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익(閔泳翊)
그리고 타작기, 벼베기기계, 저울 등 농기구 18품을 구입하여 귀국하였다. 당시 부사는 홍영식(洪英植), 서기관은 서광범(徐光範), 수행원은 변수(邊樹 혹은 邊燧), 유길준(兪吉濬) 등 개화파 인사들이었다. 1884년 5월 유럽을 경유하여 귀국하였다. 그 뒤 혜상공국총판(惠商公局摠辦), 이조참의, 금위대장, 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884년 10월 친군영(親軍營) 실시 뒤 우영사(右營使)로 있으면서 개화파를 압박하였다. 그런데 그 해 12월 개화당의 김옥균 등이 주도한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에서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전신에 자상(刺傷)을 입었다. 그러나 묄렌도르프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미국인 의사 알렌(Allen, H. N.)의 치료를 받아 3개월 만에 친군영에 복직되었다. 그 뒤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