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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조선 시대 지방 행정구획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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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 조선 시대 지방 행정구획의 명칭.
내용

목이란 원래 고대 구주(九州)의 장관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뒤에 의미가 바뀌어 지방장관을 뜻하는 용어가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초기 전국 12목에 외관(外官)을 파견함으로써 목이 비로소 지방 행정구획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상급 지방 행정구획으로서 목이 설치되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목은 정3품관인 목사가 파견되어 지방 행정의 소중심적인 구실을 하였다. 목에는 목사 이외 종6품관인 교수(敎授)가 파견되었고, 특별히 광주(廣州) · 여주에는 종5품관인 판관(判官)이 더 파견되었다.

목이 설치된 곳은 경기도에 광주 · 여주 · 파주 · 양주, 충청도에 충주 · 청주 · 공주 · 홍주, 경상도에 상주 · 진주 · 성주, 전라도에 나주 · 제주 · 광주, 황해도에 황주 · 해주, 강원도에 원주, 평안도에 안주 · 정주 · 의주 등 모두 20개 지역이었다.

목은 계수관(界首官)으로서 지방 행정의 소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하급 지방 행정구획인 군 · 현보다는 여러 가지로 우대되었다. 즉, 유학생도(儒學生徒)의 수가 90인, 의학생도(醫學生徒) · 율학생도(律學生徒)의 수가 각각 14인으로서 군현보다 많았고, 외아전의 수는 서원(書員)이 30인, 일수(日守)가 40인, 외노비의 수는 450구가 정원으로 주어졌다. 관둔전(官屯田) · 아록전(衙祿田) · 공수전(公須田) · 학전(學田)은 부(府)와 같이 20결 ·50결 ·15결 ·10결이 각각 지급되었다.

목은 1895년 근대적인 지방 제도 개편으로 부 · 목 · 군 · 현이 모두 군이 됨에 따라 지방 행정구획으로서의 명칭은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
『대전회통(大典會通)』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조선시대(朝鮮時代) 지방행정제도(地方行政制度)』(이존희, 일지사, 1990)
『한국중세사회사연구(韓國中世社會史硏究)』(이수건, 일조각, 1984)
「조선전기(朝鮮前期)의 외관제(外官制)」(이존희, 『국사관논총(國史館論叢)』8, 1989)
「조선전기(朝鮮前期)의 외관제(外官制)」(이존희, 『국사관논총(國史館論叢)』8, 1989)
「조선후기(朝鮮後期)의 외관제(外官制)」(김호일, 『국사관논총(國史館論叢)』8, 1989)
「고려시대(高麗時代) 군현(郡縣) 지배체제(支配體制)와 구조(構造)」(박종기, 『국사관논총(國史館論叢)』4,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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