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천상은 1276년 송나라 수도 임안(臨安)이 함락된 뒤 단종(端宗)을 받들고 근왕군(勤王軍)을 일으켜 원나라의 군사에 대항하였으나, 1278년 사로잡혀 처형된 사람이다. 그가 옥중에서 지은 「정기가(正氣歌)」는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와 같이 그의 절개를 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죽기 전 그의 허리띠 속에서 “공자는 인(仁)을 이루는 일을 말씀하였고, 맹자는 의(義)를 취하는 일을 말씀하였다. 오직 의를 다하는 것이 인을 이루는 첩경이다. 나는 성현의 글을 읽었으니 배운 바가 무엇인가,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성현에 대해 부끄러운 바가 없으리라”라는 글이 나왔는데, 그 중의 “공자는 인을 이루는 일을 말씀하였다(孔曰成仁)”라고 한 문구에서 이 책의 이름이 붙여졌다.
1책. 목판본. 1581년(선조 14)에 간행되었다.
1903년에 쓴 송병선(宋秉璿)의 서문이 책머리에 있고, 그 다음에 문천상에게 상흥연간(祥興年間)에 내린 조서의 일부분인 「상흥장유문승상조략(祥興奬諭文丞相詔略)」을 싣고, 이어 공양왕 때 정몽주에게 내린 교서의 일부분인 「공양왕장유정충의백교략(恭讓王奬諭鄭忠義伯敎略)」을 실었다.
그 다음 문천상의 화상(畫像), 자찬(自贊)의 글·유묵(遺墨), 평소 그의 언행과 타인의 평, 그리고 2편의 제문의 순으로 되어 있다. 이어서 정몽주의 화상·유묵, 평소 그의 언행과 타인의 평, 그리고 이황(李滉)의 「임고서원제문(臨皐書院祭文)」, 이색(李穡)의 정몽주에 대한 시(詩)의 순서로 되어 있고, 그 다음 편 저자 윤두수의 발문이 실려 있다.
윤두수는 발문에서 “연경(燕京)에 사신으로 갔다 올 때 삼충사(三忠祠)에서 문산 선생의 초상을 보고는 늠름한 기상을 느꼈고, 송도(松都)에서 포은 선생의 화상을 보고도 삼충사에서와 다름 없이 경모의 마음이 일었다. 사람을 감발시키는 것이 독서보다 더 나을 것 같아 그들의 초상과 유묵을 모아 책을 편집하였다. 두 분의 생애는 서로 흡사하다. 즉, 장원급제를 한 것이나 정승으로 국사를 맡은 것이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것이 그것이다. … 두 분 선생이 시비·이해·경중을 분별하는 것이 생사를 초월하셨는데, 이는 바로 인을 이루는 것(成仁)이다. 어찌 위대하다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이 책을 통해 정몽주가 조선 선비 사이에서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祖)’로 추앙되는 사정과 주자학(朱子學)이 가지는 의리(義理)의 정신 내지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정신, 나아가 유교의 역사관과 사회관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