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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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에레지」는 1950년 2월 이봉구가 『백민』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신문 기자인 ‘그’가 과거 명동의 다방에서 커피를 따라 주던 여인 ‘시몬’과 10여 년 만에 재회한 이야기로, 명동의 거리와 찻집을 오가며 청춘의 낭만과 의욕을 느꼈던 시몬이 폐병으로 요양을 떠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의 속편은 「속(續) 명동 에레지」(『자유세계』, 1957.6)로 발표되었다. 이후에도 이봉구는 『그리운 이름 따라-명동 20년』(1966), 『명동 비 내리다』(1978) 등을 출간하며 명동을 낭만과 우정의 장소로 형상화했다.
명동의 에레지 (明洞의 에레지)
「명동의 에레지」는 1950년 2월 이봉구가 『백민』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신문 기자인 ‘그’가 과거 명동의 다방에서 커피를 따라 주던 여인 ‘시몬’과 10여 년 만에 재회한 이야기로, 명동의 거리와 찻집을 오가며 청춘의 낭만과 의욕을 느꼈던 시몬이 폐병으로 요양을 떠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의 속편은 「속(續) 명동 에레지」(『자유세계』, 1957.6)로 발표되었다. 이후에도 이봉구는 『그리운 이름 따라-명동 20년』(1966), 『명동 비 내리다』(1978) 등을 출간하며 명동을 낭만과 우정의 장소로 형상화했다.
『순애보』는 1939년 1월 1일부터 6월 17일까지 박계주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매일신보』의 ‘특별문예현상공모’ 당선작으로, 연재 당시는 물론 단행본 출간 후 독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작품은 명희와 문선, 혜순과 철진 네 명의 연애를 통해서 헌신적이고 숭고한 사랑의 완성을 그려내고 있다. 현실도피적, 상업주의적 대중소설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통속성을 확보하면서도 기독교적 휴머니즘을 표방하며 독자에게 낭만적 환상과 위안을 제공하였다.
순애보 (殉愛譜)
『순애보』는 1939년 1월 1일부터 6월 17일까지 박계주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매일신보』의 ‘특별문예현상공모’ 당선작으로, 연재 당시는 물론 단행본 출간 후 독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작품은 명희와 문선, 혜순과 철진 네 명의 연애를 통해서 헌신적이고 숭고한 사랑의 완성을 그려내고 있다. 현실도피적, 상업주의적 대중소설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통속성을 확보하면서도 기독교적 휴머니즘을 표방하며 독자에게 낭만적 환상과 위안을 제공하였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5월 이미륵이 독일 피퍼(Piper)사에서 출판한 독일어 장편소설이다.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부제로, 고향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독일로 망명한 체험을 회상 형식으로 서술한 자전적 소설이다. 한국인이 쓴 소설이나 독일에서도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독일에 한국의 표상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1959년 전혜린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이주와 망명 과정 속에서 조국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 한국인이 쓴 디아스포라 문학의 선구로 호명된다.
압록강은 흐른다 (鴨綠江은 흐른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5월 이미륵이 독일 피퍼(Piper)사에서 출판한 독일어 장편소설이다.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부제로, 고향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독일로 망명한 체험을 회상 형식으로 서술한 자전적 소설이다. 한국인이 쓴 소설이나 독일에서도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독일에 한국의 표상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1959년 전혜린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이주와 망명 과정 속에서 조국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 한국인이 쓴 디아스포라 문학의 선구로 호명된다.
홍구범은 1947년 단편소설 「봄이 오면」으로 등단하여 「창고 근처 사람들」·「농민」 등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잡지 편집자이다. 1949년 모윤숙·김동리·조연현 등과 『문예』를 창간하면서 편집을 맡았고, 청년문학가협회·한국문학가협회 결성에 참여했다. 해방기에 가난한 민중들의 생활고를 리얼리즘적으로 재현하고 풍자하여 문단에서 주목받는 신진 작가였다. 1950년 8월경에 인민군 보안서원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홍구범 (洪九範)
홍구범은 1947년 단편소설 「봄이 오면」으로 등단하여 「창고 근처 사람들」·「농민」 등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잡지 편집자이다. 1949년 모윤숙·김동리·조연현 등과 『문예』를 창간하면서 편집을 맡았고, 청년문학가협회·한국문학가협회 결성에 참여했다. 해방기에 가난한 민중들의 생활고를 리얼리즘적으로 재현하고 풍자하여 문단에서 주목받는 신진 작가였다. 1950년 8월경에 인민군 보안서원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김정숙은 해방 이후 「환경 속의 인간들」·「비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이다. 근대 조각 정착기에 미국 유학에서 경험한 서구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했다. 1957년부터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철조에서 용접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대표작인 「환경 속의 인간들」(1971)은 청동의 구조체를 대지예술에 접목시켜 인간과 환경의 조응 관계를 설치적 개념으로 풀어낸 서사 작품이다. 「비상」(1980)은 날개를 주제로 서사적이며 감성적인 경향을 보이는 작품이다. 김정숙은 한국 서정 조각 분야에서 조형주의적인 경향을 인도한 선구적 존재로 평가된다.
김정숙 (金貞淑)
김정숙은 해방 이후 「환경 속의 인간들」·「비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이다. 근대 조각 정착기에 미국 유학에서 경험한 서구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했다. 1957년부터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철조에서 용접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대표작인 「환경 속의 인간들」(1971)은 청동의 구조체를 대지예술에 접목시켜 인간과 환경의 조응 관계를 설치적 개념으로 풀어낸 서사 작품이다. 「비상」(1980)은 날개를 주제로 서사적이며 감성적인 경향을 보이는 작품이다. 김정숙은 한국 서정 조각 분야에서 조형주의적인 경향을 인도한 선구적 존재로 평가된다.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54년에 조성한 기념탑이다. 광복 이후 가장 먼저 조성된 독립 관련 기념물이다. 탑의 상층기단 전면에는 학생들의 독립운동 모습을 부조한 청동판을 부착했다. 하층 탑신부에는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문구를 3단으로 새겼다. 탑신 전면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라 쓰인 청동판을 부착했다. 1999년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전남여자고등학교 일부를 광주학생운동 발상지로 기념화하며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하면서 기념탑도 포함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 (光州學生獨立運動 記念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54년에 조성한 기념탑이다. 광복 이후 가장 먼저 조성된 독립 관련 기념물이다. 탑의 상층기단 전면에는 학생들의 독립운동 모습을 부조한 청동판을 부착했다. 하층 탑신부에는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문구를 3단으로 새겼다. 탑신 전면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라 쓰인 청동판을 부착했다. 1999년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전남여자고등학교 일부를 광주학생운동 발상지로 기념화하며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하면서 기념탑도 포함되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상은 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에 있는 1957년에 제작한 청동상이다. 더글라스 맥아더(1880-1964) 장군의 77회 생일이자 인천상륙작전의 7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장방형의 화강암 지대석 위에 높은 대석을 마련해 청동상을 세웠다. 동상은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으며 왼손은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허리 뒤쪽 호주머니에 꽂고, 오른손은 복부에서 쌍안경을 들고 있는 형태이다. 얼굴은 전면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동상 뒤로는 후벽을 세워 상륙작전의 부조판을 부착했다. 6·25 전쟁을 기념해 세운 첫 외국인 장군상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상 (Douglas MacArthur 將軍像)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상은 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에 있는 1957년에 제작한 청동상이다. 더글라스 맥아더(1880-1964) 장군의 77회 생일이자 인천상륙작전의 7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장방형의 화강암 지대석 위에 높은 대석을 마련해 청동상을 세웠다. 동상은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으며 왼손은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허리 뒤쪽 호주머니에 꽂고, 오른손은 복부에서 쌍안경을 들고 있는 형태이다. 얼굴은 전면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동상 뒤로는 후벽을 세워 상륙작전의 부조판을 부착했다. 6·25 전쟁을 기념해 세운 첫 외국인 장군상이다.
전몰학도 충혼탑은 경상북도 포항시에 있는 학도의용군을 추모하기 위해 1957년에 건립한 기념탑이다. 6·25전쟁에서 학도병에 지원해 후방지원을 맡았다가 산화한 71명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탑이다. 이 기념탑은 작가 김종영에게 의뢰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둥글게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亞’자 형 평면으로 탑을 구축하였다. 석축 전면에는 ‘전몰학도충혼탑’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석판이 끼워져 있다. 탑신 부분에는 기린 혹은 천마로 추정되는 동물이 영기와 함께 석판에 부조되어 있다. 전통적 도상을 현대의 기념비에 접목한 이례적인 사례이다.
전몰학도 충혼탑 (戰歿學徒 忠魂塔)
전몰학도 충혼탑은 경상북도 포항시에 있는 학도의용군을 추모하기 위해 1957년에 건립한 기념탑이다. 6·25전쟁에서 학도병에 지원해 후방지원을 맡았다가 산화한 71명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탑이다. 이 기념탑은 작가 김종영에게 의뢰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둥글게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亞’자 형 평면으로 탑을 구축하였다. 석축 전면에는 ‘전몰학도충혼탑’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석판이 끼워져 있다. 탑신 부분에는 기린 혹은 천마로 추정되는 동물이 영기와 함께 석판에 부조되어 있다. 전통적 도상을 현대의 기념비에 접목한 이례적인 사례이다.
6·25전쟁 당시 순직한 경찰관을 추모하기 위해 1958년 충청남도 아산 경찰교육원에 건립한 충혼탑이다. 중앙에 화강암으로 쌓은 충혼탑을 두고 뒤로 병풍석을 축대 형태로 둘렀다. 탑 좌측에는 청동으로 주조한 안민상을, 우측에는 호국상을 배치하였다. 안민상은 피리 부는 여인상이며 호국상은 칼을 짚고 선 남성상이다. 나신에 가까운 여인이 부드러운 천으로 몸을 가린 채 피리를 부는 도상은 일반 감상용 조각에서 애호되던 것으로 선열을 위무하는 충혼탑에 사용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위무와 의기를 동시에 표현하는 전형성은 이 충혼탑에서 시작되었다.
경찰충혼탑조각 - 안민상, 호국상 (警察忠魂塔彫刻 - 安民像|護國像)
6·25전쟁 당시 순직한 경찰관을 추모하기 위해 1958년 충청남도 아산 경찰교육원에 건립한 충혼탑이다. 중앙에 화강암으로 쌓은 충혼탑을 두고 뒤로 병풍석을 축대 형태로 둘렀다. 탑 좌측에는 청동으로 주조한 안민상을, 우측에는 호국상을 배치하였다. 안민상은 피리 부는 여인상이며 호국상은 칼을 짚고 선 남성상이다. 나신에 가까운 여인이 부드러운 천으로 몸을 가린 채 피리를 부는 도상은 일반 감상용 조각에서 애호되던 것으로 선열을 위무하는 충혼탑에 사용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위무와 의기를 동시에 표현하는 전형성은 이 충혼탑에서 시작되었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청동으로 주조한 화랑상.
화랑상 (花郞像)
서울특별시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청동으로 주조한 화랑상.
1954년에 김세중이 제작한 천주교 순교자 골롬바와 아그네스 자매 부조상.
골롬바와 아그네스 (Colomba와 Agnes)
1954년에 김세중이 제작한 천주교 순교자 골롬바와 아그네스 자매 부조상.
해방 이후 「을지문덕상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부조」·「화랑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차근호 (|車根鎬)
해방 이후 「을지문덕상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부조」·「화랑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신사실파는 1947년에 김환기·유영국·이규상 등이 결성해 1950년대 중반까지 존재했던 화가 동인단체이다. 순수를 표방한 미술 집단으로 장욱진·백영수·이중섭 등 초기 모더니스트들로 구성되었다. 1948년, 1949년, 1953년 3회의 전시를 열었다. 신사실파는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한 전통과 민족을 혼합한 새로운 조형 의식을 추구했다. 참여 작가 개개인이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어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광복 이후 이념에 의해 화단이 사분오열되고 있을 때 ‘신사실’은 이른바 조형예술에서의 순수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신사실파 (新寫實派)
신사실파는 1947년에 김환기·유영국·이규상 등이 결성해 1950년대 중반까지 존재했던 화가 동인단체이다. 순수를 표방한 미술 집단으로 장욱진·백영수·이중섭 등 초기 모더니스트들로 구성되었다. 1948년, 1949년, 1953년 3회의 전시를 열었다. 신사실파는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한 전통과 민족을 혼합한 새로운 조형 의식을 추구했다. 참여 작가 개개인이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어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광복 이후 이념에 의해 화단이 사분오열되고 있을 때 ‘신사실’은 이른바 조형예술에서의 순수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신조형파는 1957년에 결성하여 현대예술의 생활화를 주창한 미술 단체이다. 1950년대 후반 현대미술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바우하우스의 조형 이념을 신조로 변영원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단체이다. 화가 이외에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모여 서로 융합하였다는 점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1959년 3회전까지 ‘신조형파’라는 명칭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1960년에는 ‘현대미술가연합 전국대회’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각 단체들의 통합 기류 속에서 해체되었다. 실용적 미의 구현과 다양한 추상미술의 존재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조형파 (新造型派)
신조형파는 1957년에 결성하여 현대예술의 생활화를 주창한 미술 단체이다. 1950년대 후반 현대미술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바우하우스의 조형 이념을 신조로 변영원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단체이다. 화가 이외에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모여 서로 융합하였다는 점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1959년 3회전까지 ‘신조형파’라는 명칭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1960년에는 ‘현대미술가연합 전국대회’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각 단체들의 통합 기류 속에서 해체되었다. 실용적 미의 구현과 다양한 추상미술의 존재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방 이후 「이승만 대통령동상」, 「의암 손병희선생 동상」, 「퇴계 이황 선생상」 등을 제작한 조각가.
문정화 (文貞化)
해방 이후 「이승만 대통령동상」, 「의암 손병희선생 동상」, 「퇴계 이황 선생상」 등을 제작한 조각가.
해방 이후 「곽낙원여사상」, 「성관음상」, 「농민군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공예가.
박승구 (朴勝龜)
해방 이후 「곽낙원여사상」, 「성관음상」, 「농민군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공예가.
부산시 문화상 심사위원장, 부산야외조각대전 운영위원 등을 역임한 조각가·교육자.
심봉섭 (沈鳳燮)
부산시 문화상 심사위원장, 부산야외조각대전 운영위원 등을 역임한 조각가·교육자.
일제강점기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의 미술인 단체.
경성미술가협회 (京城美術家協會)
일제강점기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의 미술인 단체.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만화가 단체의 효시.
조선만화가구락부 (朝鮮漫畵家俱樂部)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만화가 단체의 효시.
일제강점기 프로예맹 산하의 미술인 단체.
조형미술연구소 (造形美術硏究所)
일제강점기 프로예맹 산하의 미술인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