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리지(莫離支). 그의 증손자인 고자(高慈)의 묘지명에 의하면, 그의 선조는 주몽왕을 도와 고구려 건국에 공을 세운 이래 귀족가문으로 이어져오다가, 고식의 17대조 고밀(高密)이 고국원왕대에 모용씨(慕容氏)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고씨(高氏)를 사성받고 식읍 3,000호와 금문철권(金文鐵券)을 하사받는 등 대대로 공후장상(公侯將相)이 끊이지 않는 명문가문으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고식은 고구려 후기의 최고의 집권적 관직인 막리지를 역임하였으며, 그의 정치적 기반은 자손들에게도 이어져 아들 고량(高量)은 위두대형(位頭大兄)의 관등에 올라 책성도독(柵城都督)과 대상(大相)을 겸임하였으며, 손자 고문(高文)은 위두대형 겸 장군을 역임하는 등 고구려말기에 연개소문(淵蓋蘇文)가문에 버금가는 최고의 가문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고문이 당과의 전쟁 중에 가문을 이끌고 당에 투항하면서 그의 후손 고자 등은 당에서 출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