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법장가집』은 1426년, 법장이 『나옹화상가송』을 확장 편찬한 불교서이다. 『보제존자삼종가』라고도 하는데, 보제존자 즉 나옹 혜근의 가송을 모은 『나옹화상가송』 중 「백납가」, 「고루가」, 「영주가」의 가(歌) 3수를 장편으로 확장 편찬하였다. 법장이 정리한 원고는 1435년 순천 송광사에서 1책으로 간행되었다.
고려말 조선초 승려인 고봉 법장(高峰 法藏)은 1351년(충정왕 3) 출생하였다. 성은 김씨, 본관은 신주이며 법명은 법장, 법호는 고봉이다. 20세에 출가한 뒤 나옹 혜근(懶翁 惠勤)의 법맥을 이었다. 1395년(태조 4) 송광사(松廣寺)에 주석하면서 송광사를 중창하였다. 1428년(세종 10) 입적하였다. 송광사를 중창한 공로로 16국사에 추증되었으며, 진영은 송광사 국사전(國師殿)에 봉안되었다.
현존하는 『보제존자삼종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435년(세종 17) 송광사에서 개판한 판본으로, 목판본으로는 유일하다. 권수제는 ‘보제존자삼종가(普濟尊者三種歌)’이고 1책이다. 불광산(佛光山) 대원암(大源菴) 승려 법장(法藏)이 편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송광사 성보박물관 등에 필사본이 있다. 보제존자삼종가 뒤에 59편의 시를 수록했는데,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본은 보제존자삼종가만 필사하여 59편의 추가 시문은 제외하였다. 한편, 1479년(성종 20) 도암(道菴)이 편찬한 것은 법장편찬본과는 체제와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
고려말 왕사(王師)에 책봉된 나옹 혜근(懶翁 惠勤, 1339~1376)의 저술로는 1379년(우왕 5) 간행한 어록과 가송이 있다.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 1권은 제자 각련(覺璉)이 집록하고 환암혼수(幻庵混脩)가 교정하였고, 『나옹화상가송(懶翁和尙歌頌)』 1권은 혜근의 제자 각뢰(覺雷)가 혜근의 시문을 집록하고 환암혼수가 교정하였다. 『보제존자삼종가』는 법장이 나옹화상가송만을 확장 편찬한 것으로 1423년(세종 5) 법장이 경주 원원사(遠願寺)에 있을 때 나옹삼종가에 대한 송(頌)을 지을 것을 발원했고, 1426년(세종 8) 순천 송광사(松廣寺)에 주석하면서 삼종가의 게송과 잡영(雜詠) 100수를 편집하여 제자에게 맡기고 2년 뒤 입적하였다. 법장이 정리한 원고는 1435년(세종 17년) 순천 송광사에서 1책으로 간행되었다.
「완주가(玩珠歌)」, 「백납가(白衲歌)」, 「고루가(枯髏歌)」로 구성된 나옹화상가송과 달리 보제존자삼종가에는 「백납가」, 「고루가」, 「영주가(靈珠歌)」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백납가」에서 백납은 백번이나 꿰맨 누더기 같은 승려의 남루한 가사를 의미한다. 출가의 수행과 공덕을 노래하였다. 총 40구로 이루어진 혜근의 「백납가」를 200구의 장편으로 확장하였다. 「고루가」에서의 고루는 살과 가죽이 모두 썩어 없어지고 남은 마른 해골을 의미한다. 해골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참된 깨달음을 얻기를 권하는 노래로, 52구로 이루어진 혜근의 「고루가」를 265구로 확장하였다. 「영주가」는 나옹화상가송의 「완주가」인데, 영주는 불성(佛性)을 구슬에 비유한 것이다. 인간 속에 본래 갖추어진 불성을 되찾아 무명(無明)을 벗어남을 노래하였다. 60구로 이루어진 나옹화상가송의 완주가를 300구의 영주가로 확장하였다.
한편, 삼종가 뒤에는 법장의 임종게(臨終偈)를 포함하여 총 59수의 시가 수록되었다. 나옹화상가송이 삼종가와 송으로 구분하여 수록했던 체제를 따랐으며, 이 59수의 송은 법장이 남긴 시를 그의 제자들이 정리하여 수록하였다.