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최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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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보호운동이란 사람이 개인 또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보호받도록 노력하는 사회운동이다. 봉건적 신분 질서에 맞선 자연권 사상과 시민 혁명으로부터 출발한 인권 개념은 인권 확대를 요구하는 인권보호운동을 통해 상층 부르주아들로부터 노동자 계급, 여성 등으로 그 적용 범위가 확대되었고 개인의 자유권 특히 사유 재산권(소유권)에 대한 강조로부터 ‘복지’를 국가의 시혜가 아닌 ‘인권’으로 보는 사회권의 형태로 확장되어 왔다.
인권보호운동 (人權保護運動)
인권보호운동이란 사람이 개인 또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보호받도록 노력하는 사회운동이다. 봉건적 신분 질서에 맞선 자연권 사상과 시민 혁명으로부터 출발한 인권 개념은 인권 확대를 요구하는 인권보호운동을 통해 상층 부르주아들로부터 노동자 계급, 여성 등으로 그 적용 범위가 확대되었고 개인의 자유권 특히 사유 재산권(소유권)에 대한 강조로부터 ‘복지’를 국가의 시혜가 아닌 ‘인권’으로 보는 사회권의 형태로 확장되어 왔다.
재해대책위원회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정부 각 부처 간 업무를 분장 및 조정하여 방재 계획을 수립하고 재해 예방, 재해 응급 대책, 기타 재해 대책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1967년 설치되었던 기구이다. 설립 초기 중앙재해대책위원회와 지방재해대책위원회의 이원적 구조였으나 이후 지방재해대책위원회가 폐지되고 중앙재해대책위원회를 재해대책위원회로 변경하면서 일원적 구조로 운영하였다. 2004년 재해, 재난 등으로 다원화되어 있던 재난 관련 법령의 통합 법안이 마련되고 통합 관리 기구로 중앙안전관리위원회가 구성되면서 폐지되었다.
재해대책위원회 (災害對策委員會)
재해대책위원회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정부 각 부처 간 업무를 분장 및 조정하여 방재 계획을 수립하고 재해 예방, 재해 응급 대책, 기타 재해 대책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1967년 설치되었던 기구이다. 설립 초기 중앙재해대책위원회와 지방재해대책위원회의 이원적 구조였으나 이후 지방재해대책위원회가 폐지되고 중앙재해대책위원회를 재해대책위원회로 변경하면서 일원적 구조로 운영하였다. 2004년 재해, 재난 등으로 다원화되어 있던 재난 관련 법령의 통합 법안이 마련되고 통합 관리 기구로 중앙안전관리위원회가 구성되면서 폐지되었다.
한국한부모가족복지연합회는 6·25 전쟁을 거치며 급격히 증가한 보호가 필요한 여성들에게 시설 보호와 직업 보도 사업을 실시하는 단체들의 연합체로 출발하였다. 한 부모 가족 중 모자 가족이 절대 다수였던 상황에서 모자원, 부녀직업보도소 등 회원 시설을 지원하고, 모자 가족 세대 보호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와 조사를 하거나 세미나와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1990년대 이후 점차 보호를 요하는 부자(父子) 가족이 확대되면서 부자 가족이 포함된 한 부모 가족의 자립 및 복지 확대를 통해 그 적용 대상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국부녀복지연합회 (韓國婦女福祉聯合會)
한국한부모가족복지연합회는 6·25 전쟁을 거치며 급격히 증가한 보호가 필요한 여성들에게 시설 보호와 직업 보도 사업을 실시하는 단체들의 연합체로 출발하였다. 한 부모 가족 중 모자 가족이 절대 다수였던 상황에서 모자원, 부녀직업보도소 등 회원 시설을 지원하고, 모자 가족 세대 보호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와 조사를 하거나 세미나와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1990년대 이후 점차 보호를 요하는 부자(父子) 가족이 확대되면서 부자 가족이 포함된 한 부모 가족의 자립 및 복지 확대를 통해 그 적용 대상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국소아마비협회는 소아마비 장애인이 증가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소아마비 장애를 겪은 각 분야 명망가 6인이 1965년 설립한 삼애회라는 모임이 발전하여 만들어진 단체이다. 장애인 인권과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낮았던 1975년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이용 시설인 정립회관을 건립하여 장애 학생들에게 체육 활동의 기회와 친목의 공간을 제공했다. 1989년에는 국내 최초로 장애인 근로 사업장인 정립전자를 설립·운영해 오고 있다. 다만 정립회관의 권위주의적 운영, 정립전자의 비리 문제 등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소아마비협회 (韓國小兒痲痺協會)
한국소아마비협회는 소아마비 장애인이 증가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소아마비 장애를 겪은 각 분야 명망가 6인이 1965년 설립한 삼애회라는 모임이 발전하여 만들어진 단체이다. 장애인 인권과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낮았던 1975년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이용 시설인 정립회관을 건립하여 장애 학생들에게 체육 활동의 기회와 친목의 공간을 제공했다. 1989년에는 국내 최초로 장애인 근로 사업장인 정립전자를 설립·운영해 오고 있다. 다만 정립회관의 권위주의적 운영, 정립전자의 비리 문제 등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아동복지협회는 1952년 설립된 사회복지사업 단체 간의 연합체였던 한국사회사업연합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61년 이 단체 산하에 아동복지시설들로만 구성된 ‘한국사회복지시설연합회’가 결성되는데, 이 단체가 한국아동복지협회의 전신이다. 회원 단체 간의 정보 교류, 관련법 제·개정을 위한 활동, 조사 연구 등의 사업을 벌여 왔다. 1987년 한국아동복지시설협회로 개칭하였고, 2004년 한국아동복지연합회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아동 전문 종합기관으로 사업 확장을 꾀하였다. 2008년 한국아동복지협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아동복지시설연합회 (韓國兒童福祉施設聯合會)
한국아동복지협회는 1952년 설립된 사회복지사업 단체 간의 연합체였던 한국사회사업연합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61년 이 단체 산하에 아동복지시설들로만 구성된 ‘한국사회복지시설연합회’가 결성되는데, 이 단체가 한국아동복지협회의 전신이다. 회원 단체 간의 정보 교류, 관련법 제·개정을 위한 활동, 조사 연구 등의 사업을 벌여 왔다. 1987년 한국아동복지시설협회로 개칭하였고, 2004년 한국아동복지연합회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아동 전문 종합기관으로 사업 확장을 꾀하였다. 2008년 한국아동복지협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59년 12월 26일 결성된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여성 운동 단체이다. 권위주의적인 군부 정권 하에서는 정권과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온건적인 성향을 보였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때로는 진보 진영 여성 단체들과 협력하기도 했다. 세계여성단체협의회 회원 단체로서 다양한 국제 활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권익의 향상을 위해 오늘날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으며 평화, 생협, 환경 등 다양한 민주주의 의제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韓國女性團體協議會)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59년 12월 26일 결성된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여성 운동 단체이다. 권위주의적인 군부 정권 하에서는 정권과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온건적인 성향을 보였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때로는 진보 진영 여성 단체들과 협력하기도 했다. 세계여성단체협의회 회원 단체로서 다양한 국제 활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권익의 향상을 위해 오늘날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으며 평화, 생협, 환경 등 다양한 민주주의 의제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히로시마(1945년 8월 6일)와 나가사키(1945년 8월 9일)에 투하된 원자 폭탄으로 인하여 일본에 거주하다가 피해를 입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보상과 치료를 촉구하기 위하여 1967년에 결성한 단체이다. 일본 정부에 피해 보상 요구, 원폭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오늘날에는 원폭 피해자 및 그 후손들의 건강 관리와 복지 향상을 도모하고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과 함께 비핵화,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 등도 전개해 나가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韓國原爆被害者協會)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히로시마(1945년 8월 6일)와 나가사키(1945년 8월 9일)에 투하된 원자 폭탄으로 인하여 일본에 거주하다가 피해를 입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보상과 치료를 촉구하기 위하여 1967년에 결성한 단체이다. 일본 정부에 피해 보상 요구, 원폭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오늘날에는 원폭 피해자 및 그 후손들의 건강 관리와 복지 향상을 도모하고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과 함께 비핵화,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 등도 전개해 나가고 있다.
현대사회연구소는 1981년 4월 사회정화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1983년 4월 재단법인 현대사회연구소로 문교부의 설립 허가를 취득하였고, 2005년 4월 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회 정화 운동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연구 활동을 주로 하였다. 민주화 이후 국책 연구소 최초로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국책 연구소 연대 파업을 이끌어 내는 등 국책 연구소 민주화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다. 이후 허화평의 개인 연구소처럼 그 성격이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대사회연구소 (現代社會硏究所)
현대사회연구소는 1981년 4월 사회정화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1983년 4월 재단법인 현대사회연구소로 문교부의 설립 허가를 취득하였고, 2005년 4월 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회 정화 운동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연구 활동을 주로 하였다. 민주화 이후 국책 연구소 최초로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국책 연구소 연대 파업을 이끌어 내는 등 국책 연구소 민주화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다. 이후 허화평의 개인 연구소처럼 그 성격이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1993년 결성된 각 대학 총학생 회장뿐만 아니라 단대 학생 회장까지 포괄하는 연합 조직으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학생 운동 단체이다. 초기 한총련은 대학 내 문제와 더불어 민중 운동과 연대해 가면서 대중의 호응을 얻었으나, 1995년을 기점으로 강경 민족 해방(NL)파가 한총련의 중앙 조직을 장악하면서 통일 운동 중심으로 편재되었고 이후 1996년 ‘연세대 사건’, 1997년 ‘이석 치사 사건’ 등을 계기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조직적 탈퇴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韓國大學總學生會聯合)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1993년 결성된 각 대학 총학생 회장뿐만 아니라 단대 학생 회장까지 포괄하는 연합 조직으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학생 운동 단체이다. 초기 한총련은 대학 내 문제와 더불어 민중 운동과 연대해 가면서 대중의 호응을 얻었으나, 1995년을 기점으로 강경 민족 해방(NL)파가 한총련의 중앙 조직을 장악하면서 통일 운동 중심으로 편재되었고 이후 1996년 ‘연세대 사건’, 1997년 ‘이석 치사 사건’ 등을 계기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조직적 탈퇴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다.
총선시민연대는 2000년 1월 12일과 4월 13일에 치러질 16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낙천·낙선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낙선 대상자의 68.6%가 낙선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얻었지만 지역주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다는 점, 대안이 없는 네거티브 운동이었다는 점, 정치 개혁을 인물 교체로 국한함으로써 구조 개혁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 등의 한계도 갖는다. 16대 총선이 끝나고 공식적으로 해산하였다.
총선시민연대 (總選市民連帶)
총선시민연대는 2000년 1월 12일과 4월 13일에 치러질 16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낙천·낙선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낙선 대상자의 68.6%가 낙선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얻었지만 지역주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다는 점, 대안이 없는 네거티브 운동이었다는 점, 정치 개혁을 인물 교체로 국한함으로써 구조 개혁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 등의 한계도 갖는다. 16대 총선이 끝나고 공식적으로 해산하였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1987년 2월에 결성된 여성 단체들의 연합체이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유명무실화된 좌파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980년대에 조직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결성된 진보적 여성 운동 단체들의 연합체가 바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이다. 민주화 이후 여성 관련 법제화와 제도화에서 커다란 성과를 얻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韓國女性團體聯合)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1987년 2월에 결성된 여성 단체들의 연합체이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유명무실화된 좌파 여성 운동은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980년대에 조직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결성된 진보적 여성 운동 단체들의 연합체가 바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이다. 민주화 이후 여성 관련 법제화와 제도화에서 커다란 성과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