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후명 ()

문경 임하당 신후명 고문서 / 임하당문집 권수
문경 임하당 신후명 고문서 / 임하당문집 권수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형조참판, 충청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천휴(天休)
임하당(林下堂)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8년(인조 16)
사망 연도
1701년(숙종 27)
본관
평산(平山)
주요 관직
병조좌랑|형조참판|충청감사
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형조참판, 충청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천휴(天休), 호는 임하당(林下堂). 신여길(申汝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정랑 신상철(申尙哲)이고, 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신형구(申衡耉)이며, 어머니는 참의 성시헌(成時憲)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승문원부정자로 처음 벼슬길에 올라 1676년(숙종 2)에는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듬해에 도당(都堂)이 선발하는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으나, 대사간 이원정(李元禎)으로부터 유아(儒雅: 유교의 바른 도리)가 아니라는 탄핵을 받았다.

그 뒤 정언(正言)·지평(持平)·부수찬(副修撰)·장령(掌令)·사간·강춘도감사(江春道監司)·승지·형조참판을 거쳐 충청감사가 되었다. 충청감사 재직시에 친구의 사설 도판(屠販: 짐승을 잡아 파는 일)을 허락해주었다는 죄로 좌의정 윤지선(尹趾善)의 탄핵을 받았으나, 참판으로 접반사(接伴使)가 되기도 하였다.

1698년에 감사로 재직할 때 도내 산을 점유하여 묘막(墓幕: 산소 근처에 지은 작은 집)을 미리 설치하였다는 이유로 민진원(閔鎭遠)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러나 곧 동지의금부사에 복직되어 이성휘(李聖輝)·송성(宋晟) 등의 옥사(獄事)를 극론하는 소를 올렸다.

그러나 1700년에 당상(堂上)으로서 죄인 김인지(金麟至)를 변호하다가 정언 윤헌주(尹憲柱)의 탄핵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대동야승(大東野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해좌집(海左集)』
『순암문집(順菴文集)』
집필자
주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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