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와 효의왕후 청풍김씨의 합장 단릉.
건립 경위
1821년 3월 9일 효의왕후(孝懿王后) 청풍김씨(淸風金氏, 1753~1821)가 승하하자 능호(陵號)를 정릉(靜陵)으로 정했지만, 3월 22일 정조 건릉의 천릉과 효의왕후의 합장이 결정되자 건릉의 능호를 따르게 되었다.
변천
형태와 특징
정조는 생전에 병풍석(屛風石)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이를 따랐다. 현륭원에서 양석, 마석, 호석은 1쌍씩만 제작하였으나, 능침에서는 모두 2쌍을 사용한다는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내용에 따라 조성하였다.
능강(陵岡)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과 홍살문(紅箭門)이 남북으로 자리하고 그 사이에 향로(香路: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와 어로(御路)가 설치되어 있다. 정자각 주변에는 예감(瘞坎)과 비각(碑閣), 수라간(水刺間), 수복방(守僕房) 등이 건립되었으며, 홍살문 곁에 판위(版位)가 있다.
금석문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건릉지(健陵誌)』
단행본
- 『융건릉』(수원박물관, 2021)
기타 자료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Ⅷ」(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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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사도 세자의 묘. 정조 때 영우원을 고친 것으로, 후에 사도 세자를 장조로 추존(追尊)하고부터 ‘융릉’이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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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천거하여 받듦.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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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돌 난간의 기둥 사이에 동자석을 받쳐서 건너지른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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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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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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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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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무덤 앞의 상석을 괴는 북 모양으로 생긴 둥근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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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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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대문 밖이나 처마 끝에 달아 두고 밤에 불을 켜는 등.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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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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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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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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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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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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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임금이 거둥하는 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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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조선 시대에, 신주를 모셔 두지 아니한 빈 신위(神位)를 만들어 놓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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