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로 ()

유교
인물
조선시대 한성부서윤, 보성군수, 창원대도호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은수(殷叟)
춘포(春圃)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81년(선조 14)
사망 연도
1648년(인조 26)
본관
전주(全州)
출생지
전라북도 전주
주요 관직
한성부서윤|보성군수|창원대도호부사
정의
조선시대 한성부서윤, 보성군수, 창원대도호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은수(殷叟), 호는 춘포(春圃). 아버지는 증승정원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유유(柳愉), 어머니는 부유심씨(富有沈氏)로 숙부인(淑夫人)에 추봉(追封)되었다. 전주에서 출생해 최명룡(崔命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부친이 피난처에서 사망하자 19세의 몸으로 시신을 손수 짊어지고 고향에 돌아와 장례를 치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포의(布衣: 벼슬이 없는 선비)의 신분으로 손수 「창의격문(倡義檄文)」을 지어 사방에 발송하고 군사와 식량을 모아 임금을 호종(扈從)하였다. 그 해에 사마시에 합격해, 사신의 일원으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1627년 문과에 급제해 성균관(成均館)의 학유(學諭)·학정(學正)·전적(典籍)과 양현고(養賢庫)의 봉사(奉事) 등을 역임하였다. 이인거(李仁居)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1등소무원종공신(一等昭武原從功臣)에 책록(冊錄)되었다. 1631년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제수되었다.

그 후 보령현감(保寧縣監)을 거쳐 형조좌랑(刑曹佐郞)과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임하던 중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임금을 배종(陪從)했는데, 이 때 유신로는 화의(和議)를 극력 반대하였다.

그 후로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보성군수(寶城郡守)·창원대도호부사(昌原大都護府使) 등을 역임했으며,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에 추증(追贈)되었다. 저서로는 『춘포유고(春圃遺稿)』 1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춘포유고(春圃遺稿)』
집필자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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