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이진(而晉), 호는 목오(木塢). 유관( 兪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호(兪灝)이다. 아버지는 유대록(兪大祿)이며, 어머니는 김수원(金秀源)의 딸이다. 전라감사를 지낸 유석증(兪昔曾)의 동생이다.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승지에까지 이르렀다. 광해군이 대비(大妃)를 폐할 때 정청(庭請: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 대신 등이 백관을 거느리고 궁궐 뜰에서 의견서를 올린 뒤 국왕 전교를 기다리는 것)에 참여하였다.
당시의 선비들이 유진증 형제가 벼슬을 하게 된 계기를 변충길(邊忠吉)이라는 자의 덕으로 평하고 있었다. 변충길은 사복시(司僕寺)에서 말을 키우던 자인데, 작은아버지인 참판 유대정((兪大禎)이 1610년(광해군 2)에 동지하절사(冬至賀節使)로 연경(燕京)에 갈 때 변충길을 군관으로 데리고 갔다.
천한 종이 연경에 가는 군관이 된 것도 전에 없는 일이었다. 광해군의 정치가 어지러울 때 변충길이 딸을 궁중에 바쳐서 군(君)의 사랑을 얻어 천한 신분으로서 횡성현감이 되었고, 유석증이 두번이나 나주목사가 된 것과 유진증이 승지가 된 것은 모두 변충길의 힘이라 하여 사론(士論)이 애석해하였다.
인조반정으로 딸은 죽임을 당하였고, 변충길은 벼슬을 폐하여 서인이 되었다. 이때 좌승지였던 유진증은 홍문관에서 논박되어 벼슬을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