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소 권28~30, 권100~102 ( , )

불교
문헌
송나라 승려 정원이 주해한 송판 화엄경소 목판으로 1087년에 인출한 불교 경전. 주석서 · 사찰본 · 선장본.
이칭
이칭
주화엄경소(注華嚴經疎)
문헌/고서
편찬 시기
11세기말
간행 시기
14세기경
저자
징관
편자
정원
권책수
120권
권수제
大方廣佛華嚴經疏
판본
목판본
표제
大方廣佛華嚴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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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대방광불화엄경소』 권28~30, 권100~102는 송나라 화엄학승인 정원(淨源, 1011~1088)이 80권본 『화엄경』 본문을 나누고 그 아래에 80권본 『화엄경』에 대한 징관(澄觀, 738~839)의 주석서인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의 해당 부분을 실은 총 120권의 주석서 중 제28~30권, 제100~102권이다. 보물 제892호이다.

정의
송나라 승려 정원이 주해한 송판 화엄경소 목판으로 1087년에 인출한 불교 경전. 주석서 · 사찰본 · 선장본.
개설

보물 제892호. 이 문헌은 송나라 화엄학승인 정원(淨源, 10111088)이 80권본 『화엄경』 본문을 나누고 그 아래에 80권본 『화엄경』에 대한 징관(澄觀, 738839)의 주석서인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의 해당 부분을 실은 총 120권의 주석서 중 제2830권, 제100102권에 해당한다.

참고로 80권본 『화엄경』은 주본(周本) 『화엄경』이라고도 하며 당 측천무후(則天武后)가 국호를 주(周)로 정했을 때 한역된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모두 80권으로 이루어져 80권본 『화엄경』 또는 『팔십화엄경』이라고도 하고,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359~429)가 418~420년에 번역한 진본(晉本) 『화엄경(華嚴經)』에 이어 새로 번역한 것이다. 이에 대한 주석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징관의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이다.

의천은 송나라 유학 시절 당시 화엄학의 대가인 정원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의천이 혜인원에 머무는 동안 정원에게서 정원 자신이 엮은 『대방광불화엄경소』 1질 120권을 기증받았다. 의천은 귀국하기 전에 그 전질(全帙)의 판각을 항주의 각수 엄명(嚴明) 등에게 주문하였고, 정원은 1087년(선종 4) 3월 송 선상(船商) 서전(徐戩) 등을 통해 모두 2,900여 판에 이르는 목판을 고려의 의천에게 전달하였다.

이 목판은 조선시대 1424년(세종 6)에 대장경판을 달라는 일본의 끈질긴 요청에 이 목판을 대신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목판들은 일본 교토 쇼코쿠사[相國寺]에 비치되었으나, 후에 화재로 전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를 통한 동양 3국의 문화 교류 실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 권 제2830, 권 제100102는 『대방광불화엄경소』 120권본 전체 목판(木板)을 14세기에 개성(開城)에서 인출(印出)한 것 중에서 잔존(殘存)하는 일부로, 6권 2책으로 된 선장본(線裝本)이다. 현재 (재)현담문고가 소장하고 있다.

서지적 사항

목판본. 선장본(線裝本).

『대방광불화엄경소』 권 제28~30의 판식(版式)은 테두리마다 하나의 검은 선을 돌린 상하단변(上下單邊)이고, 책 크기는 42.1㎝✕18.2㎝, 반곽(半郭)의 크기는 23.3㎝✕12.4㎝이다. 본문에는 계선이 있으며, 반엽(半葉) 10행 20자에 주(註)는 소자쌍행(小字雙行)으로 되어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소』 권 제100~102의 서지 형태는 모두 위와 같으나, 책 크기 34.4✕18.4㎝, 반곽(半郭) 크기 23.3✕13.7㎝로 약간 차이가 나며, 본문의 행자 수 또한 반엽(半葉) 10행 21자로 되어 있다.

권 제28 표지의 제첨(題簽)에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등이 금니(金泥)로 필사(筆寫)되어 있다. 권수제(卷首題)의 다음 줄[行]에는 ‘청량사문징관술 진수사문정원록소주경(淸凉沙門澄觀述 晉水沙門淨源錄疏注經)’으로 되어 있어서, 이 책이 화엄경의 주해본(註解本)임을 기록하고 있다.

권 제30의 말엽(末葉)에는 ‘전라도 부안군 재산면 청련암(全羅右道 扶安郡 在山面 靑蓮菴)’이라는 묵서(墨書)가 있어, 이 책이 조선 후기 18세기 무렵에 전라도 청련암에 소장(所藏)되어 전래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내용 및 저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고 약칭(略稱)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不二)’라는 것을 중심 사상(中心思想)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의 불교 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러한 『화엄경』 80권본에 소(疏)를 저술한 당(唐)의 승려 징관은 중국 화엄종(華嚴宗)의 제4조(四祖)로서 현수법장(賢首法藏, 643~712)의 화엄교학(華嚴敎學)을 부흥시킨 중국 화엄학의 큰 이론가[大理論家]였다.

의의와 평가

대각 국사 의천의 요청으로, 중국 송(宋)에서 판각되어 1087년경에 고려에 수입된 ‘ 『화엄경소』 120권’ 목판(木板)은 『주화엄경판(注華嚴經板)』으로 지칭되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일본이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목판을 달라고 조선 조정에 억지를 부리듯 요청할 때, 세종은 1424년(세종 6)에 팔만대장경판 대신 이 『주화엄경판』을 일본 사신에게 주어 돌려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일본이 해인사에 있는 고려재조대장경판을 일본으로 가져가려는 욕구가 매우 강렬하였음에도, 당시 조선이 유교 국가였지만 또한 우리 전통의 불교 유산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이 일본으로 유출되지 않았던 역사적 사례를 볼 수 있다.

요컨대, 고려시대 중국 송(宋)나라에서 판각된 『주화엄경판』은 고려시대에 잘 보존되었다가, 조선 세종 때 일본과의 선린 외교(善隣外交)의 측면에서 일본으로 전래됨으로써, 불경 연구의 목판을 통한 한(韓) · 중(中) · 일(日) 삼국의 문화 교류의 대표적인 사례 및 그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그 중요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문화재대관-전적-』(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86)
남권희, 『고려시대 기록문화 연구』(청주고인쇄박물관, 1994)

논문

김성주, 「『화엄경』 권제35의 성격과 명칭」(『국제언어문학』, 국제언어문학회, 2007)

인터넷 자료

국가기록유산(www.memorykorea.go.kr)
국가유산청(www.khs.go.kr)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집필자
박보람(충북대학교 교수, 화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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