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란 원래 정부의 창고 또는 역소(役所)의 의미였는데, 당대(唐代)부터 지방 행정구획의 명칭으로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초기 왕건(王建)의 후삼국 통일과 호족 지배 정책에 따라, 호족 세력이 강한 지역에 부가 설치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부는 상급지방 행정구획의 명칭으로 존속하였는데, 종2품관인 부윤(府尹)이 파견되는 부(府), 정3품관인 대도호부사가 파견되는 대도호부(大都護府), 종3품관인 도호부사가 파견되는 도호부가 있었다.
또한 전 왕조의 수도인 개성에는 특별히 개성 유수부(開城留守府)가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부가 설치된 곳은 시기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유수부가 설치된 곳은 경주 · 전주 · 영흥 · 평양 등 네 곳이었고, 대도호부가 설치된 곳은 안동 · 강릉 · 안변 · 영변 등 네 곳이었다.
도호부가 설치된 곳은 경기도에 수원 · 강화 · 부평 · 남양 · 이천 · 인천 · 장단 등 일곱 곳, 경상도에 창원 · 김해 · 영해 · 밀양 · 선산 · 청송 · 대구 등 일곱 곳, 전라도에 남원 · 장흥 · 순천 · 담양 등 네 곳, 황해도에 연안 · 평산 · 서흥 · 풍천 등 네 곳, 강원도에 회양 · 양양 · 춘천 · 철원 · 삼척 등 다섯 곳, 영안도에 경성 · 경원 · 회령 · 종성 · 온성 · 경흥 · 부령 · 북청 등 여덟 곳, 평안도에 강계 · 창성 · 성천 · 삭주 · 숙천 · 구성 등 여섯 곳으로 모두 44곳이다.
부는 군 · 현 등 하급지방 행정구역보다는 파견되는 관원 수, 생도(生徒)의 정원, 약부(藥夫) · 아전(衙前) · 외노비(外奴婢: 관청에 배속된 공노비)의 정원과 관둔전(官屯田) · 늠전(廩田) · 학전(學田) 등에서 우대되었다.
부에는 부윤 이외에도 종4품인 경력(經歷) 1인, 종5품인 도사(都事) 1인, 종6품인 교수(敎授) 1인이 더 파견되었으며, 대도호부 · 도호부에는 부사 이외에 교수 1인씩이 파견되었다.
부와 대도호부에는 유학생도(儒學生徒)가 각 90인, 의학생도(醫學生徒) · 율학생도(律學生徒)가 각각 16인, 14인씩이었다. 약부는 각 5인씩, 외아전의 수는 서원(書員)이 각각 34인, 30인씩, 일수(日守)가 44인, 40인씩이었다. 외노비의 수는 600구, 450구였다.
도호부는 그 보다 조금씩 적어서 유학생도가 70인, 의학 · 율학 생도가 각각 12인, 약부 4인, 외아전은 서원이 26인, 일수가 36인, 외노비는 300구였다.
또한 관둔전, 늠전( 아록전 · 공수전), 학전 등 지방 재정의 기반이 되는 토지도 각각 20결, 50결, 15결, 10결씩 지급되어 군 · 현보다는 우대되었다.
부라는 지방 행정구획의 명칭은 각 시기 및 지역에 따라 읍호의 승강(陞降)이 있어서 숫자상으로는 약간의 변동이 있었으나 조선 말기까지 존속되었다.
1895년 근대적인 지방제도로 개편하면서 전국을 23개 부로 나누고, 그 밑에 군을 두었으나, 이듬 해 23부를 13도로 개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