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망.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현손으로, 이수남(李壽男)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노공저(盧公著)의 딸이다.
1531년(중종 26) 생원이 되고, 1533년 별시 문과에 급제, 검열을 역임한 뒤 1555년(명종 10) 광주목사(光州牧使)가 되었다. 그해 왜구가 남해안에 침입하자 강진현을 수비하였는데, 병사들이 싸우지는 않고 민간에서 노략질을 하였으므로 그 책임을 지고 제주에 유배되었다. 1556년 왜구가 제주를 침략하자 종군하여 공을 세우고 풀려 돌아와 무관직인 오위장에 등용되었다. 뒤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