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평화동 삼층석탑 ( )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
건축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3층 석조 불탑. 보물.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3층 석조 불탑. 보물.
개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석탑은 안동역에서 서북쪽 방향으로 약 2㎞ 거리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안동시 평화동 71-108번지이다. 이 탑은 얼마 전까지 지정당시와 지금의 지명이 달라 ‘옥동 삼층석탑’으로 불리다가 지명을 따라 평화동 삼층석탑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석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지닌 신라 전형양식에 속하나 갑석의 기울기가 비정상적으로 급격한 점, 기단부의 결구법과 구성방식이 특이한 점에서 지방화된 석탑양식을 보여준다.

역사적 변천

석탑이 위치한 곳은 오래전부터 민가가 밀집되어 있어 사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구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석탑의 위치도 일제강점기에 철도관사를 건립하면서 원 위치에서 약 50m 정도 이동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해당 석탑이 위치한 사찰의 범위나 방향, 배치 등은 전혀 알 수 없고 다만 목이 없어진 석불이 남아있다. 석불은 좌상으로 통견의 법의를 착용하였으며,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다. 이 불상은 원래부터 이 탑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탑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곳을 『영가지(永嘉誌)』권6, 고적조(古蹟條)에 등장하는 부천사(富泉寺)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화동 석탑에서 동북쪽으로 약 450m 지점 있는 안동 안기동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과 안동 안기동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이 옛 안기역 앞에 있어 지형적으로 통한다. 특히 현재 층수는 3층이지만 초층탑신에 감실이 마련된 안기동 삼층석탑은 불상을 안에 모셨다는 『영가지』의 기록과 부합하는 면이 있어 이곳이 원래 부천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평화동 삼층석탑이 위치한 곳의 절 이름을 알기 어렵다.

내용

석탑의 기단은 상·하 이중기단으로 면석의 구성이 일관성이 없으며 부재의 크기도 제각각 달라 후대에 수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면석, 갑석이 각각 별석으로 되어 있다. 지대석은 5매의 장대석을 이용하여 하대면석을 받치고 있다. 하층면석은 판석을 이용하였으나 남서쪽의 면석은 귀틀석이 사용되어 총 6매로 결구하였다. 면석의 이음은 통일성이 없다. 면석 모서리에는 우주를 새겼으며 각 면 2주씩의 탱주를 두어 3분하고 면석 내부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넣었다. 하층기단 갑석은 총 7매의 돌로 되어 각 면 1∼2곳의 이음이 나타나는데, 부재의 크기가 서로 다르고 각 면에 나타나는 연결 이음도 일정치 않다. 갑석은 상면에 1단의 상층기단 면석 받침만을 두고 그 하단에 갑석의 내밀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짧게 마무리되었다.

상층 기단면석은 총 8매로 결구되었는데, 각 면 면석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고 이음방식도 일정치 않아 통일성이 없으며 양쪽에 우주와 중앙에는 2주의 탱주를 두었다. 상층 기단갑석은 3매로 구성되었으며 남측면으로 1매석을 두어 이음이 없으며 동서북면에는 중앙부에 이음이 있다. 갑석 하단에는 1단의 부연이 있고 상면 중앙에는 초층탑신을 받치기 위한 호·각형의 2단 받침이 마련되었다. 이 석탑의 기단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단부쪽으로 갈수록 나타나는 급격한 기울기와 모서리에 나타나는 합각선의 표현과 과장된 귀솟음이다.

탑신은 3층으로, 각 층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씩 총 6매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석은 각층 모두 네 모서리에 우주를 모각하였으며, 초층탑신 남면에는 양각으로 네모난 테두리를 둘러 문비를 마련하였다. 문비 내부 중앙에는 좌우로 문고리를 부착했던 것으로 보이는 원공이 남아 있다.

옥개석은 1·2층 탑신받침이 5단인 것에 비해 3층은 4단으로 축소되었고 상면의 탑신받침도 1·2층은 1단인데 비해 3층의 노반받침은 생략되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기울기가 완만한 편이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부에서 합각선과 만나 강한 반전을 보이고 있다. 각 옥개석 하단의 처마단부와 옥개받침 사이에는 물끊기 홈이 남아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다. 노반과 복발은 각각 따로 제작되었는데, 노반은 방형 육면체로 상단부에 1단의 돌림띠가 있다. 복발은 납작한 편구형으로 돌림띠 장식은 없고 중판 4엽의 연화문이 복련으로 처리되었다. 노반이나 복발의 찰주공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특징

탑을 구성하는 부재의 숫자와 조합을 살펴보면, 탑신부에 있어서는 탑신과 옥개가 각각 1매씩의 통일성을 보이고 있으나 상하층 기단부에 쓰인 부재의 형태, 숫자, 조합방식은 일반적 신라석탑의 구성요소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변화의 양상을 엿볼 수 있는데, 우선 하층기단 갑석의 형태와 상층갑석의 과장된 기울기와 합각에서의 솟음 기법이 주목된다. 또한 탑신부에 있어서도 옥개석 상단의 탑신받침이 1단으로 축소되었고 3층 옥개상면에는 노반받침이 사라지는 등의 간략화가 나타나고 있다. 탑의 비례적 측면에서는 초층탑신의 너비에 비해 높이를 낮추고 옥개석을 넓게 설정함으로써 가벼운 상승감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이 석탑에서 나타나는 전체적인 표현의지는 전형양식의 구현에서 벗어난 부분적 기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느낌이다. 비록 상하층 기단에 2:2의 탱주가 나타나지만 하층기단 갑석의 변형과 하층기단면석에 등장하는 안상의 부조는 9세기 이후 나타나는 신라석탑의 주요한 의장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조형기법과 세부의장을 조합해보면 9세기 중반경의 탑으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가진 전형양식의 신라석탑이나 기단의 결구법은 일관성이 없고 상하층갑석의 표현 방식에서 기존 신라석탑과의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탑신 또한 통일성보다는 변화가 엿보이고 옥개석 처마의 폭을 과대하게 설정하고 탑신의 높이를 낮추어 가벼운 상승감이 느껴진다. 비록 상하층 기단 2주씩의 탱주를 지니고 있으나 상층갑석에도 나타나는 과장된 귀솟음이나 하층기단 갑석의 특이한 구성방식, 하층기단면석에 등장하는 안상의 표현 등은 이 탑이 지닌 가장 큰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전체적 안정감과 통일성에 중점을 두는 8세기 석탑양식에서 벗어나 세부적 장식성에 치중하는 9세기 이후 지방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석탑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영가지』
『한국사지총람』하(문화재청, 불교문화재연구소, 2010)
「경북 안동지역 불탑의 편년과 특징」(신용철, 『한국민족문화』34,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09)
집필자
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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