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연구소 ()

현대사회연구소
현대사회연구소
사회구조
단체
1981년 4월 사회정화위원회(社會淨化委員會) 산하 기관으로 설립된 정부 출연(出捐) 연구소.
단체
설립 시기
1981년
소재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 109
후신
미래한국재단
발간지
2000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현대사회연구소는 1981년 4월 사회정화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1983년 4월 재단법인 현대사회연구소로 문교부의 설립 허가를 취득하였고, 2005년 4월 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회 정화 운동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연구 활동을 주로 하였다. 민주화 이후 국책 연구소 최초로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국책 연구소 연대 파업을 이끌어 내는 등 국책 연구소 민주화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다. 이후 허화평의 개인 연구소처럼 그 성격이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의
1981년 4월 사회정화위원회(社會淨化委員會) 산하 기관으로 설립된 정부 출연(出捐) 연구소.
변천 및 현황

전두환 정권은 제5공화국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국무총리 소속의 정부 기관으로 사회정화위원회(社會淨化委員會)를 설립하였다. 사회정화위원회는 전두환 정권 시기에 ‘사회 정화’라는 명분으로 전두환과 신군부에 저항하던 수천 명의 공무원과 교수, 언론인을 해고하는 역할을 맡았던 기관이다. 현대사회연구소는 1981년 4월 사회정화위원회의 산하 기관으로 설립된 정부 출연(出捐) 연구소이다. 이후 1983년 4월 재단법인 현대사회연구소로 문교부(文敎部)의 설립 허가를 받았으며, 2005년 4월 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활동

현대사회연구소는 1981년 4월 한국 사회의 제 문제를 종합적으로 조사, 연구하고 국민 의식의 개혁을 위한 출판물 발간 및 연구 활동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정치, 사회, 교육, 문화, 안보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사회과학적 연구 방법으로 조사 및 연구했고, 중요한 사회적 현안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개발했다. 또한 연도별 사업 계획에 따라 장단기(長短期) 연구 과제 수행과 학술지 발간, 지식인 정책 간담회, 학술 토론회의 정기적 개최, 연례적인 국민 여론 조사 등 학술 연구 사업을 진행하였다. 문교부의 설립 허가를 취득한 독립 재단법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연원이 사회정화위원회의 산하기관이었던 만큼 사회 정화 운동과 관련하여, 정부 정책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연구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조사부는 사회 병리 진단과 정화 추진 상황의 점검과 분석, 출판부는 정화 운동의 홍보를 위한 각종 책자의 발간 업무에 집중했다. 1987년 4 · 13호헌조치가 이루어졌을 때에는 각계각층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실시하여 국민의 64%가 개헌 유보를 지지한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정부 입장에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 선거로 구성된 13대 국회에서는 제5공화국 비리의 주요 항목으로 현대사회연구소의 설립 과정, 출연 내역, 민정당과의 관계 등이 집중 조사되기도 하였다.

실패로 돌아간 조직민주화

1987년 6월항쟁 이후 정치,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화를 위한 열기가 고조되면서 연구소 내부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1988년 박정희 정권 이후 정재계(政財界) 고위직 비율 등에서 호남 출신이 차별받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 「한국사회 지역갈등연구」가 동아일보 1월 5일자에 보도되었다. 이에 연구소 측은 연구 보고서 배포를 중지하고 담당자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함에 따라, 연구소의 연구원 전원이 반발 성명을 내고 항의 농성에 돌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사퇴 종용이 철회되면서 농성은 해소되었으나 이후에도 연구소와 연구원 간의 갈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고, 국책 연구소로서는 처음으로 연구소 내에 노동조합이 설립된다. 연구소 내 갈등이 장기화되자 전두환의 비서실장 출신인 허화평이 연구 소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허화평 체제하에서 또 다시 보고서 사전 검토 지시와 연구원을 파면하는 일이 반복해서 발생하자 연구소 노동조합은 전면 파업으로 대응하였다. 이 대립은 모든 국책 연구소의 연구 자율화와 민주적 운영의 문제로 확대되었고 정부 출연 연구소의 연대 파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허화평 연구 소장이 1989년 3월 농성 노조원을 전부 해고하면서 연구원들의 패배로 일단락되었다.

평가

현대사회연구소는 사회정화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출발하여 정부 정책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고 구체적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연구 활동을 주로 담당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연구소와 연구원 간의 갈등으로 인해 국책 연구소 최초로 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국책 연구소 노동조합 결성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또한 국책 연구소 내의 비민주적 운영, 연구의 자율성 침해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최초의 국책 연구소 연대 파업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한편, 허화평이 연구원들을 집단 해고한 이후 현대사회연구소는 허화평의 개인 연구소처럼 변질되었고 그 활동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2005년에는 명칭이 미래한국재단으로 변경되었다.

참고문헌

기타 자료

「전국서 1198명 면접 의식변화 조사결과 국민 80%가 성장 늦춰도 <민주실현> 갈망」(『경향신문』, 1982.11.25.)
「국민 64% <改憲유보> 支持」(『경향신문』, 1987. 4.16.)
「현대사회연 자율성 몸부림」(『동아일보』, 1988. 4.13.)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최종숙(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선임연구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