성종이 시호를 신정왕태후라 하였다.
안직숭은 고려 전기에 감찰어사, 좌간의대부, 서북면병마사, 직문하성사, 검교태자태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국자감에 선발된 뒤에 숙종의 관심을 받으면서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예종 때는 송에 가서 대성신악을 받아온 뒤에 전중내급사·통판서경유수사·감찰어사·중서사인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인종 때는 이자겸의 난 당시에 왕을 지킨 공으로 형부시랑·지제고·국자좨주·좌간의대부·서북면병마사·공부상서·삼사사·직문하성사 등을 역임한 뒤에 검교태자태부로 치사하였다.
안직숭 (安稷崇)
안직숭은 고려 전기에 감찰어사, 좌간의대부, 서북면병마사, 직문하성사, 검교태자태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국자감에 선발된 뒤에 숙종의 관심을 받으면서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예종 때는 송에 가서 대성신악을 받아온 뒤에 전중내급사·통판서경유수사·감찰어사·중서사인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인종 때는 이자겸의 난 당시에 왕을 지킨 공으로 형부시랑·지제고·국자좨주·좌간의대부·서북면병마사·공부상서·삼사사·직문하성사 등을 역임한 뒤에 검교태자태부로 치사하였다.
양원준은 고려 전기 어사대부, 동중서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예종 때 문음으로 양온서사동정에 처음 출사하여 광주감무까지 승진하였고, 인종 때 전중시어사·상주목부사·형부낭중·시어사중승 등을 거쳐 동북면병마사에 올랐다. 의종 때는 추밀원부사, 어사대부, 이부상서, 동중서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하였다.
양원준 (梁元俊)
양원준은 고려 전기 어사대부, 동중서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예종 때 문음으로 양온서사동정에 처음 출사하여 광주감무까지 승진하였고, 인종 때 전중시어사·상주목부사·형부낭중·시어사중승 등을 거쳐 동북면병마사에 올랐다. 의종 때는 추밀원부사, 어사대부, 이부상서, 동중서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하였다.
오연총은 고려 전기 중서사인, 어사대부, 문하시랑평장사, 추충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숙종 때 송에 사신으로 가서 『태평어람』과 『신의보구방』을 얻어서 돌아왔으며, 상서좌승·추밀원부사·한림학사 등을 지냈다. 예종 때는 지추밀원사·어사대부·동북면병마사 등을 지내고, 윤관과 함께 여진을 정벌하여 구성(九城)을 쌓고 협모동덕치원공신과 양구진국공신에 책봉되었다. 그 뒤 여진에 패하고 구성을 반환하면서 관직과 공신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다시 중서시랑평장사·판삼사사, 지공거,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추충공신 등에 올랐다.
오연총 (吳延寵)
오연총은 고려 전기 중서사인, 어사대부, 문하시랑평장사, 추충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숙종 때 송에 사신으로 가서 『태평어람』과 『신의보구방』을 얻어서 돌아왔으며, 상서좌승·추밀원부사·한림학사 등을 지냈다. 예종 때는 지추밀원사·어사대부·동북면병마사 등을 지내고, 윤관과 함께 여진을 정벌하여 구성(九城)을 쌓고 협모동덕치원공신과 양구진국공신에 책봉되었다. 그 뒤 여진에 패하고 구성을 반환하면서 관직과 공신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다시 중서시랑평장사·판삼사사, 지공거,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추충공신 등에 올랐다.
왕가도는 고려 전기 치성공신과 수충창궐공신에 책록되고, 참지정사·문하시랑평장사·감수국사 등을 역임한 공신이자 문신이다. 본래 이름은 이자림이었는데, 중간에 이가도로 바꾸었다.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그는 김훈·최질 등을 제거하면서 현종과 밀착되어 딸을 원질귀비로 납비하였고, 치성공신에 책봉되었다. 나성을 축조한 공으로 다시 수충창궐공신에 책봉되고 왕씨를 사성 받으면서 왕가도라 하였다. 그 뒤에는 또 다른 딸을 납비하여 덕종의 후비 경목현비로 삼았다.
왕가도 (王可道)
왕가도는 고려 전기 치성공신과 수충창궐공신에 책록되고, 참지정사·문하시랑평장사·감수국사 등을 역임한 공신이자 문신이다. 본래 이름은 이자림이었는데, 중간에 이가도로 바꾸었다.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그는 김훈·최질 등을 제거하면서 현종과 밀착되어 딸을 원질귀비로 납비하였고, 치성공신에 책봉되었다. 나성을 축조한 공으로 다시 수충창궐공신에 책봉되고 왕씨를 사성 받으면서 왕가도라 하였다. 그 뒤에는 또 다른 딸을 납비하여 덕종의 후비 경목현비로 삼았다.
왕규는 고려 전기 태조에게 귀부하였다가 혜종 때 왕위쟁탈전을 벌였던 광주(廣州) 출신의 호족이자 관리이다. 그는 두 딸을 태조와 혼인시켜서 광주원부인과 소광주원부인으로 삼은 데 이어 또 다른 딸을 혜종의 후광주원부인으로 삼으면서 점차 막강한 정치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혜종의 뒤를 이어서 자신의 외손자이자 소광주원부인 소생인 광주원군을 왕위에 앉힐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혜종이 세상을 떠난 뒤에 왕위에 오른 자는 그의 경쟁자였던 왕요였으며, 이로 인해 왕위에 오른 정종에 의해 왕규는 결국 죽임을 당하였다.
왕규 (王規)
왕규는 고려 전기 태조에게 귀부하였다가 혜종 때 왕위쟁탈전을 벌였던 광주(廣州) 출신의 호족이자 관리이다. 그는 두 딸을 태조와 혼인시켜서 광주원부인과 소광주원부인으로 삼은 데 이어 또 다른 딸을 혜종의 후광주원부인으로 삼으면서 점차 막강한 정치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혜종의 뒤를 이어서 자신의 외손자이자 소광주원부인 소생인 광주원군을 왕위에 앉힐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혜종이 세상을 떠난 뒤에 왕위에 오른 자는 그의 경쟁자였던 왕요였으며, 이로 인해 왕위에 오른 정종에 의해 왕규는 결국 죽임을 당하였다.
왕무숭은 고려 전기 문종 때 어사대부, 동북면행영병마사, 판상서형부사,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의 딸은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이예와 혼인하여 선종의 후비 정신현비 이씨를 낳고 정신현비가 다시 예종의 후비 경화왕후 이씨를 낳음으로써 상당군대부인에 봉해졌다. 그러나 왕무숭은 교위 거신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아들 왕정과 함께 안동으로 쫓겨났다.
왕무숭 (王懋崇)
왕무숭은 고려 전기 문종 때 어사대부, 동북면행영병마사, 판상서형부사,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의 딸은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낸 이예와 혼인하여 선종의 후비 정신현비 이씨를 낳고 정신현비가 다시 예종의 후비 경화왕후 이씨를 낳음으로써 상당군대부인에 봉해졌다. 그러나 왕무숭은 교위 거신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아들 왕정과 함께 안동으로 쫓겨났다.
왕융은 고려 전기에 지공거로 과거시험을 주관하였고 한림학사, 내의령,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광종부터 성종 때까지 약 30여 년 동안 12회에 걸쳐 지공거를 역임하면서 과거시험을 주관하였다. 그동안 대상과 대광, 한림학사, 총한림, 판총한림, 내의령, 병부령, 평장사 등의 관직도 역임하였다.
왕융 (王融)
왕융은 고려 전기에 지공거로 과거시험을 주관하였고 한림학사, 내의령,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광종부터 성종 때까지 약 30여 년 동안 12회에 걸쳐 지공거를 역임하면서 과거시험을 주관하였다. 그동안 대상과 대광, 한림학사, 총한림, 판총한림, 내의령, 병부령, 평장사 등의 관직도 역임하였다.
유금필은 고려 초의 개국공신으로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장군이다. 그는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에 가담하여 개국공신이 된 뒤에 거듭 승진하여 대광이 되었다. 골암진, 연산진, 임존군, 조물성, 독기진, 고창군, 운주 등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나주를 경략한 뒤에 견훤의 고려 귀부를 이끌어내고, 고려가 후백제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 일리천 전투에 출전하여 승리를 도우면서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유금필 (庾黔弼)
유금필은 고려 초의 개국공신으로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장군이다. 그는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에 가담하여 개국공신이 된 뒤에 거듭 승진하여 대광이 되었다. 골암진, 연산진, 임존군, 조물성, 독기진, 고창군, 운주 등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나주를 경략한 뒤에 견훤의 고려 귀부를 이끌어내고, 고려가 후백제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 일리천 전투에 출전하여 승리를 도우면서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정종은 고려 전기 제1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34~1046년이며, 동복형인 덕종의 서거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년에 팔관회를 열어 송나라 등 외국 상인들에게도 예식을 관람시키는 상례를 만들었다. 변경의 방위를 위해 힘썼고, 동서대비원을 수리해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었다. 1037년 거란의 침입을 받아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고 책봉을 받았지만 이후 북방 경비에 주력해 1044년 덕종의 유업인 천리장성을 완성했다. 노비종모법과 장자상속법을 제정했다. 병이 위독하자 아우 왕휘(뒤의 문종)로 하여금 국정을 맡게 했다.
정종 (靖宗)
정종은 고려 전기 제1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34~1046년이며, 동복형인 덕종의 서거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년에 팔관회를 열어 송나라 등 외국 상인들에게도 예식을 관람시키는 상례를 만들었다. 변경의 방위를 위해 힘썼고, 동서대비원을 수리해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주었다. 1037년 거란의 침입을 받아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고 책봉을 받았지만 이후 북방 경비에 주력해 1044년 덕종의 유업인 천리장성을 완성했다. 노비종모법과 장자상속법을 제정했다. 병이 위독하자 아우 왕휘(뒤의 문종)로 하여금 국정을 맡게 했다.
최유는 고려 전기에 수사도·태자태부·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에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주로 인종대에 어사잡단, 이부상서, 병부상서, 판한림원사, 지추밀원사, 참지정사, 수사도, 태자태부, 문하시랑평장사, 중서시랑평장사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동지공거와 지공거를 맡아서 과거 출신자들을 선발하였다.
최유 (崔濡)
최유는 고려 전기에 수사도·태자태부·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에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주로 인종대에 어사잡단, 이부상서, 병부상서, 판한림원사, 지추밀원사, 참지정사, 수사도, 태자태부, 문하시랑평장사, 중서시랑평장사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동지공거와 지공거를 맡아서 과거 출신자들을 선발하였다.
최윤의는 고려 전기에 판중군병마사,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1128년 과거에 급제한 뒤 태학박사·지제고·좌사간 등을 지냈다. 의종 때는 중서사인을 시작으로 어사대부·지추밀원사·정당문학·참지정사·지문하성사 등을 거쳐 중서시랑과 서경유수사, 동북면병마판사,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지냈다. 또한 수충좌리공신에 책봉되고 지공거와 감수국사도 맡았으며, 『상정고금예문』 50권을 찬술하였다. 의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최윤의 (崔允儀)
최윤의는 고려 전기에 판중군병마사,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1128년 과거에 급제한 뒤 태학박사·지제고·좌사간 등을 지냈다. 의종 때는 중서사인을 시작으로 어사대부·지추밀원사·정당문학·참지정사·지문하성사 등을 거쳐 중서시랑과 서경유수사, 동북면병마판사,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지냈다. 또한 수충좌리공신에 책봉되고 지공거와 감수국사도 맡았으며, 『상정고금예문』 50권을 찬술하였다. 의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최지몽은 고려 전기에 내의령·좌집정·수내사령 등을 역임하며 태조부터 성종까지 섬겼던 문신이다. 그는 천문과 복서에 정통해서 태조의 후삼국통일을 예견하였으며, 왕규의 모반을 미리 예측하여 혜종이 암살당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또한 광종 때 취중의 무례한 행동으로 인해 11년 동안 유배 생활을 겪기도 하였지만, 경종에게 다시 발탁되어 왕승의 모역을 막아냈다. 성종 때는 좌집정 수내사령 상주국에 오르고 홍문숭화치리공신에 책봉되었으며, 987년(성종 6)에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최지몽 (崔知夢)
최지몽은 고려 전기에 내의령·좌집정·수내사령 등을 역임하며 태조부터 성종까지 섬겼던 문신이다. 그는 천문과 복서에 정통해서 태조의 후삼국통일을 예견하였으며, 왕규의 모반을 미리 예측하여 혜종이 암살당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또한 광종 때 취중의 무례한 행동으로 인해 11년 동안 유배 생활을 겪기도 하였지만, 경종에게 다시 발탁되어 왕승의 모역을 막아냈다. 성종 때는 좌집정 수내사령 상주국에 오르고 홍문숭화치리공신에 책봉되었으며, 987년(성종 6)에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최충은 고려 전기에 문하시랑평장사, 도병마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84년(성종 3)에 태어나 1068년(문종 22)에 사망했다. 문장에 능하여 1013년(현종 4) 국사수찬관으로서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칠대실록』을 편찬했다. 문종 즉위 후 문하시중이 되어 율령을 정리했고 서북 주·진의 공역 금지를 청하고 동여진에 대한 대비책을 건의하는 등 뛰어난 행정 능력을 보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후 한국 사립학교의 원조 격인 구재학당을 세워 교육과 인재양성에 힘썼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대계를 세움으로써 해동공자로 칭송되었다.
최충 (崔沖)
최충은 고려 전기에 문하시랑평장사, 도병마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84년(성종 3)에 태어나 1068년(문종 22)에 사망했다. 문장에 능하여 1013년(현종 4) 국사수찬관으로서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칠대실록』을 편찬했다. 문종 즉위 후 문하시중이 되어 율령을 정리했고 서북 주·진의 공역 금지를 청하고 동여진에 대한 대비책을 건의하는 등 뛰어난 행정 능력을 보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후 한국 사립학교의 원조 격인 구재학당을 세워 교육과 인재양성에 힘썼다. 교육을 통해 국가의 대계를 세움으로써 해동공자로 칭송되었다.
혜종은 고려 전기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43~945년이며, 태조와 나주 출신의 장화왕후 오씨 소생이다. 박술희의 도움을 받아 921년에 정윤으로 책봉되었으며, 통일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렇지만 혜종은 즉위한 뒤부터 계속해서 박술희와 왕위쟁탈을 노리던 왕규, 그리고 정종까지 서로 대립하면서 불안한 정국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혜종은 자신의 신변 위협까지 느끼다가 병을 얻어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혜종 (惠宗)
혜종은 고려 전기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43~945년이며, 태조와 나주 출신의 장화왕후 오씨 소생이다. 박술희의 도움을 받아 921년에 정윤으로 책봉되었으며, 통일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렇지만 혜종은 즉위한 뒤부터 계속해서 박술희와 왕위쟁탈을 노리던 왕규, 그리고 정종까지 서로 대립하면서 불안한 정국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혜종은 자신의 신변 위협까지 느끼다가 병을 얻어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