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의 선승인 영가(永嘉) 현각(玄覺, 665∼713)의 법문을 재가제자 경주자사(慶州刺史) 위정(魏靖)이 스승의 생전 법문을 10편으로 엮은 것이 『선종영가집』이고, 이 책에 송나라 석벽(石壁) 행정(行靖)이 주석(註釋)을 달고 진수(晉水) 정원(淨源, 10111088)이 주1한 것이 『선종영가집과주(禪宗永嘉集科註)』이며, 이 『선종영가집과주』에 함허(涵虛) 기화(己和, 13761433)가 제자 도암(道菴)의 요청으로 설의(說誼)를 붙인 것이 『선종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이다. 이 『선종영가집과주설의』를 흔히 『영가집설의』라고 부른다. 그리고 세조가 『선종영가집』에 구결을 달고 신미대사와 효령대군이 우리말로 풀이한 『선종영가집언해(禪宗永嘉集諺解)』도 간행되었다.
『선종영가집과주설의』는 서설(序說), 서(序),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설은 기화의 글이며 「설의」를 짓게 된 배경과 각 장에 대한 게송이 실려 있다. 서는 경주자사 위정의 글이며 이 책을 편찬하게 된 배경을 적고 있다. 본문은 영가 현각의 법문과 「과단」, 「주석」, 「설의」가 실려 있다. 본문은 제1 모도지의(慕道志義), 제2 계교사의(戒橋奢意), 제3 정수삼업(淨修三業), 제4 사마타 게송, 제5 위빠사나 게송, 제6 우필차(優畢叉) 게송, 제7 삼승점차(三乘漸次), 제8 사리불이(事理不二), 제9 권우인서(勸友人書), 제10 주2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각의 각 법문마다 석벽 행정의 주석이 붙어 있고, 또 이어서 기화의「설의」를 실었다. 기화의 「설의」는 본문에 45회 실려 있다. 제1장이 시작하기 바로 앞에 4회, 제2장에 1회, 제3장에 2회, 제4장에 8회, 제5장에 4회, 제6장에 11회, 제7장에 3회, 제8장에 7회, 제9장에 5회의 설의가 있으며 제1장과 제10장에는 「설의」가 없다.
기화는 주로 주3과 선의 입장에서 『선종영가집』을 해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리불이를 해석하면서 화엄종의 조사인 신라시대 의상(義湘, 625702)의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라든가 당나라 현수(賢首) 법장(法藏, 643712)의 ‘즉본시말 즉말시본(卽本是末 卽末是本)’ 등 화엄적 구조를 동원하여 무명(無明) 그대로가 법성(法性)임을 논증하고 있다. 나아가 선의 입장에서도 설명하고 있는데, 삼승점차 다음에 사리불이가 이어지는 순서를 설명하는 주4 부분에서 선사인 대혜(大慧) 종고(宗杲, 1089∼1163)의 말을 인용하여 「설의」를 붙이고 있다. 또한 사리불이의 본문에서 조산(曹山) 본적(本寂, 840~901)의 법문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기화의 「설의」는 원래 『선종영가집』과 별도로 전해졌는데, 세조가 1457년에 신미(信眉) · 홍준(弘濬) 등에게 명하여 당시 유통되던 여러 종류의 『선종영가집』의 주5를 교정하고, 김수온(金守溫)과 함께 그 교정본에 기화의 「설의」를 편입케 함으로써 『선종영가집과주설의』가 편찬되었다.
『선종영가집과주』는 1381년(우왕 7) 충주 청룡사본, 1499년(연산군 5) 경상 합천 석수암본, 1525년(중종 20) 전라 순천 대광사본, 1542년(중종 37) 황해 토산 석두사본, 1552년(명종 7) 함경 고원 도성암본, 1684년(숙종 10) 경상 울산 운흥사본 등이 있다.
『선종영가집과주설의』는 1501년(연산군 7) 경상 합천 봉서사본, 1520년(중종 15) 경상 안음 장수사본, 1568년(선조 1) 충청 보은 복천사본, 1570년(선조 3) 경상 하동 신흥사본, 1572년(선조 5) 은진 쌍계사본, 1573년 평안 영변 보현사본, 1575년(선조 8) 황해 장연 천불사본 등이 있다.
『선종영가집언해』는 1464년(세조 10) 간경도감본, 1520년(중종 15) 경상도 안음 장수사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