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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학자, 이희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4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이희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4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754년(영조 30) 이희조의 아들 이양신(李亮臣)이 간행하였다. 권말에 문인 이태중(李台重)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32권 15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100여 수, 권2∼4에 소(疏) 45편, 권5∼16에 서(書) 259편, 권17∼20에 축문 4편, 제문 20편, 애사 5편, 서(序) 5편, 기(記) 10편, 제발(題跋) 18편, 권21∼27에 유고문(諭告文) 6편, 묘지명 18편, 묘갈명 4편, 비(碑) 4편, 묘표 9편, 유사 1편, 전(傳) 4편, 행장 4편, 권28∼32에 잡기 2편, 우암어록 1편, 차기(箚記) 4편, 잡저 10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 가운데 권2의 「재사직명겸변대소유침사문소(再辭職名兼辨臺疏謬侵師門疏)」는 송시열(宋時烈)이 남인에게 몰렸을 때 그를 변호하는 내용이다. 「상동궁사직변무서(上東宮辭職辨誣書)」와 「상동궁사대사헌잉위사문변무서(上東宮辭大司憲仍爲師門辨誣書)」는 죽은 송시열에 대한 논죄 사실을 변론하고, 윤휴(尹鑴)·윤선거(尹宣擧)를 비판한 내용이다.

서(書)는 주로 사우문인(師友門人)과 친척들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그 중에는 성리학·사례(四禮)·시사 등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권5의 「상답우암선생서(上答尤庵先生書)」 20편 가운데에는 『중용』·『심경』·『맹자』에 대한 문목(問目)이 있고, 특히 『중용』의 인심도심(人心道心), 『맹자』의 호연장(浩然章)에 대한 질문이 주목된다.

권6의 「상우암선생서」 3편에서는 회니지사(懷尼之事)에 대해 윤증(尹拯)·윤선거·윤휴 측의 상소 등 각종 자료를 인용해가며 스승을 변론하는 장문의 편지가 들어 있다. 권6의 박세채(朴世采)에게 올린 편지에서도 역시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이황(李滉)의 ‘이도설(理到說)’ 및 『심경』·『가례』에 대한 질의·응답과 그밖에 당시 시사에 대해 논하고 있다.

권7의 서(書)는 당시 노론 대신들인 김수흥(金壽興)·김수항(金壽恒)·민유중(閔維重) 등에게 보낸 편지와 동문인 권상하(權尙夏)와 학문에 대해 주고받은 편지다. 그 중에서도 권상하와의 내왕 서신은 분량도 많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내용이 『중용』·『태극도설(太極圖說)』·『맹자』 등에 대한 질의·응답과 상제례(喪祭禮)에 대한 의견 교환이므로 학술상 자료로서 중요하다.

권8의 「여김중화서(與金仲和書)」 6편은 심(心)의 지각(知覺)에 대한 주자의 설을 전후설(前後說)로 나누어 언급하여 자세히 분석한 것이다. 「답이군보서(答李君輔書)」 13편은 『대학』에 대해 조목조목 자세히 다룬 것을 비롯하여, 제례와 『심경』, 그리고 이황의 ‘사칠설(四七說)’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권10의 서 33편은 주로 상제례 문제에 대한 응답인데, 김장생(金長生)의 『의례문해(疑禮問解)』 등 예서와 송시열의 예설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답민정능서(答閔靜能書)」에서는 양역(良役)·결포(結布)·호포(戶布) 문제를 다루고 있다. 권11의 서 18편 가운데 김유(金楺)에게 준 1편은 당시 현안 문제였던 호포·결포·결역(結役)·대동미(大同米)에 대한 논란이다.

권12의 서 13편 중 「답민성유진원서(答閔聖猷鎭遠書)」의 내용도 역시 결포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며, 권13의 서 17편도 상제례와 예설에 대한 질의·응답이다. 「답김도이겸시삼주황강(答金道以兼示三洲黃江)」에서는 주자와 장식(張栻) 등의 심의 지각에 관한 학설을 인용하여 김도이(金道以)에게 답변해 주고 있다.

권14의 서도 대부분 상제례에 관한 문답이다. 권15의 서 36편 중 「답정원유언환(答鄭元揉彦煥)」은 『심경』 내용에 대한 해설이다. 그밖에 「답신명윤(答申明允)」·「답조사휘(答趙士輝)」·「답이자박(答李子博)」 등도 각종 경전 문구에 대한 질의·응답이다. 권16의 서는 친척 가운데 손아랫사람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이상의 편지들은 그 중요 내용이 성리학·예설·시사가 대부분인데, 성리학에서는 『심경』을 중심으로 한 심론(心論), 예설에서는 『가례』를 중심으로 한 상제례, 시사에서는 당시의 당론(黨論)과 세정(稅政)이 주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석담요금정서(石潭瑤琴亭序)」는 저자가 해주목사로 있을 때 석담의 이이(李珥)의 유적을 찾아 ‘요금정’을 세운 내력을 적은 것이다. 「서율곡유지사초본후(書栗谷柳枝詞草本後)」는 이이가 원접사(遠接使)로 황주에 갔을 때 기생 유지(柳枝)와의 사이에 있었던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다.

유고문은 모두 6편으로 저자가 지방관으로 있을 때 백성에게 효유(曉諭)한 것이다. 잡기는 저자가 18세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의 독서기(讀書記)와 당시 학자들과의 학술 및 시사에 관한 토론을 조목조목 적어둔 것을 모은 것이다. 잡저 10편 중 학문에 관한 것은 「중용설(中庸說)」·「채전인심도심변(蔡傳人心道心辨)」·「논오관지곤득편(論吳貫之困得編)」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저자는 송시열의 문인 중에서도 걸출한 인물이었고, 또 당시 시사에 대한 식견도 높았을 뿐 아니라 성리학·경학 등에도 박학해, 이 책은 당시 사회와 학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도서해제(韓國圖書解題)』(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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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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