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의 선승인 영가 현각(永嘉玄覺, 665∼713)이 저술한 『선종영가집』에 대해 함허 기화가 주석을 붙인 것이다. 현존하는 최고본(最古本)은 1552년(명종 7)에 함경도 구룡산 도성암(道成庵)에서 간행된 것이다. 주로 화엄과 선의 입장에서 주석하고 있다.
기화의 자서(自序)에 의하면, 문인인 도암(道庵)이 『영가집』을 읽고 각 장마다 게송을 붙여주기를 원하였다고 한다. 기화가 붙인 게송은 서문에 들어 있다.
2권 1책. 간행시기와 간행지는 알 수 없다. 『한국불교전서』 제7책에 수록되어 있다.
『선종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라고도 한다. 『선종영가집』은 선을 닦는 요점과 그 과정을 서술한 것이다. 전부 10장으로 이루어졌는데, 모도지의(慕道志儀)·계교사의(戒憍奢意)·정수삼업(淨修三業)·사마타송(奢摩他頌)·비파사나송(毘婆舍那頌)·우필차송(優畢叉頌)·삼승점차(三乘漸次)·사리불이(理事不二)·권우인서(勸友人書)·발원문(發願文)의 순서이다.
이 『선종영가집』에 대해서 송대의 진수 정원(晋水淨源, 1011∼1088)이 과문(科文)을 짓고 행정(行靖)이 주석을 붙였다. 이를 『선종영가집과주(禪宗永嘉集科註)』라고 한다. 『영가집설의(永嘉集說誼)』는 이 『선종영가집과주』에 대해서 함허 기화가 다시 해석을 붙인 것이다. 기화의 설의는 원래 『영가집』과 따로 전해지다가 세조(世祖)가 신미(信眉)·홍준(弘濬) 등에게 명하여 『영가집』 제본(諸本)의 동이(同異)를 교정하고, 김수온(金守溫)과 함께 그 교정본에 기화의 설의를 편입케 함으로써 『선종영가집과주』와 합본되었다.
구성은 권상에 모도지의에서 비파사나까지를 해석하고, 권하에 우필차송에서 발원문까지를 주석하고 있다. 먼저 『영가집』의 본문을 싣고 그 뒤에 차례로 행정의 주와 기화의 설의를 붙이고 있다.
기화는 주로 화엄과 선의 입장에서 『영가집』을 해석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사리불이(事理不二)를 해석하면서 의상(義湘)의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라든가 법장(法藏)의 ‘즉본시말 즉말시본(卽本是末 卽末是本)’ 등 화엄적 구조를 동원하여 무명(無明) 그대로가 법성(法性)임을 논증하고 있다. 나아가 선적인 표현도 많이 보이는데, 삼승점차(三乘漸次) 다음에 사리불이(事理不二)가 이어지는 순서를 설명하는 생기(生起) 부분에서 ‘무변찰경자타불격어호단 십세고금시종불리어당념(無邊刹境自他不隔於毫端, 十世古今始終不離於當念)’이라는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의 말을 인용하여 설의를 붙이고 있다. 또한 사리불이의 본문은 미오불이(迷悟不二)와 가언전지(假言詮旨)의 내용이 골격을 이루는데 각각에서 선시(禪詩) 1수와 조산 본적(曹山本寂, 840~901) 선사의 법문을 써서 설의하고 있다.
『선종영가집』에는 선·천태·화엄의 사상이 골고루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가집설의』가 찬술되고, 그것이 1463년(세조 8)에 간경도감에서 언해된 후 선종의 학습서로서 널리 유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