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 출신. 1907년 8월 양주군 일대에서 활동하던 황재호(黃在浩)의병장 휘하에 들어가 양주군 ‘웃사야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어 같은 해 9월 이재학(李在學)의병장 휘하로 옮겨가 30여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주로 적성(積城)·삭녕(朔寧) 등지를 무대로 활동하던 중, 같은달 9일 삭녕군 남면리에 살던 일진회원 김영덕(金永德)·이강녕(李姜寧) 등을 처단하고 붙잡혔다.
1909년 12월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고살죄(故殺罪)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1월 경성공소원에서 공소가 기각됨으로써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