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관음대세지보살 입상 ( )

목차
관련 정보
금동관음세지보살입상
금동관음세지보살입상
조각
유물
고려시대의 보살상.
이칭
이칭
지순명금동관음대세지보살입상
목차
정의
고려시대의 보살상.
내용

2구. 각각 높이 8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에 복장(腹藏 : 불상의 뱃속에 봉안하는 유물)이 조사되어 1333년(충숙왕 복위 2)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두 보살상은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서 아직도 금색이 찬연한데, 아마도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좌우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조성되었던 것 같다.

불신은 두꺼운 천의(天衣)에 싸여 잘 드러나지 않지만 비교적 비만한 편이고, 착의 형태는 보살상의 일반적인 복장인 천의가 아닌 가운 같은 것을 입고 있다. 얼굴은 넓적하고 이목구비의 표현이 사실적이나 맑은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관음보살은 보관(寶冠)이 벗겨져 높이 묶어 올린 원나라풍의 보계(寶髻)가 드러났는데, 왼손의 검지와 중지 사이가 벌어진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정병(淨甁)을 들고 있었던 것 같다. 화려한 꽃무늬로 장식된 관을 쓰고 있는 대세지보살은 대세지보살의 특징적인 지물(持物)인 연꽃가지를 들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두 보살상은 양식적으로는 서산부석사금동관음보살좌상(1330년 명, 일본 대마도 관음사 소장)과 유사하고 조각 기법도 일치하여 고려시대 조각의 편년설정과 유파문제(流派問題)를 시사해 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이 보살상들에 표현된 화려한 목걸이와 영락(瓔珞 :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은 귀족 취향적인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이러한 세세한 장식적 표현은 1323년 서구방(徐九方)이 그린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일본 개인 소장)를 비롯한 당시의 불교회화에도 보이는 요소로서 조선 초기까지 계속 유행되었던 것 같다.

장륙사(莊陸寺)·파계사(把溪寺)·대승사(大乘寺)·은해사 운부암(雲浮庵) 등에 전해 오는 14, 15세기경의 조선 초기 보살상들이 지닌 장식적인 요소는 바로 이와 같은 고려시대 보살상 조각의 장식성이 더욱 심화된 것으로 볼 수 있어 주목된다.

참고문헌

『한국미술사(韓國美術史)』(대한민국예술원, 1984)
「고려후기단아양식(高麗後期端雅樣式)-신고전적양식(新古典的樣式) 불상(佛像)의 성립(成立)과 전개(展開)」(문명대, 『고문화』22,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83)
「14세기(世紀)의 기년명보살(紀年銘菩薩)에 대하여」(최성은, 『미술자료』32, 국립중앙박물관, 1983)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최성은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