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대성사 소장 금동 여래 좌상 ( )

포항 대성사 소장 금동여래좌상
포항 대성사 소장 금동여래좌상
조각
유물
문화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대성사에 있는 조선 전기 소형 동조도금 불상.
정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대성사에 있는 조선 전기 소형 동조도금 불상.
개설

금동여래좌상은 이전 건봉사(乾鳳寺) 낙서암(樂西庵)에 있었던 불상임이 1912년에 촬영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유리원판에 의해 알려졌다. 불상 내부에서 사명대사 유장(惟政, 1544∼1610)의 원장(願狀)과 후령통 등의 복장물이 발견되었다. 여래상은 재료분석을 통해 구리에 아연을 합금한 황동제임이 밝혀졌으며 제작시기는 대략 15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내용

대성사 금동여래좌상은 낙서암(樂西庵)에 있었던 불상으로, 고성 거진읍 냉천리에 위치한 건봉사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시켰던 사찰로서 이름이 높은 곳으로, 현재 사명대사 기념관이 남아 있다. 고려말 나옹대사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서봉사에서 지금의 건봉사로 바뀌었다. 이후 1465년에 세조의 원당으로 왕의 위패를 봉안하는 어실각(御室閣)이 지어졌다. 불상 내에서는 1584년에 사명대사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원장(願狀)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 불상이 오랫동안 건봉사에서 중요한 불상으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불상의 원래 봉안 장소로 확인된 건봉사 낙서암은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가져 온 진신사리를 임시로 봉안하였던 곳으로서 이는 사명대사 원장이 이 불상에서 나올 수 있는 근거로 볼 수 있다. 또한 1932년 8월 12일에 작성된 조선총독부자료에는 건봉사에 있는 사명대사의 유품으로 ‘도금원불(鍍金願佛)’이라 쓰여진 불상이 있는데 이 작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징

대성사 금동여래좌상은 9.5㎝의 작은 상으로 연꽃잎이 상하대칭을 이루는 대좌와 함께 주조된 작품이다. 편단우견의 대의에 정수리 위에 있는 보주형의 중앙계주, 대좌 등은 고려 후반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유행하던 라마교 여래상의 형식적인 특징과 친연성이 높아 대체적인 제작연대를 알려준다.

또한 항마촉지인을 한 오른손과 무릎 위에서 수평으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구부려 마치 아미타 수인을 결한 왼손의 손모습도 이 시기부터 나타나는 아미타불의 도상적 특징으로 역시 시대성을 반영하는 요인이다.

불상의 특징은 통통한 뺨에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려진 눈과 도톰한 입 등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양감이 강조된 얼굴, 편단우견의 법의, 왼쪽 어깨에서 가슴으로 대의자락이 두 번 반전하면서 접혀져 있는 모습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두껍게 입은 대의와 볼륨감이 강조된 가슴이나 유두의 표현과 더불어 1450년(문종 즉위)에 제작된 통도사 금동삼존불상의 본존불과 비슷한 점에서 비슷한 시기인 15세기 중엽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포항 대성사 금동여래좌상은 편단우견의 법의를 입고 오른손은 항마촉지를,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결한 수인을 하고 있다. 통통하면서도 부드러운 얼굴 모습에 양감이 강조된 신체 표현 등은 1450년(문종 즉위) 통도사 삼존불의 본존불상과 친연성이 있어 제작시기는 15세기 중엽경으로 추정된다. 이는 건봉사가 1465년에 세조의 원당으로서 위패를 모시는 어실각을 설치하였던 건봉사의 중흥시기와도 일치한다.

한편 이 불상은 원래의 복장물은 없어졌지만, 보존 상태가 좋으며 여말 선초에 금강산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소금동불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사명대사와 관련된 원장이 불상의 복장물에서 발견되었고, 유리원판 사진을 통해 원래는 금강산 건봉사 낙서암에 있었던 불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건봉사사적기를 통해 건봉사가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의 거점지였던 사실 등을 고려해 볼 때 이 불상이 갖고 있는 역사적, 사료적 가치는 매우 높다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여말선초 소금동불의 유행과 제작기법의 변화」(정은우,『미술사학』24, 2010)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정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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