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불교를 시대 순으로 분류하면, 원시 불교(原始佛敎) · 부파 불교(部派佛敎) · 대승불교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인도의 불교는 하나의 교리를 두고 시대별 · 종파별로 각각 다른 주장을 펼쳐 불교를 공부하는 후대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또한 중국의 불교를 종파 불교라고 규정짓듯이, 중국에 이르러 불교는 하나의 교리에 대한 각 종파 나름의 주장에 따라 종파들 간에 이론과 실천 수행의 차이가 극에 달하였다.
이러한 종파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나라에도 처음에는 그대로 전래되었다. 그러나 삼국통일기를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고승들은 보다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통하여 종파로 나뉜 이론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고승들에 의하여 전개된 새로운 교리 통합론을 일반적으로 원융사상(圓融思想)이라고 한다. 이 원융사상은 이후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적인 흐름이 되어 우리나라 불교를 원융불교라고까지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원융사상을 주창한 대표적인 고승은 원효(元曉)이다. 원효는 여러 저술을 통해 공(空)과 유(有), 진(眞)과 속(俗), 이(理)와 사(事), 소승(小乘)과 대승(大乘), 아(我)와 법(法) 등 인도 및 중국 불교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상대적인 것들이 실제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원효는 이들이 모두 '일(一)이면서 다(多)요 다면서 일의 관계를 취하고 있다'는 원융사상을 천명(闡明)하였다.
원효는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에서 '부처의 일언일구가 모두 일불승(一佛乘)이며, 모든 중생이 마침내 일불승의 수레를 타고 불도를 성취함'을 강조하였다. 『열반종요(涅槃宗要)』에서는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으므로 마침내 모두 성불한다'는 것을 주장하여 일부 중생의 성불을 거부한 중국 불교가 지닌 모순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에서는 '상(相)과 상 아닌 것이 원융하여 둘이 없다'는 절대 원융사상을 전개하였다.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에서는 ' 정토와 예토(穢土)가 본래 한 마음이요, 생사와 열반이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이와 같이 원효는 모든 저술을 원융사상을 기초로 전개하고 있다. 특히 그의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당시 중국 및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논란이 일었던 열 가지 논쟁을 원융사상으로 종식한 매우 가치 있는 저술이다.
원효와 같은 시대의 고승인 의상(義湘)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통하여 원융사상을 천명하였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라 하여 화엄사상은 총체적으로 볼 때 원융하여 두 가지 모습이 없음을 밝혔다. 이어 의상은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며, 한 티끌과 시방세계, 한 생각과 무량한 세월, 초발심(初發心)과 정각(正覺),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는 원융사상을 철저히 규명하였다.
원효와 의상의 이후로도 원융사상은 계속 이어져 우리나라 고승들의 저서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 균여(均如)의 『화엄원통기(華嚴圓通記)』와 지눌(知訥)의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보우(普愚)의 「화엄삼매가(華嚴三昧歌)」 등에도 원융사상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 지눌의 경우에는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를 주창하던 당시 선(禪) 사상계를 원융으로 합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또한 조선시대의 고승인 서산대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선과 교를 하나의 이치로 보는 원융회통사상(圓融會通思想)을 주창하고 있다. 따라서 원융사상은 한국 불교의 1,600여 년을 관통해 온 중심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