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였으며, 효심이 깊어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하다 상복을 벗기 전 죽음을 맞이한 학자.
이칭
여용(汝容)
죽파(竹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30년(중종 25)
사망 연도
1564년(명종 19)
본관
청주(淸州)
주요 관직
사천현감|연일현감
정의
조선 전기에,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였으며, 효심이 깊어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하다 상복을 벗기 전 죽음을 맞이한 학자.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여용(汝容), 호는 죽파(竹坡).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아우는 정구(鄭逑)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두문불출하고 독서에만 열중하였고, 당대의 학자들과 교유하는 것도 즐기지 않았다. 또한,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컸고 아버지가 죽자 밤낮으로 슬퍼한 나머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상복을 벗기 전에 35세로 죽었다.

참고문헌

『한강집(寒岡集)』
집필자
조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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